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중미사 강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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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중 제3주일(나해, 2024121강론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을 부르십니다. 첫 번째로 부르심을 받은 이들은 어부들이었습니다. 그들은 나를 따라 오너라. 내가 너희를 사람 낚는 어부가 되게 하겠다.”라는 예수님의 부르심을 받고 그물과 배를 버리고 부르심에 응답하여 예수님을 따라갑니다. 어부들이 그물과 배를 버린다는 것은 곧 그들의 모든 삶을 포기한다는 것입니다. 이전까지 살아오던 삶에 아무 미련을 남겨두지 않고 오직 예수님만을 바라보고 따르겠다는 전적인 추종, 즉 넓은 의미의 회개를 뜻하는 것입니다.

오늘 제1독서에서도 니네베 사람들은 요나 예언자의 선포를 듣고 회개하였습니다. 그 어디에도 망설임이나 주저함이 없었습니다.

회개란 단순히 죄를 뉘우치는 것 이상의 것입니다. 즉 우리의 잘못된 생활을 고치고 하느님께서 우리에게 제시하신 길을 따라감을 뜻합니다. 그리스도인이란 이 세상 사람들처럼 세속과 물질에 더 큰 가치관을 가지고 사는 사람이 아니라,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제시한 바에 따라서 생활하는 사람들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제까지 우리가 가졌던 인생관이나 세계관 그리고 가치관의 기준을 달리 해야 합니다.

따라서 우리 그리스도인들에게는 보다 꾸준히 추구해야 할 대상, 보다 차원 높은 대상, 결코 우리를 실망시키지 않을 대상이 필요합니다. 그 대상은 바로 예수님이시며, 그분께서 남겨주신 복음이며, 복음의 핵심정신인 사랑입니다.

예수님, 그분은 만날 때마다 새롭습니다. 그분께로 돌아갈 때마다 뭔가 색다릅니다. 그분의 복음 역시 단 한 번도 우리를 실망시키지 않습니다. 펼칠 때마다 복음서의 모든 페이지는 우리에게 또 다른 희망의 메시지를 전해주고 있습니다. 결국 최종적으로 선택할 대상, 마지막으로 돌아갈 대상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예수님이야말로 우리의 기쁨이요 희망입니다. 세상 사람들이 너나 할 것 없이 불나방처럼 휘황찬란한 향락의 세계를 향해 날아간다 하더라도 우리 신앙인만큼은 마음 단단히 먹고 지속적으로 예수님을 선택하는 나날이 되면 좋겠습니다. 그 선택은 어둠이 아니라 빛을 선택하는 것입니다. 한 예화가 생각납니다.

쥐 두 마리를 빛이 들어오지 않는 상자 속에 넣어두었다고 합니다. 한 상자는 완전히 빛을 차단하였고 또 한 상자에는 아주 작은 빛만 들어올 수 있도록 바늘구멍을 내 두었습니다. 둘 다 음식이 없었지만 두 쥐가 산 기간은 두 배 차이가 났다고 합니다. 어둠 속에 있던 쥐는 일주일을 살았고, 아주 작은 빛이라도 볼 수 있었던 쥐는 이 주일을 살았다는 것입니다.

이 세상에서 바늘구멍으로 새어 들어오는 아주 작은 빛만 있어도 누구에게는 생명을 이어갈 유일한 희망이 되기도 하는 것입니다.

쉬고 있는 냉담자들과 대화를 하다 보면, 많은 이들이 먹고 살기가 바빠서요.’라는 대답을 합니다. 먹고 살기가 힘들어서 신앙생활을 뒷전에 미루어 둔다는 이야기입니다. 그들은 신앙생활에서 얻는 은총이 무엇인지를 모르기 때문에 아직도 자신의 삶에 바쁜 것입니다. 세속생활에 바쁜 삶의 여정에서는 자신을 돌아보고 이웃을 배려할 줄 아는 시간이 없기 마련이고, 그러다 보니 점점 사는 일에 여유도 잃게 되며 그냥 쳇바퀴 도는 반복되는 삶, 아니면 일상 자체가 쫓기다시피 살게 됩니다.

신앙생활은 먹고 살만해지면 시간을 낼 수 있는 여가생활이 아닙니다. 오히려 힘들고 어려운 삶일수록 더욱 하느님께 의탁하여, 하느님의 사랑에서 나오는 힘과 여유를 은총으로 얻게 되면/ 삶이 활기를 띠고 생명력을 가져다줍니다.

오늘 복음은 우리 삶의 우선순위가 무엇인지를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예수님의 부르심은 우리가 먹고 살만할 때, 여유 만만해질 때를 기다리지 않습니다. 사실 우리의 삶이 스스로 풍요로워져서 하느님도, 은총도 필요 없게 될 때는 아무리 부르심이 있어도 반응하지 않습니다. 사실 그분의 부르심은 지금, 여기에서 나에게 주어지는 것이며 그 응답 또한 즉시모든 것을 내려놓음으로써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이처럼 부르심에 대한 응답인 신앙은 결단입니다. 그런데 이런 신앙의 결단은 특별히 주님을 따르겠다고 나선 성직자, 수도자에게만 해당되는 것이 아닙니다. 신자들에게도 똑같이 해당됩니다. 우리는 세례를 받을 때 세상의 모든 욕심을 끊고 주님만이 나의 구세주라고 고백을 했지만 살아가면서 흔들리는 삶을 살게 됩니다. 내 욕심과 세상의 논리, 그리고 하느님 가르침 안에서 수많은 갈등이 생기기 시작합니다. ‘세상 논리를 따르느냐, 하느님 뜻을 따르느냐?’라는 갈등을 모든 신자들은 다 안고 살아갈 것입니다.

신앙인으로서 세상 논리에만 올인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이들은 재산을 더 축적하려는 욕심에만 집착하다 보니 나누는 삶은 설 자리가 없어지고/ 권력을 누려보니 더 큰 권력을 탐하게 됩니다. 명예를 누려보니 재물이나 권력보다도 훨씬 더 달콤하고 강한 매력에 도취되어, 눈과 귀가 어두워집니다.

가족끼리도 서로를 소유물이나 이용물로 여기다 보면, 있는 그대로를 보지 못하고, 자신의 욕구나 필요를 충족시켜주는 배우자, 자녀, 부모로 바라보게 됩니다. 비우고 버리지 못해 온갖 병을 안고 살아가면서도 포기하지 못하는 세상입니다. 비우지 못하고 버리지 못하고 있다면 새로움을 얻을 수 없습니다.

형제자매 여러분, 예수 그리스도를 추종하기 위해 신앙인이 된 우리/ 이제 세상과 내 안에 있는 온갖 욕심도, 미움도, 분노나 두려움도 버리고 비울 때, 하느님의 모습이 보이고 그분의 음성이 들려오게 될 것입니다. 그때는 온갖 잡다한 유혹에서 해방되어 빛이신 예수님을 따르고 닮아갈 수 있을 것입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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