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림 제3주간(1217-23)

구유 경배

이창영 바오로 신부 (대구 가톨릭대학교 특임 교수)

 

크리스마스트리와 더불어 성탄절 장식 중에 많은 관심을 끄는 것이 바로 예수님의 탄생 장소인 구유입니다. 비록 보잘것없는 말구유이지만 가톨릭교회는 역사 안에서 구유 경배를 계속해 오고 있습니다.

구유 경배에 대한 역사를 간단하게 살펴보면, 오늘날과 같은 형태의 구유는 1223년 아씨시의 프란치스코 성인이 이탈리아 그레치코라는 곳의 교회 동굴 앞에 처음으로 구유를 만들면서 시작되었습니다. 프란치스코 성인은 수도회 형제들에게 베들레헴의 참모습, 즉 하느님의 아들이 가난과 궁핍 속에서 인간들에게 오셨다는 사실을 생생하게 재현하고 싶어서 교황님의 허락을 받아 구유를 만들어 놓고, 소와 나귀를 아기 예수님 옆에 배치하였습니다. 이것이 오늘날 말구유가 탄생하게 된 역사적인 배경이라 할 수 있습니다.

성탄 대축일로부터 주님 공현 대축일까지 교회는 구유 경배를 계속해 왔습니다. 마구간에서 태어나신 아기 예수님을 하늘의 천사들이 찬미했고, 목동들이 찾아와 경배하였습니다. 또한 멀리서 별의 인도를 따라 인류를 구원하실 아기 예수님께 경배드리기 위해 동방의 박사들이 구유를 찾아왔습니다. 가톨릭교회는 오랫동안 이러한 사실을 바탕으로 아기 예수님께 대한 경배를 꾸준히 하면서 성탄 시기를 지내왔습니다.

세례로 태어난 모든 그리스도교 신자들이 주님의 자녀로서 아기 예수님의 탄생을 경배하는 것은 마땅한 일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구유에 누워 계시는 아기 예수님을 경배하면서 그분이 우리의 왕이심을 확인하고, 동방의 박사들이 아기 예수님께 황금과 유향과 몰약을 예물로 드린 것처럼 우리도 정성 된 마음으로 아기 예수님께 예물을 봉헌해야 하겠습니다.

우리는 교회의 이 아름다운 전통인 구유 경배를 통하여 날마다 우리의 삶이 성탄이 될 수 있도록 해야 하겠습니다.

 

 

 

 

 

주님성탄대축일(1224-30)

성탄의 신비

이창영 바오로 신부 (대구 가톨릭대학교 특임 교수)

성탄을 진심으로 축하드립니다. 오늘은 참으로 기쁜 날, 축복된 날입니다.

하느님이 인간이 되시어 이 세상에 오심으로써 이 세상은 이제 완전히 다른 세상이 되었습니다. 이제 더 이상 다툼과 분열의 세상이 아니며, 미움과 증오의 세상이 아니며, 죄악과 불신의 세상이 아닌 새로운 세상이 되었습니다. 그래서 이제 이 세상은 의미 있는 세상, 기쁨과 즐거움이 넘치는 세상으로 바뀌게 되었습니다. 왜냐하면 하느님께서 인간이 되셔서 우리를 찾아오심으로써 구원의 길, 평화의 길이 활짝 열렸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구원과 평화를 주시러 오신 하느님은 참 이상한 방법으로 오셨습니다. 인간으로서는 도저히 상상도 할 수 없는 방법으로 이 세상에 오신 것입니다. 왜냐하면 세상을 창조하시고, 인간에게 생명을 주신 하느님께서 직접 인간의 모습으로 오셨기 때문입니다. 인간을 너무나 사랑하시기 때문에 아예 인간이 되셔서 오신 것입니다.

