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중 제4주일(나해, 2024년 1월 28일)강론>
오늘은 연중 제4주일이자 ‘해외 원조 주일’입니다. 오늘날 전 세계에는 모든 인구가 충분히 먹고도 남을 만큼의 식량이 생산되고 있지만, 곳곳이 식량 위기를 겪고 있는 근본적인 이유는 식량을 공정하게 나누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식량의 위기는 분배의 문제요, 곧 정의의 문제인 것입니다. 특히 오늘의 2차 헌금은 아프리카, 아시아, 중동, 남미의 난민들이나 가난하고 고통받는 이들을 위해 사용될 것입니다.
오늘 복음에서는 예수님께서 안식일에 가파르나움에 있는 회당에 들어가셔서 대중들에게 설교하시고 가르침을 주시는 내용을 들려주고 있습니다. 그런데 그의 설교는 이전에 들어보지 못했던, 대단히 권위가 있고 당시의 율법학자들의 가르침과는 전혀 달랐다고 전하고 있습니다. 이에 사람들은 놀라고 감탄했으며 특히 그분의 말씀 한마디에 악령이 무서워 도망치는 것을 보고는 모든 사람들이 놀라워했고 그의 소문은 삽시간에 온 갈릴래아와 그 근방에 두루 퍼지게 됩니다. 오늘 복음을 통해서 예수님의 권위와 더러운 영에 대한 의미를 생각해보고 싶습니다.
권위란 사전적으로 ‘일정한 분야에서 사회적으로 인정을 받고 영향을 끼칠 수 있는 능력이나 위신’이라고 정의하고 있습니다. 예수님 시대에 일반적으로 권위를 인정받던 사람은 많은 지식과 훌륭한 견해를 지니고 있던 사회적 지도자들인 율법학자들이나 바리사이들이었습니다.
권위란 사전적으로 ‘일정한 분야에서 사회적으로 인정을 받고 영향을 끼칠 수 있는 능력이나 위신’이라고 정의하고 있습니다. 예수님 시대에 일반적으로 권위를 인정받던 사람은 많은 지식과 훌륭한 견해를 지니고 있던 사회적 지도자들인 율법학자들이나 바리사이들이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권위가 이들과 다른 점은 첫째, 그 말씀이 형식이 아니라 본질적인 내용에 있었다는 점이요, 둘째, 율법의 자구적 해석에 매달리는 것이 아니라 율법의 참된 의미 즉, 사람들의 깊은 마음을 헤아리며 생명과 희망을 주는 내적 능력이 있었다는 점입니다. 특히 예수님께서는 자신의 권위를 자기 이익이나 낮은 자에게 군림하기 위해 사용하지 않으시고 약자와 고통받는 이들을 위해 사용하셨다는 점입니다.
사제적 권위도 마찬가지입니다. 유럽에서는 우리나라와 달리 빈 의자가 한 개 있으면 당연히 평신도가 앉고 사제는 그 의자를 내어주고 옆에 서 있게 됩니다. 그때 참된 사제적 권위가 나타납니다. 바로 섬김과 봉사의 권위인 것입니다.
다음으로 더러운 영에 대한 의미를 묵상해보고자 합니다. 과거와 달리 현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의 가장 큰 고통거리는 스트레스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입니다. 돈 문제, 직장문제, 건강, 교육, 가족, 세금문제 등등 걱정해야 할 일들이 너무나도 많습니다. 특히 이러한 문제들로 인해 다가오는 세속적 유혹들 즉 쾌락이나 뇌물, 횡령 등에 대한 갈등도 스트레스를 주는 요인이 될 것입니다.
오늘 복음에서 말하는 더러운 영이란 그 자체로서 실체를 지닌 영일 수도 있겠지만 넓은 의미로 앞에서 언급한 다양한 종류의 스트레스들과 세속적 유혹들이나 탐욕들을 의미한다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이처럼 힘든 생활을 살아가야 하기에 오늘날 자신의 영혼의 상태가 건강하다고 느끼는 사람은 별로 없어 보입니다. 그러나 고통과 어려움에 맞서 평화와 안정을 찾고자 우리는 내·외적으로 투쟁을 합니다. 특히 예수님 말씀을 들으려 하고, 말씀을 듣고는 무언가 깨닫고 새롭게 살려고 끊임없이 노력하는 사람이 그리스도 신자입니다.
아마도 인간의 고통과 괴로움 등, 우리 앞에 펼쳐진 이 모든 어려움을 잊기 위해 우리는 세상이 주는 처방전을 아무 생각 없이 받아들이고 있지는 않은지 반성해볼 필요가 있습니다.
돈, 명예, 찰나의 쾌락, 인간적인 의지와 사람들로부터의 인정. 이 모든 것들이 지금 당장은 달콤하고 행복하지만, 오·남용되는 항생제처럼 우리의 병을 낫게 해 주는 약이 아니라, 오히려 병을 더 키워서 나중에는 그 어떤 약도 소용없는 자기파멸의 원인이 될 수도 있음을 알아야 할 것입니다.
인간에게 주어지는 고통은 그 자체로서는 죄와 악이 아닙니다. 감기에 걸렸다고 무조건 항생제를 오·남용해서는 안 되는 것처럼 우리에게 고통과 어려움이 닥쳐온다고 해서 악의 유혹에 빠져서는 안 될 것입니다.
그래서 사람을 찌들리게 하고 스트레스를 주는 모든 요인들을 극복하고 참된 평화의 상태인 영적 건강을 회복하기 위해서는 예수님께서 주시는 처방전대로 살아갈 수 있어야 할 것입니다. 사랑의 실천, 영원한 생명에 대한 희망, 고통에 대한 인내, 용서와 자비, 꾸준한 기도와 같은 요소들이 바로 예수님의 처방전이 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래서 사람을 찌들리게 하고 스트레스를 주는 모든 요인들을 극복하고 참된 평화의 상태인 영적 건강을 회복하기 위해서는 예수님께서 주시는 처방전대로 살아갈 수 있어야 할 것입니다. 사랑의 실천, 영원한 생명에 대한 희망, 고통에 대한 인내, 용서와 자비, 꾸준한 기도와 같은 요소들이 바로 예수님의 처방전이 될 수 있을 것입니다.
형제자매 여러분, 예수 그리스도의 영은 바로 우리의 세포 속에 있습니다. 지금 당장은 어렵고 힘들더라도 내 안에서 활동하시는 그분의 영, 곧 성령을 굳게 믿어야 합니다. 느긋한 마음으로 그분께서 나를 구원해 주신다는 믿음과/ 희망찬 용기를 지니고 내 앞에 펼쳐진 고통의 걸림돌을 바라볼 수 있는 여유를 가졌으면 좋겠습니다.
아멘.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