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해 연중 제5주일 강론)

 

대나무 영성

 

제가 보좌신부 시절에 있었던 일입니다. 그때만 해도 30대 초반이라 에너지가 넘쳤습니다. 성격도 지금보다 훨씬 급하고 불같았습니다. 성당 옆에 유치원이 하나 있었는데, 그 사이의 벽을 대나무를 빼곡히 심어 대신했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보니까 대나무가 너무 높이 자라 건물 전체를 가리는 것이었습니다. 이에 중년 형제 단체인 바오로회를 불러 대나무를 적당히 손질하라고 했는데, 나중에 보니까 너무 바짝 잘라버려 건물 전체가 훤히 다 내다보이는 것이었습니다. 너무 화가 났습니다. 그래서 바오로 회장을 불러서 엄청 야단쳤습니다. ‘무슨 일을 이따위로 합니까? 사람 말귀를 못 알아듣습니까?’ 그리고 장마철이 왔고 한 달이 지났습니다. 믿기지 않을 정도로 대나무가 자라더니 한 달 만에 다시 원상복구 되었습니다. 우후죽순이라는 말이 맞더라고요. 바오로 회장한테 참 미안했습니다. 대나무의 속성을 모르고 함부로 판단했고 모욕을 주었기 때문입니다. 참는 자에게 복이 있나니...

 

대나무는 잘 알다시피 사군자 중에 하나입니다. 곧게 자라는 성질이 선비들에게는 지조와 절개의 상징이 되었습니다. 그러나 대나무도 바람이 불면 휘어집니다. 곧지만 유연하지 않으면 강풍에 이내 꺾이고 부러지기 때문에 생존을 위해 휘어지는 것입니다. 강하지만 부드러운 대나무의 성질은 오늘 제2독서 코린토 1서의 바오로 사도를 연상시킵니다. 사도 바오로는 이렇게 말합니다. “나는 아무에게도 매이지 않는 자유인이지만, 되도록 많은 사람을 얻으려고 스스로 모든 사람의 종이 되었습니다. 약한 이들을 얻으려고 약한 이들에게는 약한 사람처럼 되었습니다.” 사도 바오로의 선교 전략은 모든 이에게 모든 것이 되어 주는 것이었습니다. 사도 바오로는 복음에 대한 믿음이 확고하지만 선교의 상대에 따라 유연하게 접근했습니다. 이 점은 선교 사명을 지닌 우리 모든 그리스도인이 갖추어야 할 처신의 태도입니다. 믿음이 강한 사람에게는 믿음이 강한 사람이 되어 복음을 전하고, 믿음이 약한 사람에게는 믿음이 약한 사람이 되어 복음을 전하라는 것입니다. , 사람마다 믿음의 정도가 다르기 때문에 그 수준에 맞춰 선교하라는 뜻입니다. 이를테면 열심자들에게는 열정적으로 신앙을 북돋아 주고, 비열심자들에는 너무 몰아세우지 말고 본인이 할 수 있을 만큼 신앙으로 초대하며, 냉담자들에게는 비신앙적인 모습일지라도 필요하면 인간적인 친교를 맺으면서 자연스럽게 회두를 권면하라는 것입니다. 또 외인들의 경우 그 사람의 성품과 생활 수준, 관심사와 현실 고민 등을 고려하여 눈높이에서 선교하라는 것입니다. 목표는 굳건히 설정하되 상대에 따라 유연하게 전략을 달리 하는 것이 효과적입니다. 이는 선교뿐만 아니라 모든 인간관계에도 적용되는 원리입니다.

 

한편 대나무는 자라면서 일정 간격으로 마디를 맺습니다. 성장에는 속도를 내지만 마디를 맺을 때는 성장을 멈추고 마치 주춧돌을 세우듯 신중하게 자기 자리에 머물러 있습니다. 그 이유가 무엇일까요? 마디가 있어야 대나무는 곧게 자랄 수 있기 때문입니다. 마디는 일종의 방향 설정을 재검토하는 휴식의 시간인 것입니다. 오늘 복음에 나오는 예수님의 휴식도 마찬가지입니다. 예수님은 매일 복음을 선포하시고 장사진으로 늘어선 병자들을 고치신다고 쉴 틈이 없었습니다. 그러나 육체적으로 지치고 영적으로 고갈된 상태가 되면 모든 일을 중단하고 쉬셨습니다. 복음은 이렇게 전합니다. “다음 날 새벽 아직 캄캄할 때, 예수님께서는 일어나 외딴곳으로 나가시어 그곳에서 기도하셨다.” 이는 휴식을 통한 충전의 시간, 요즘 말로 피정을 떠나신 것이었습니다. 우리도 하느님 안에서 쉬어야 합니다. 주일파공은 미사에 참여하고 일을 하지 않는 것만을 의미하지 않습니다. 주일에 우리는 영적으로 쉬어야 합니다. 특히 이 부분은 교회의 봉사자들에게 꼭 요청되는 권고사항입니다. 영적 힘이 고갈된 사람은 다른 사람을 대할 때도 편하지가 않습니다. 많은 이들이 활동 초기에는 순수한 열정으로 일하면서 섬세한 모습, 매력적인 모습을 보이지만, 시간이 지나가면 피곤하고 짜증스러운 모습으로 변해 갑니다. 쉬지 않고 활동은 하지만 툭하면 화를 내고 신경질적인 사람이 되는 것은 물론 활동에 지쳐서 살아가는 자처럼 되어버립니다. 봉사 활동이 끝나면 즉시 고독의 자리로 돌아가야 하는 이유는 영적 파탄을 면하기 위해서, 주님과 함께 거닐며 내면의 영적 정원을 가꾸기 위해서입니다. 활동량이 많을수록 자주 침묵 안에서 하느님의 음성을 들어야 합니다. 그러나 여전히 현실 안에서는 실천하기 어려운 대목입니다. 우리 본당의 문제는 봉사직이 중복되어 일이 몇몇 사람들에게 몰려 있다는 것입니다. 제 단체 활동하는 사람치고 13역을 맡지 않으신 분은 흔하지 않습니다. 서로 봉사를 기피하니까 일어나는 일입니다. 역할을 분담하고 돌아가면서 맡아주면 일이 부담스럽지 않을 텐데 다른 사람이 봉사하는 것은 칭찬하면서도 정작 본인은 나 몰라라 합니다. 특히 소공동체 반·구역 봉사자는 심각합니다. 세대교체가 없으니 죽는 날까지 반장을 놓지 못합니다. 어쩌면 본당 신부의 이런 고민도 어떤 신자들에게는 그 자체로 부담이 되는 말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아무튼 우리는 영적으로 쉬어야 합니다. 그래야 충전할 수 있고, 제대로 된 방향으로 활동을 재개할 수 있습니다.

 

대나무의 유연함과 마디의 휴식, 생존을 위한 대자연의 이치는 오늘날 쉼 없이 앞만 보고 바쁘게 살아가고, 자기의 틀에 갇혀 굽힘 없이 완고하게 살아가는 우리들에게 영성적인 메시지를 던져주고 있습니다. 잠시 침묵 속에서 자신을 돌아봅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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