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림 제2주일 강론)
죄의 용서를 위한 회개의 세례
오늘은 대림 제2주일입니다. 지난 주일에 대림 시기의 말씀에 대해서 설명해 드렸지만, 항상 대림 제2주일의 복음 주제는 ‘세례자 요한의 회개 촉구’입니다. 세례자 요한이 등장하는 이유는 그가 예수님을 그리스도라고 증거하고 있고, 그리스도 곧 메시아를 맞이하기 위해 합당한 준비를 하라고 일러주기 때문입니다. 세례자 요한은 잘 알다시피 구약의 마지막 예언자이고 요르단강에서 회개의 증표로 세례를 베푼 사람입니다. 그리고 이사야 예언자가 언급한 대로 세례자 요한은 ‘광야에서 외치는 이의 소리이고 주님의 길을 마련하고 곧게 내는’ 사명을 지닌 사람이었습니다. 그 사명대로 세례자 요한은 예언자들의 계보를 이어받아 백성들에게 회개를 부르짖었습니다.
우리도 세례를 받았습니다. 세례성사를 통하여 물로만 세례받은 것이 아니라 주님의 성령 세례도 함께 받았습니다. 그리고 그 세례의 갱신과 완성을 위해 견진성사도 받았습니다. 제가 이스라엘 성지 순례할 때 본 광경입니다. 아마 동방 정교회 같은데, 요르단 강에서 완전히 몸이 물에 잠긴 상태에서 예비 신자들에게 세례를 주고 있었습니다. 그냥 머리에 물을 붓는 것이 아니라 머리를 포함한 온몸이 물에 잠길 때까지 침수시킵니다. 물은 성서적으로 두 가지 의미가 있습니다. 하나는 몸과 마음을 정결케 하는 정화수이고, 또 다른 하나는 죽음을 상징합니다. 그러니 세례는 과거의 나를 죽이고 죄를 씻어 새롭게 태어나는 것입니다. 로마서에서 사도 바오로는 세례를 이렇게 설명합니다. “그리스도 예수님과 하나 되는 세례를 받은 우리가 모두 그분의 죽음과 하나 되는 세례를 받았다는 사실을 여러분은 모릅니까? 과연 우리는 그분의 죽음과 하나 되는 세례를 통하여 그분과 함께 묻혔습니다. 그리하여 그리스도께서 아버지의 영광을 통하여 죽은 이들 가운데에서 되살아나신 것처럼, 우리도 새로운 삶을 살아가게 되었습니다.”(로마 6, 3-4) 세례는 그리스도와 함께 죽고 그리스도와 함께 부활하는 것입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반드시 회개가 필요합니다. 회개는 나의 죄를 그리스도의 십자가에 함께 못 박는 것입니다. 회개는 입술로만 뉘우치는 것이 아니라 변화된 삶을 살아가는 전환점입니다. 회개는 생각을 바꾸고 행실을 바꾸는 것입니다.
천주교는 그 회개를 공적으로 완결짓기 위해 고해성사 제도를 만들었습니다. 회개와 죄 고백이 개인적인 일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우리는 죄의 연대성 속에 살아갑니다. 즉, 나의 죄는 고리에 고리를 만들어 주변으로 퍼져 나갑니다. 그리고 그 죄는 우리 교회가 그리스도를 머리로 하는 한 몸 공동체이기 때문에 연대책임을 지닙니다. 사실 초대교회 시절에는 공개 고백과 공동 보속이었습니다. 물론 후대에는 개인고백과 비밀고백으로 바뀌었지만 원래 고해성사는 공동체적인 성격을 지닙니다. 따라서 혼자 회개하고 하느님께 마음으로 고백하면 죄가 없어지는 것이 아니라 반드시 사제를 통해서 고백과 용서가 공적으로 선포되어야 합니다. 거기에는 절차가 필요합니다. 교리에 의하면 5단계인데, 양심성찰-회개-결심-고백-보속입니다. 고백 전까지는 개인의 일입니다. 그러나 철저하게 자신의 죄를 뉘우치지 않으면 고백은 의미가 없습니다. 크게 뉘우치면 은총 또한 넘칩니다. 그러나 작게 뉘우치고 합리화하면 은총은 사라집니다. 허위, 축소, 추상적인 고백은 죄와 그 벌이 그대로 남아 있게 됩니다. 양심과 십계명, 그리고 교회법에 비추어 성찰하되 진심 어린 눈물과 후회가 없다면 회개가 덜 된 것입니다. 한편 고백은 원래 부끄럽고 수치스러워며 고통스러운 것입니다. 그 과정이 없이는 내 영이 순수해지고 깨끗해지지 않습니다. 성경에 나병환자가 주님께 자신의 상처를 드러내 보이지 않습니까? 그래야 주님께서 치유해주시지 않습니까?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마음속에 있는 나병을 드러내 보여야 합니다. 통렬하게 반성하고 나의 교만과 탐욕, 이기심과 인색함, 옹졸함과 거짓, 분노, 질투, 과음과 과식은 물론이고 윤리적으로 혹은 경제적으로 타락하여 썩어 뭉글어진 나를 드러내 보여야 합니다. 그래야 용서받고 치유받을 수 있습니다. 판공성사가 여러분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잘 준비하시기 바랍니다. 형식이 아니라 본질이 중요합니다. 고해는 의무가 아니라 은총입니다.
끝으로 대림 제2주일을 지내면서 우리는 스스로 속죄와 회개의 의미로 세례자 요한을 닮도록 해야 하겠습니다. 세례자 요한은 광야에서 살면서 집 없이 금욕생활을 했습니다. 그는 낙타털 옷을 거치고 메뚜기와 들꿀을 먹고 살았습니다. 이는 육신의 고행을 통해서 정신을 정화하고 단련하기 위함입니다. 배가 부르면 기도가 되지 않습니다. 술에 취해 있으면 집중이 되지 않습니다. 절제하지 않으면 주님을 모실 마음이 생기지 않습니다. 부디 대림 실천표와 성경필사를 게을리하지 않으면서 이번 주간을 잘 보내시기를 바랍니다. 성탄이 이제 얼마 남지 않았습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