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2월 2일 금요일 주님 봉헌 축일 미사 강론

by 김해_홍보분과베네딕도 posted Feb 02, 2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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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2월 2일 금요일 주님 봉헌 축일 미사 강론
천주교 부산교구 김해성당 이균태 안드레아


             예수님의 생일은 어느 누구도 알지 못한다. 원래 12월 25일은 로마 제국에서 믿어 왔던 태양신 아폴로의 축제일이었는데, 로마 제국으로 그리스도교가 전파되면서부터, 그날은 인류의 참 태양이요, 참 빛이신 그리스도의 날로 바뀌었다. 12월 25일이 크리스마스로 정착되면서, 12월 25일로부터 정확히 40일이 되는 날, 2월 2일에 교회는 ‘주님 봉헌 축일’을 지낸다.
 
             전례력에서 성탄시기는 주님 세례 축일(2024년 1월 8일)에 공식적으로 마감한다. 주님 봉헌 축일은 성탄과 공현과 연결된 축일이고, 주님의 성탄과 공현을 마무리 짓는 축일이기도 하다. 우리는 성탄 시기를 지내면서, 우리를 찾아오시기 위해 사람이 되신 하느님, 무한한 영광과 찬미를 받으셔야 할 분이 저 더럽고, 퀴퀴한 냄새까지 나는 마구간, 짐승의 밥통 위에 당신 몸을 누이신 하느님을 만났다. 그리고 그날로부터 40일째 되는 2월 2일, 우리는 성전에 봉헌되는 아기 하느님을 만난다.
 
핏덩이 예수를 하느님께 봉헌하던 날, 마리아는 시므온과 안나로부터 많은 이야기들을 들었다. 당신의 심장을 도려낼 만큼 아픔을 겪을 것이라는 저주에 가까운 말도 들었다. 그러나 분명 마리아는‘하느님, 당신의 아들입니다. 당신께 이 아이를 모두 내어 맡깁니다’라는 심정으로 당신의 아들을 봉헌했을 것이다. 이처럼, 하느님께서 ‘나의 동의’를 구하지 않고, 나의 것, 내 모든 것, 심지어 내 삶 전부를 사용하실 수 있도록 내어 드리는 일이 바로 봉헌이다. 그래서 봉헌의 삶은 ‘내어 맡김의 삶’, ‘의탁依託의 삶’이고 마침내는 ‘은혜의 삶’이다.
봉헌이라는 의미가 이러하니, ‘아이고, 나는 그런 봉헌 못하겠다’ 하며 지레 겁을 먹거나 두려움에 사로잡힐 필요는 없다. 봉헌의 삶을 살아 보겠다고 마음을 먹고, 두 주먹 불끈 쥐고, 몸을 움직이기 시작하면, 하느님의 영이 그 사람을 인도한다. 거짓말일 것 같은가? 결코 아니다. 이것은 성령을 맛본 사람만이 알아 들을 수 있을 것이다.
 
봉헌의 삶을 살아가야 할 사람들이 일차적으로는 성직자, 수도자들이다. 그렇다고 해서, 이 봉헌의 삶이 그들만의 전유물은 결코 아니다. 예수라는 분을 주님으로 믿고 살아가는 모든 사람들이 봉헌의 삶을 살아야 한다. 예수님께서 어린 아기로 하느님께 봉헌되었을 뿐 아니라, 당신의 삶 전체가 하느님께 드리는 봉헌 제물의 삶이었기 때문이다.
 
그러면, 하느님께 자신을 봉헌하는 사람은 어떤 삶을 살아야 할까? 하느님께로 봉헌된 예수님은 세례자 요한으로부터 세례를 받으면서, “너는 내가 사랑하는 아들, 내 마음에 드는 아들”이라는 말씀을 하늘로부터 듣고, 당신의 신원과 당신의 사명을 받았다. 당신은 하느님의 사랑 받는 아들로서, 하느님의 마음에 드는 일을 하는 아들로서 살아야 한다는 것이었다. 하느님의 마음에 드는 일을 하는 것이 바로 하느님께 자신을 봉헌하는 사람의 삶이다. 하느님의 마음에 드는 일은 바로 가난하고 소외되고 버림받은 사람들을 우선적으로 선택해서, 그들을 우선적으로 사랑하는 것이다. 이미 우리는 최후의 심판 때에, 주님께서 우리에게 무엇을 물어 보실 것인지를 알고 있다. 가난하고 소외되고 버림받은 사람들을 도왔느냐? 모른 체 하며 살았느냐?
 
           사랑하는 김해성당 형제, 자매 여러분,
 
오늘 주님 봉헌 축일에 대부분의 본당에서는 기도할 때 켤 초를 축복하거나 본당에서 쓸 초들을 봉헌한다. 왜 하필 초일까 ? 초는 자신을 태움으로써 불을 일으켜, 어둠을 밝힌다. 교회는 일찍부터 전례에서 제대와 함께 빛이신 그리스도를 상징하는 표지로 초를 사용해 왔다. 그래서, 초를 봉헌하는 것은 주님께서 성전에 봉헌되셨듯이, 우리도 주님과 일치하여 나 자신을 봉헌한다는 의미를 갖고 있다.
 
       오늘 주님 봉헌 축일을 지내면서, 우리는 봉헌의 의미가 성탄과 공현의 의미와 맞닿아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지극한 영광과 찬미를 받으셔야 할 분께서 당신 스스로를 한없이 낮추셔서 사람이 되셨고, 포대기에 싸여 짐승의 여물통에 뉘인 채로, 동방박사들의 알현을 받으셨고, 가난한 사람들이나 내는 산비둘기 한 쌍이나, 집 비둘기 두 마리밖에 바치지 못하는 가난한 가정의 맏아들로 하느님께 봉헌되셨다. 그렇게 봉헌되신 분은 세상의 구원을 위해, 특별히 가난하고 소외되고 버림받은 사람들을 우선적으로 구원하시기 위해 당신 자신을 « 이 세상 »이라는 제단에 봉헌하셨다.
 
       우리 스스로에게 한번 물어보자. 나는 주님께 무엇을 봉헌하고 있는가? 무엇인가를 봉헌한다면서 스스로 우쭐대지는 않는가? 봉헌의 삶을 살아가려는 이들의 실수나 잘못을 보고 그들을 위해 기도하고 있는가? 아니면, 그들도 별 볼일 없는 인간에 불과하다고 혀를 끌끌 차거나, 비난의 레이저 광선을 쏘아 대고만 있는 것은 아닌가? 그리고 또 하나 정말 솔직하게 한번 물어보자. 참다운 봉헌은 사람에 대한 사랑으로 이어진다는 것을 알고만 있을 뿐, 실천하지는 않고 있지는 않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