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해 연중 제3주일)
버림의 미학
(BMW 청년 이야기)
결국 물질과 사람에 대한 집착이 고통을 만들어 냅니다. 그럼 집착으로부터 자유로워지기 위해서 어떻게 해야 할까요? 집착에서 벗어나면 정말 평화와 행복이 찾아올까요? 끊임없이 남과 비교당하며 치열하게 경쟁해야 하는 이 자본주의 사회 안에서, 또 이성보다 감정이 나를 지배하는 나약한 인간성 안에서 나는 진정 자유로울 수 있을까요?
법구경에 보면 이런 말씀이 있습니다.
“사랑하는 사람을 가지지 마라. 미워하는 사람도 가지지 마라. 사랑하는 사람은 못 만나 괴롭고, 미워하는 사람은 만나서 괴롭다.”
집착에서 벗어나야 한다는 가르침을 이보다 짧고 굵게 잘 설명한 말이 있을까요? 그러나 현실에서는 참 실천하기 어려운 말씀입니다. 그렇게 하려면 아예 세상과 절연하고 산속으로 들어가서 도를 닦으며 아무도 만나지 말아야 합니다.
그럼 사도 바오로는 이 부분을 어떻게 가르치고 있을까요?
“이제부터 아내가 있는 사람은 아내가 없는 사람처럼, 우는 사람은 울지 않는 사람처럼, 기뻐하는 사람은 기뻐하지 않는 사람처럼, 물건을 산 사람은 그것을 가지고 있지 않은 사람처럼, 세상을 이용하는 사람은 이용하지 않는 사람처럼 사십시오. 이 세상의 형체가 사라지고 있기 때문입니다.”(1코린 7, 29-31)
당시 사도 바오로는 세상 종말과 주님 재림이 곧 닥친다고 믿었습니다. 그래서 세상 심판이 머지않았으니 찰나의 먼지에 지나지 않는 이 세상에 더 이상 연연하지 말고, 주님을 맞을 준비를 하라고 역설했던 것입니다. 아직 세상 종말, 곧 공심판은 오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우리에게는 개인의 죽음과 사심판이 항상 대기하고 있고, 종말의 관점에서 보자면 이 시간과 공간 역시도 사라지고 있는 중 입니다. 결론적으로 사도 바오로의 말씀은 유한한 피조 세계를 초월하여 영원한 것을 추구하라는 신앙의 메시지라고 볼 수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에게 근본적으로 집착에서 벗어나는 길은 하느님으로 충만해지는 것입니다. 하느님으로 충만해지면 사랑하는 사람을 사랑하되 소유하는 사랑이 아니라 양도하는 사랑으로 사랑하고, 미워하는 사람을 회피하고 부정하는 방식이 아니라 그를 용서하고 받아들이는 방식으로 참된 승리자가 됩니다.
불가에서 말하듯 집착을 버려서 초연해지는 것이 아니라 하느님을 만나서 집착에서 자유로워질 수 있는 것입니다. 만일 집착해야 할 대상이 남아 있다면 그것은 단연 하느님 그분 자체가 되어야 할 것입니다. 하느님 그분과 일치하며 그분 안에 머물면 실망도 분노도 욕심도 사라집니다. 그리고 그릇된 것이 사라진 그 자리에 수용, 용서, 나눔이 싹을 틔웁니다. 또 그것은 사랑, 평화, 기쁨, 친절, 온유, 선행의 열매를 맺습니다. 모든 집착은 세상의 무질서한 소유에서 비롯된 것입니다. 그러나 하느님을 소유하면 세상의 소유를 바라보는 눈이 완전히 달라집니다. 즉, 세상의 모든 소유는 집착과 고통의 원인이 아니라 오히려 하느님을 찬미하는 도구이며, 세상을 더 아름답게 만드는 수단이 될 수 있습니다. 우리는 인색한 부자에서 따뜻한 자선가가 될 수 있습니다. 또 권력에 눈이 먼 부패한 정치인에서 국민에게 봉사하는 머슴이 될 수 있습니다. 또 원한과 복수심에 불타는 테러리스트가 아니라 비폭력 저항으로 정의를 추구하는 평화의 사도가 될 수 있습니다. 그전에 하느님 그분 안에 머물러 있어야 합니다. 그것을 위해 성인들은 성체조배와 관상기도에 매진했습니다.
오늘 복음에서 주님께서는 “때가 차서 하느님의 나라가 가까이 왔다. 회개하고 복음을 믿어라.”고 하십니다. 여기서 하느님의 나라는 곧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하느님의 다스림은 그리스도를 통해서 구현되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주님께서는 어부 제자들을 보시며 말씀하십니다. “나를 따라오너라. 내가 너희를 사람 낚는 어부가 되게 하겠다.” 회개는 단순히 지난날을 후회하고 반성하는 것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모든 소유를 버리고 주님과 함께 걷는 여정을 말합니다. 어부 제자들은 아버지와 그물을 버리고 주님을 따라 공생활을 시작합니다. 결국 회개는 소유에 대한 집착을 버리고 주님을 선택하는 것입니다. 주님을 위한 버림과 비움의 삶이 바로 회개입니다. 우리는 지금 주님을 따르기 위해 무엇을 버리고 비워내고 있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