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중미사 강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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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중 제5주일(나해, 202424)강론>

 오늘 복음에서 마르코 사가는 예수께서 제자들을 불러모으신 후 시몬의 장모를 치유하시고, 많은 병자들과 귀신들린 사람들을 고치시며, 한 마을을 떠나 갈릴래아 지역을 두루 다니면서 본격적인 복음사업을 시작하는 내용을 담고 있습니다.

특히 오늘 복음 말씀에서 우리는 예수님의 세 가지 면모를 발견할 수 있습니다. 첫째, 병자를 고치시는 치유자로서의 예수, 둘째, 귀신을 내쫓으시는 구마자로서의 예수, 셋째, 갈릴래아 지역을 두루 다니시며 복음을 전하는 복음 선포자로서의 예수가 그것입니다. 그러나 사람의 육신을 치유하고 마귀들린 사람에게서 마귀를 쫓아내는 이러한 기적적인 일들은/ 그 자체로서 의미보다는 복음을 선포하시는 예수님을 주님으로 받아들이게 하는 징표로서, 즉 믿음을 위한 도구로서 사용된 것입니다.

특히 예수님 시대에는 병이 들면 그것은 바로 죄의 결과라고 보았기에 사회에서도 소외되고 매장되었습니다. 따라서 병든 이들은 질병의 고통보다도 사회적으로 소외되고 외면받는 고통을 더욱 크게 느껴야 했습니다. 예수께서 극복하시고자 했던 것은 사회적 장벽의 바깥에서 소외되어있는 병자와 마귀들린 이들의 고통을/ 당신의 고통처럼 여기고 그들을 치유함으로써 그 장벽을 허무는 것, 이것이 바로 예수님의 치유와 구마가 가지는 의미였습니다. 예수께서 행하신 치유와 구마기적의 참된 의미를 생각하면서 오늘날 우리의 삶을 반성해보고자 합니다.

오늘날 우리 사회는 다양한 종교의 이름으로 학교, 병원, 방송국, 신문사, 복지센터, 기도원이나 템플 스테이 등 수많은 단체들이 활동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들은 하나같이 봉사하고 있다고 말합니다. 그러나 이들이 얼마나 예수께서 보여주신 질병과 가난과 무지로부터 해방자의 역할을 하고 있는지는 생각해 볼 일입니다.

마치 자기 단체의 세력을 불리기 위한 영리집단의 모습을 보이지는 않는지, 이미 비대해져 버린 단체를 관리 감독하는 것을 봉사라고 착각하지는 않는지/ 반성해 볼 일입니다. 이와 같은 논리는 해방자이신 예수를 따르겠다고 세례를 받은 우리 그리스도인 개인을 볼 때도 큰 차이가 없음을 느낍니다. 세상 재물과 명예 그리고 세속에 대한 집착과 욕심은 끝이 없이 우리를 애워싸고 부추깁니다.

사회적인 윤리기준이 무너져가고 정신적 가치관이 상실되며 개인적, 집단적 이기주의가 만연해 가는 이 세상에서 새하늘 새땅을 건설하는 삶을 위해 얼마나 노력하고 있는지 반성해 볼 일입니다.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이 시대에도 예수께서는 역사의 시간을 초월해서 우리에게 말씀으로 다가오십니다. 사람을 사람답게 대우하고, 소외되고 한 맺힌 사람들의 한을 풀어주며, ‘’ ‘아니오를 분명하게 말할 수 있는 복음적 삶을 통해, 이 기쁜 소식을 이웃에게 전하라고 말입니다. 이점과 관련된 불교의 선수행에서 나오는 한 예화가 생각납니다.

비가 내리고 있었습니다. 비단옷을 입은 한 여인이 진흙탕으로 변해버린 작은 도랑을 건너지 못해 안절부절 바라보고 있었습니다. 때마침 두 사람이 그곳을 지나가고 있었습니다. 그들은 수행을 하는 사람들로, 스승과 제자였다고 합니다. 스승이 내가 도와주겠소라면서 그 여인을 다짜고짜 끌어안아 진흙탕 건너편으로 데려다주었습니다. 그날 밤 제자가 낮의 일로 잠을 보채다가 스승을 찾아가 따졌습니다. ‘수행을 하는 자로서 금욕을 지켜야 하는데, 어째서 사부님께선 낮에 그 여인을 끌어안았습니까? 그러자 스승이 대답했습니다. ‘나는 이미 그 여인을 건너편에 데려다 놓았는데, 너는 아직도 그 여인을 끌어안고 있단 말이냐’/ 이 예화는 놓아라라는 제목으로 세상의 집착으로부터 벗어나는 우리 신앙인들에게도 좋은 화두가 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형제자매 여러분, 당나라 시인 두보는 눈물이 마르고/ 설사 뼈가 나와 보일 만큼 운다 해도 결국 세상은 무정한 것, 그대를 도와주지 않을 것이다.”라며 이웃의 외면을 더 고통스러워했다고 합니다. 오늘날 우리 주변에도 불행한 사람들, 여러 가지 어려움에 시달리는 사람이 많습니다. 나만 행복하면 그만인 것이 아닙니다.

내가 행복한 그만큼 내 주변의 불행한 사람들도 행복하게 살도록 하는 것이 우리 신앙인들에게 주어진 소명입니다. 우리가 가난하고 어려운 이웃들에게 마음의 문을 열면 주님께서도 더 크신 은총을 주시기 위해 그 문으로 들어오실 것입니다. 우리의 일상을 좀 더 열린 마음으로 살 때, 그 마음의 문으로 들어오시는 주님을 기쁘게 영접할 수 있다면 우리는 그만큼 더 복되고 성숙된 그리스도인이 될 것입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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