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주의 성모 마리아 대축일)
새해 첫날, 축복합니다.
오늘은 천주의 성모 마리아 대축일이면서 세계 평화의 날입니다. 지금도 세계 곳곳에는 크고 작은 전쟁과 분쟁이 일어나고 있습니다. 자국의 이익과 적국에 대한 복수심으로 더 이상 무고한 사람들이 죽거나 다치는 일이 없도록 세계 평화를 기도해야 하겠습니다. 평화의 모후여! 저희에게 평화를 주소서.
천주의 모친이라는 말은 본시 신학적인 용어였습니다. 그리스도의 신성과 인성을 보존하기 위해서 이단 논쟁을 통하여 정립된 용어가 바로 ‘천주의 모친’이라는 말입니다. 즉, 그리스도의 인성 안에서 천주성도 함께 있으니 마리아는 하느님이신 그리스도의 어머니가 되신다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의 신성을 부정하는 이단에 맞서기 위해 431년 에페소 공의회에서 확정된 교의가 바로 ‘천주의 모친’이 되겠습니다.
따라서 오늘 ‘천주의 성모 마리아 대축일’은 성모님을 칭송하는 축일이라기 보다 마리아를 통해서 세상에 참 하느님이시자 참 사람으로 오신 그리스도를 흠숭하기 위해 생긴 축일이라고 봐야 할 것입니다. 다시 말하자면 성모님을 통해 사람이 되신 구세주 강생 신비를 경축하기 위해 생긴 대축일입니다. 그럼에도 성모님의 중재자로서 탁월한 구원 경륜을 말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오늘 복음에서 강생한 그리스도가 처음으로 당신을 드러내신 대상은 가난한 목자들이었습니다. 여기서 목자들은 비천하고 가난한 세상의 모든 사람들을 상징한다고 봐야 합니다. 예수님은 그 이름처럼 비천하고 가난한 사람들을 구원하실 거룩한 분이십니다. 그분의 탄생이 복음이 되어 세상을 밝히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러한 그리스도의 최고 협조자는 단연 성모님이십니다. 그분은 믿음과 순명으로 그리스도가 세상의 빛이 될 수 있도록 그분을 낳으셨습니다. 새해 첫날 특별히 성모님을 등장시키는 이유는 그리스도를 따르는 우리 모두가 한 해를 성모님의 영성에 따라 살기를 다짐하기 위해서입니다.
성모님은 지금도 아들 그리스도가 세상을 비추기를 바라고 계십니다. 그래서 오늘 우리는 새해 첫날 미사로서 시작합니다. 그러나 세상 사람들은 소원을 빌기 위해서 해를 맞으러 갑니다. 오늘 해맞이를 위해 해수욕장과 산 정상에 오른 사람들이 많을 것입니다. 그리고 그들은 일출을 보며 소원을 빌고 새해 다짐을 하곤 합니다. 그러나 우리 신앙인들에게 태양은 그리스도이시고. 그 태양이 온 누리에 빛나는 순간은 사제가 거양성체하는 순간입니다. 우리는 미사를 통해 매일 영적인 일출을 봅니다. 그리고 매일 미사를 통해 우리의 소망을 말씀드리고, 그분의 뜻이 온 누리에 훤히 빛나기를 기원합니다.
여러분들은 미사 중에 어떤 소망을 빌고 계십니까? 저는 올해 우리 공동체가 코로나 종식 이후 활기를 되찾고 본당 재건을 위해서 열심히 뛰는 해이기를 빌었습니다. 교구에서는 사목 지침을 청소년과 청년의 해, 즉 청·청·해로 정했지만, 압도적으로 노인인구가 많은 우리 본당은 청소년 사목과 함께 다른 사목도 함께 가야 합니다. 제가 부임해서 본격적으로 사목을 시작하는 첫해는 본당 재건을 위한 신자 재교육과 소공동체 활성화에 전력투구할 것입니다. 자세한 것은 이달 중 시간을 내어서 따로 설명하도록 하겠습니다. 청·청·해의 모또는 환대와 경청입니다. 비단 청소년과 청년들뿐이겠습니까? 어르신들, 새신자들, 전입자들, 냉담자들 모두를 포함하는 말일 것입니다. 성당에 오는 누구나 우리는 환대해야 합니다. 그리고 그들의 말을 경청해야 합니다. 천주교 신자들은 본심은 아닌데 표현력이 부족하여 새로운 사람들을 보면 냉냉하게 대할 때가 많습니다. 이제는 적극적으로 다가가서 인사를 나누며 안부를 묻고 친교를 맺어야 합니다. 그리고 그들이 잘 정착할 수 있도록 친구가 되어 주어야 합니다. 그저 내 말만 하고 상대가 따라주기만을 바라서는 안 됩니다. 그들의 사연과 처지를 들어주고 공감해주어야 합니다. 말로만 사랑한다고 하지 말고 행동으로 보여야 합니다. 세대차이야 어쩔 수 없지만 따뜻한 말 한마디와 관심을 보이는 일은 세대를 뛰어넘어서 다 좋은 것입니다.
천주의 성모 마리아 대축일! 마리아와 함께 시작하는 새해 첫날 우리는 마리아의 영성을 닮아 한 해 역시 주님께 봉헌하고 열심히 신앙생활할 수 있도록 합시다. 오늘 민수기는 이렇게 말합니다. “그들이 이렇게 이스라엘 자손들 위로 나의 이름을 부르면, 내가 그들에게 복을 내리겠다.” 하느님의 이름을 부른다는 것은 전례 참여를 의미합니다. 미사성제를 통해 우리는 하느님의 이름을 부르며 그분을 찬미합니다. 그것이 축복의 기원이 됩니다. 세속인들은 새해 첫날 ‘새해 복 많이 받으십시오.’하고 인사합니다. 이는 길흉화복과 관련이 있습니다. 그러나 그리스도인에게 복은 세속 기복이 아니라 하느님께서 주시는 사랑과 평화의 축복입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