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중미사 강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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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 2005년 성탄 전야에 KBS스페셜은 150년만의 공개란 부제를 붙여 ‘영원과 하루’라는 주제로 서울 가톨릭대학교 성신교정 신학생들이 7년간의 수련을 거쳐 사제가 되는 과정을 방영했던 일이 있습니다.

 시청자들은 신학생들의 맑고 순수하고 늘 웃는 모습이 참 좋았다고 합니다. 이 방송 이후 많은 네티즌이 반응을 보냈는데, 특히 비신자들이 큰 감동을 받았다고 합니다. “보는 내내 가슴시리도록 아름다웠습니다”, “가톨릭 신자는 아니지만 제게도 영혼이 있다는 걸 놀랄 만큼 일깨워 준 방송이었습니다.”, “그 젊은이들의 해맑은 미소, 하느님을 향한 그분들의 마음, 정말 아름답다는 말밖에 할 말이 없네요.”, “가슴이 메말라 가는 이 세태 속에 그들이 있기에 이 세상은 아직도 의미가 있고 아름다운가 봅니다.” 이들의 반응에서 ‘아름답다.’라는 단어가 참 많이 반복되는 것을 봅니다. 

 한자 아름다울 ‘미’(美)자를 풀어보면(큰 대 위에 양) 커다란 제사상 위에 놓여있는 양(羊)의 모습입니다. 지나친 비약인지 모르지만, 세례자 요한이 예수님을 가리켜 “보라, 하느님의 어린양이시다”라고 증언하는데, 이때 예수님을 ‘하느님의 아름다움(美)’이라고 풀이해 보고 싶습니다. 이런 예수님의 아름다움은 오늘 복음에서 당신의 첫 제자들을 사로잡았습니다. 
이들 두 제자, 즉 시몬 베드로의 형제 안드레아와 제베대오의 아들 요한으로 추정되는 이 두 사람은 세례자 요한의 인도로 예수님을 따라가게 됩니다. 여기서 우리는 매우 난해한 질문들을 접하게 됩니다. 바로 예수님의 “무엇을 찾느냐?”라는 질문과 제자들의 “랍비, 어디에 묵고 계십니까?”라는 질문들이 그것입니다. 첫 번째 예수께서 하시는 질문은 질문의 형식을 띤 초대라고 볼 수 있습니다. 바꾸어 말하면 “당신들이 찾고 있는 진리는 바로 나요, 그런데 진정 나와 함께 할 수 있겠소?”라는 의미로 이해할 수 있을 것입니다.

 이에 반문하는 제자들의 질문은 “당신을 따르고 싶습니다. 그런데 당신이 누구인지 확실히 알려주시겠습니까?”라는 응답의 의미로 볼 수 있습니다. 이는 마치 오늘 1독서의 내용인 주 하느님께서 사무엘을 부르시고 사무엘은 “주님, 말씀하십시오. 종이 듣고 있습니다.”라고 응답하는 것과 같은 맥락으로 바라볼 수 있을 것입니다. 
이에 예수께서는 “와서 보아라.”라고 확실한 초대를 하십니다. 두 제자들은 예수님을 따라가서 함께 머무르면서 예수님을 메시아, 즉 구원자로 확신하게 됩니다.
 
 우리가 세례를 받을 때, 사제는 예비자에게 3가지 질문을 합니다. 첫 번째로 “여러분은 하느님의 교회에 무엇을 청합니까?”, 두 번째로 “신앙이 여러분에게 무엇을 줍니까?”, 그리고 마지막으로 “여러분은 형제들과 함께 사귀며 기도에 참여하고 착실한 그리스도교 신자가 되며, 하느님의 아들, 딸로서 충실히 살아갈 각오가 되어 있습니까?”라는 질문입니다. 
 
 첫 번째 물음에 대한 답은 ‘신앙’이고, 두 번째 물음에 대한 답은 ‘영원한 생명’이며, 마지막 물음에 대한 답은 ‘예’입니다. 신앙을 청하는 이유는 “신앙이란 계시를 통해 당신 자신을 드러내 보이시고, 내어주시며 동시에 삶의 궁극적인 의미를 찾는 인간에게 풍요한 빛을 주시는 하느님께 대한 인간의 응답”(가톨릭 교리서)이기 때문에 하느님의 부르심에 제대로 응답할 수 있기를 청하는 것입니다. 결국 하느님과 함께 하기를 청하는 것입니다.
또 신앙이 영원한 생명을 준다고 하는 이유는 “영원한 생명이란 참 하느님과 그분이 보내신 예수 그리스도를 알고”(세례예식서) 그분의 가르침대로 삶으로써 구원을 얻어, 영원히 살게 되는 것을 말하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많은 사람들은 신앙을 청하기보다 하느님을 믿어서 복을 많이 받고, 아프지 않고 건강하며, 또 돈 많이 벌어 부자 되고, 가족들이 아무 탈 없이 잘살게 되기를 청하며 살아갑니다. 또한 성당에 나와서 하느님을 믿고 기도만 하면 복잡했던 내 생활이 잘 정리가 되므로, 내 마음에 평화를 얻기 위해서, 혹은 혼자 지내는 외로움을 극복하기 위해 사람을 사귈 목적으로 신앙을 가진다고 이야기합니다.
 
 곰곰이 생각해보면 세례를 받기 위해 교회에 발을 들여놓는 동기와 세례받을 때 청하는 내용은 서로 너무나 다르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우리가 하느님을 믿는다는 것은 하느님의 뜻이 무엇인지를 알고, 그분의 뜻에 따라서, 그분의 방식대로 살겠다고 다짐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세속적인 바램들, 건강, 재산, 명예, 마음의 평화와 같은 것은 내가 하느님의 자녀로 성실히 살아가다 보면 부차적으로 주어지는 주님의 선물들입니다.

 형제자매 여러분, 우리는 이 세상에 태어나서 세상으로부터 많은 것을 받으면서 성장하였습니다. 그리고 다른 생명을 위해 기여도 하면서 살다가 죽어갑니다. 스스로를 내어주고 나누지 못하는 생명은 자기 자신만을 위해 삽니다. 그런 생명은 자신 안에 갇혀서 살다가 볼품없는 자기 모습 하나 남기고 허무로 사라집니다. 그것은 하느님이 베푸신 생명의 순리가 아닙니다. 예수님으로부터 비롯된 그리스도 신앙은 하느님 생명의 순리를 살라고 권합니다.
 
 오늘 복음에 예수님과 함께 묵었던 안드레아는 자기 형 시몬을 예수님께 데려왔습니다. 예수께서는 그를 ‘눈여겨보시며’ 그의 시몬이라는 이름을 베드로라는 이름으로 바꿔놓으십니다. 예수님을 만나고, 그분의 시선이 닿고, 그분의 말씀을 들으면, 사람이 달라진다는 뜻입니다. 세례를 통해 우리도 이전과는 달라진 모습, 즉 하느님을 중심으로 사는 새 사람으로 태어났음을 생각하고 주님의 부르심에 기쁘게 응답할 수 있는 신앙인이 되시길 바래봅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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