<설날 미사(나해, 2024년 2월 10일) 강론>
먼저 우리 민족의 고유한 명절인 설날을 맞이하여 오늘 합동위령 미사에 참석하신 모든 분들과 여러분들의 가정에 주님의 더 큰 은총과 평화를 빕니다.
새로운 마음과 다짐으로 출발했던 한해의 시작, 1월도 금세 지나가고 있고, 벌써부터 우리네 마음엔 먼지가 수북이 쌓이기 시작했음을 안타깝게 되돌아봅니다. 이럴 즈음에, 우리게 다시금 새로운 출발을 할 수 있게 해 주는 이 설날은 그래서 더 소중한지도 모르겠습니다.
특히 이날 우리 한국인의 전통인 제사를 통해 세상을 떠나신 부모님과 조상님의 은공을 기린다는 것은 우리 교회적 의미로는 죽은 이와 산 이의 통공(通功)을 말하는 것으로 먼저 가신 조상님들께서 영원한 안식과 천국복락을 누릴 수 있도록 살아있는 우리 후손들이 기원해 주는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또한 민족고유의 세시풍속을 따라 각 가정에서도 떨어져 있던 가족들이 함께 모여 세배를 드리며 떡국을 먹고 오손도손 덕담을 나누기도 합니다.
오늘 제1독서의 민수기에서는 대축제의 전례, 특히 가장 중요시했던 신년축제 전례가 끝날 때 사제들이 백성에게 축복을 빌어주는 내용이 나옵니다. 또한 제2독서인 야고보 서간은 장사에만 정신이 팔려 돈 벌 궁리만 하는 사람들, 자만심에 사로잡혀서 자신들이 돈으로 안정된 삶을 확보하려는 자들에게 삶의 뿌리를 어디에 두고 살아야 하는지를, 모든 것을 주관하시는 분이 누구인지를 인식하며 살아야 함을 일깨워줍니다.
그리고 복음 말씀은 깨어 준비하고 있으라는 주님의 당부를 들려줍니다. 복음의 짧은 구절 안에 ‘주인’이란 말이 다섯 번이나 나올 정도로 우리가 깨어 기다려야 할 분이 바로 주인임을 강조합니다. 그리고 깨어 있는 종들이 얻는 보상은 ‘행복’입니다. 깨어 주님의 음성을 듣고 제 때에 문을 열어드릴 때 누릴 수 있는 복입니다.
하지만 우리는 신자이면서도 적극적인 신앙생활을 하도록 권유를 받게 되면 “아직 준비가 안 되었습니다, 천천히 하지요, 시간이 없어요.” 하는 말을 쉽게 합니다. 얼마 전 동창신부 모임에서 한 동창신부의 이야기인데, 그 본당에서 조그만 식품가게를 하는 어느 신자분이 시간이 없어서 피정에 가지 못한다고 사양했는데, 공교롭게도 며칠 안 되어 그 신자는 발을 다쳐서 병원에 입원하게 되었다고 합니다. 그 신자는 15일이나 입원하여 있었고 그동안 가게는 문을 닫았습니다.
시간이 없어서 2박 3일 피정은 가지 못하는데 병원에는 15일씩 입원하여 가게 문을 닫아야 하는 현실을 바라보면서, 우리가 살아가면서 무엇을 먼저하고 무엇을 나중에 해야 하는지 구별하지 못하는 어리석음을 볼 때가 있습니다.
위대한 심리학자인 빅터 프랭클의 ‘죽음의 수용소에서’란 저술에서는 저자가 나치 아우슈비츠의 강제노동 수용소에서 겪었던 경험을 바탕으로 하여 인간 내면에서 우러나오는 희망에 대한 갈증이 삶에 대한 욕구로 승화되는 모습을 잘 표현하고 있습니다. 힘든 상황 속에서도 주변의 환경을 적극적으로 받아들임으로써 미래의 희망을 개척해 나가는 인간의 모습이 강조됩니다.
이렇게 보면 행복이란 참으로 상대적인 것 같습니다. 객관적으로 봐도 정말 행복해야 할 사람인데도 ‘나보다 더 불행한 사람 있으면 한번 나와 보라 그래’하며 사는가 하면, 정말 행복할 구석이란 단 한 군데도 없음에도 불구하고 아주 행복한 얼굴로 살아가는 사람도 있습니다.
인간이 위대한 이유는 그 어떤 상황에서도, 심지어는 가장 비참한 상황에서도 각자 나름대로의 행복을 추구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인간이 대단한 이유는 비극 속에서도 낙관적일 수 있기 때문입니다. 자신을 둘러싸고 있는 그 숱한 비극적인 요소에도 불구하고 삶에 대해 지속적으로 ‘예스’라고 긍정을 말할 수 있는 존재이기에 대단한 것입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그날’이 언제 올지 모르니 “허리에 띠를 매고 등불을 켜 놓고 있어라”고 당부하십니다. 등불을 켜놓고 있으라는 말씀은 전전긍긍하거나 불안 초조해하며 있으라는 말씀이 아닐 것입니다.
그보다는 우리에게 주어진 삶, 하느님 은총의 선물인 앞으로의 삶을 기쁨과 행복을 추구하며 지내라는 말씀이 아닐까요? 사방이 온통 고통으로 둘러 쌓여있다 할지라도 낙관적으로 생각하며, 기쁜 얼굴로 지내라는 말씀이 아닐까요?
설을 맞아 오랜만에 멀리 있는 분들과 통화하고 안부도 묻는 분들이 계시겠지만 그렇지 못한 분들도 많으실 것입니다. 상황이 여의치 않아서 마음은 굴뚝같으나 홀로 고독을 씹으며 지내는 분들도 계실 것입니다. 비록 외롭고 괴로운 마음이 들지라도, 너무 힘들어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희망하시기 바랍니다. 그 모습이 바로 깨어 있는 삶이며 뒤이어 반드시 주님의 축복과 행복이 따를 것입니다.
형제자매 여러분, 이제 설날 강론을 마치면서 제1독서의 축복 말씀을 되새겨봅시다. “주님께서 그대에게 복을 내리시고, 그대를 지켜주시리라. 주님께서 그대에게 당신 얼굴을 비추시고, 그대에게 은혜를 베푸시리라. 그대에게 당신 얼굴을 들어 보이시고, 그대에게 평화를 주시리라.”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