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네딕도 16세 교황의 자유에 대한 윤리신학적 고찰>
라칭거는 68운동을 겪고 회칙 <인간 생명>에 대한 반응을 보면서, 라칭거는 이러한 사례들을 통해 선을 향한 고정된 기준들이 자율적 이성에 의해 파괴될 수 있음을 직접적으로 경험하게 되었으며 이는 곧 도덕적 의무의 타락을 불러온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다.
현대 자연법사상에서 개인은 스스로를 자유의 유일한 기준이라 느끼며, 하느님에 대한 신앙도 거부한다. 이러한 자유 운동과 현상에 함축된 목표는 이제 신과 같은 존재가 되자는 것, 그 어느 것, 그 누구에게도 얽매이거나 의지하지 않고, 나 이외의 다른 자유로 말미암아 내 자유가 제한받지 말자는 것이다.
인간의 자아는 자신의 의지에 따라서 홀로 처신하고 고립될 수 있을 만큼 절대적이지 않고 그러한 주장이 우리의 존재의 진리에 반하는 것이라고 할 때, 우리의 존재에 관한 진리는 우선 우리가 하느님의 창조물이라는 것, 그리고 우리는 창조주와 피조물들과 함께하는 관계 안에서 살아간다는 것이다. 우리는 관계적인 존재들이며 오직 관계성을 받아들임으로써만 진리 안으로 들어가고, 그렇지 않으면 허위 안으로 추락하고 종국에는 그 안에서 파괴된다.
인간은 선을 추구하려고 하지만, 그릇된 선을 선택함으로써 자유를 향한 자신의 소명 실현에 실패할 수도 있다. (외견상의 선을 참된 선이라고 여기고 추구하는데 그것이 참된 선이 아닐 수 있기 때문이다.)
여기에서 라칭거는 진정한 자유를 얻기 위해 절대 선을 따르는 것의 중요성을 강조하며 이 주제를 진리의 주제와 연결시킨다. 왜냐하면 절대 선이란 누구에게나 이해될 수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인간이 이 같은 질서 잡힌 진리를 따를 때, 자유를 취득하는 것이 가능해진다.
바오로 사도는 “자유를 육을 위하는 구실로 삼지 마십시오. 오히려 사랑으로 서로 섬기십시오.”(갈라 5,13)라고 말한다.
자유는 타인에 대한 봉사를 통해 드러난다. 내가 원하는 것을 모두 하는 것이 아닌 타인을 향한 사랑과 봉사 안에서 역설적으로 자유가 실현된다. 우리는 사랑과 함께 타인을 위해서 봉사할 때 비로소 자유롭게 된다.
자유에 관한 교회의 역할에 관련하여, 라칭거와 교회 지도자들이 신앙 감각에 경청하지 않는다는 비난에 대하여 라칭거는 통계 수치의 다수로 신앙 감각을 규정하는 것을 반대하며 지적한다.
라칭거는 ‘하느님의 백성’은 교도권과 일반 신자들 모두를 포함하기 때문에 이러한 방식으로 믿음을 구별하 는 것은 오히려 교회의 가르침에 반하는 것이며 오류라고 주장한다. 게다가 ‘하느님의 백성’의 개념은 현시 대에 살고 있는 사람들을 넘어 우리를 앞선 모든 세대를 포함한다. 그러므로 신앙 감각은 시간을 가로지르는 의미 안에서 동시적이라고 적합하게 이해된다.
자유에 따르면 자유에 관한 질문은 진리에 관한 질문과 동일하다. 인간이 질서 잡힌 진리를 따를 때, 자유를 획득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질서는 곧 정의를 의미하는 것이기도 하다. 사람의 자유가 여러 자유들이 질서 있게 나란히 하는 속에서만 성립할 수 있다고 한다면, 질서 - 정의 - 는 자유의 반대 개념이 아니라 자유의 밑바탕이 되는 구성 요소가 된다.
정의는 자유에 대한 걸림돌이 아니라 자유를 이루어 내는 것이다. 정의의 부재는 곧 자유의 부재이다.
그러므로 규범의 파괴와 모든 질서로부터의 해방으로 자유를 이해하는 것은 그릇된 이해이다. 자유가 거짓이 되고 자기 파괴를 불러오지 않으려면 진리를 향하여 방향을 잡아야 한다. 그런 까닭에 “정의는 자유와 대립 되는 게 아니라 그 조건이요, 자유의 존립 근거가 된다.”(J. Ratzinger, "Libertà e verità", 26)
이 숙고로부터 라칭거의 자유에 관한 구체적인 사상이 출발한다. 진정한 자유는 진리에 대한 탐구, 참 선에 대한 탐구를 가정하며 그 결과로 똑바르고 올바른 것들을 행하고 인식하는 완성을 실현한다.
즉 진리는 자유와 선을 향하여 인애하는 규범이며 곧 완전함이다. 이를 통하여 라칭거는 강조하기를, 높은 책임감을 간직하는 것은 참된 것을 환기시키며 선은 누구에게나 종교적 영역과 정치적 영역, 문화적 영역 안에서 안내의 역할을 행하는 것으로 돌아온다. 여기에서 드러나는 권고는 다음과 같다.
“우리는 함께 자유를 향한, 그리고 진리의 탐구 안에서의 격투에 열중해야 한다.
이 두 가지의 것은 함께 손에서 나아가거나 또는 비참하게 소멸한다.
(베네딕도 16세 “체코 공화국 순방 중 정치인들과 시민사회, 외교단과의 담화”, 2009.9.26.)
라칭거의 사상 안에서 자유의 주제가 타자성의 주제와 연결되고, 현대인의 그릇된 확신을 비판 한다.
인간의 자유는 하느님 사랑의 넓은 공간 안에, 기쁨 안에 있는 것이지만 이 자유는 또한 타인을 위해, 타인과 함께하는 것까지 포함하기 때문이다. 타인에 반대되는 자유는 없다.
만약에 내가 절대성을 가지게 된다면, 나는 타인의 적이 되고, 우리는 더 이상 함께 살 수 없으며 모든 삶은 무자비하게 되고 좌절하게 된다. 오직 분배되는 자유만이 인간의 자유이다. 이 자유는 우리가 함께 있을 때 비로소 그 조화 안에 들어갈 수 있다.
하지만 우리가 살펴본 바와 같이 이따금 현대인은 자신이 자기 삶과 사회의 유일한 주인이라는 그릇된 확신을 가지고 있다. 이러한 생각은 자기 본위의 폐쇄성에서 나온다. 자유가 하나의 가치인 것은 분명하지만 다른 가치들과 같이 어울려야 하고 그것들과 함께 흩어질 수 없는 전체를 이루어야 한다는 것이다.
<서울교리신학원 신학편지 / 2023년 10월 리포트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