이렇게 완전한 사랑은 닮는 것입니다. 완벽한 사랑은 사랑하는 상대방을 온전히 닮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느님께서 인간을 닮아 사람이 되신 것입니다. 이 얼마나 놀랍고 신비로운 사랑입니까? 하느님께서 인간을 너무나 사랑하신 나머지 아예 인간이 되셔서 오시다니, 이 얼마나 깊고 심오한 사랑입니까? 과연 이보다 더 완벽한, 이보다 더 완전한 사랑이 도대체 어디 있겠습니까?

예수님께서 이 세상의 한가운데 태어나셨듯이 우리도 이 세상 한 가운데에 또 다른 그리스도로 태어나야 하겠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어제도 오늘도 악이 있는 곳에 악을 제거하시고, 불행이 있는 곳에 행복을 심어주시고, 싸움과 분열이 있는 곳에 평화와 안정을 심어주십니다. 그러기에 우리도 예수님처럼 이 세상의 구원을 위해 그리스도인답게 살아야 하겠습니다.

하느님이 사람이 되신 이날은 이 세상에 참된 구원의 길, 참된 평화의 길이 열리는 참으로 복된 날입니다. 오늘 우리가 더 이상 세상 욕심에 사로잡히지 않아도 행복할 수 있음을 확신할 수 있다면, 오늘은 우리 마음에도 하느님께서 태어나신 날입니다. 자신을 자꾸 내어주어도 결코 손해가 되지 않는다는 것을 깨닫게 되는 오늘은, 하느님께서 주신 참으로 기쁘고 즐거운 날입니다. 성탄의 은총이 늘 우리와 함께하기를 빕니다.

 

(1231-16)

고통을 은총으로

 

김태현 마태오 신부 (인천가톨릭대학 교수)

 

많은 이들이 자신의 가정이 성가정이 되기를 기도합니다. 그런데 성가정은 무엇일까요? 단지 모든 가족원들이 하느님을 믿는 가정일까요? 아니면 아무런 문제없는 평화로운 가정일까요? 아니면 부족한 것 없는 부유한 가정일까요? 이러한 기준은 모두 예수님의 성가정하고는 거리가 너무나 떨어져 있습니다.

성가정은 결혼 전에 파혼을 결심했던 가정이고, 아이를 낳을 때 방이 없어 냄새나는 마구간에서 아이를 낳아야 하는 가정이었습니다. 또한 그 아이를 나라의 권력자가 죽이려고 해서 이집트라는 다른 나라로까지 피신하고, 그 권력자가 죽어서야 고국으로 돌아온 가정입니다. 성전에서 아이를 잃어버려 사흘이나 찾아 헤매던 고생의 기억이 남은 가정이며, 일찍이 집안의 가장이 세상을 떠난 어려운 가정이었습니다. 성년이 되었음에도 가정을 꾸리지 않고 집을 나선 아들에, 그 아들의 이상한 소문에 어머니가 친지들과 함께 찾아 나섰을 때 누가 내 어머니이며, 내 형제인가?”라는 반문을 들은 가정입니다. 더욱이 십자가를 지고 가는 아들을 만나는 어머니, 그리고 죄인으로 손가락질 받으며 처형장에서 어머니보다 먼저 세상을 떠나는 아들을 바라보아야하는 그 가정입니다. 이 가정을 성가정이라고 부르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이 가정처럼 가정을 이루는 순간부터 고통이 계속된 경우도 없을 것입니다.

많은 이들이 행복한 가정을 꿈꾸고 있습니다. 그러나 행복한 가정은 고통이 없다고, 시련이 없다고, 많은 것들을 다 가지고 있다고 해서 얻어지는 가정이 아님을 잊어서는 안 될 것입니다. 그보다는 하느님 뜻에 맡기며 최선을 다하는 가정이 성가정이 될 것입니다.

요셉과 성모님은 하느님 뜻 안에서 예수님을 키우기에 최선을 다하셨습니다. 머나먼 타국으로 서로를 의지하며 피난도 가셨고, 죽음의 순간에도 십자가 밑에서 함께 하시기를 마다하지 않으셨습니다. 예수님의 성가정은 그 고통 속에서도 하느님께 의탁하고 사랑에 최선을 다하였기에 성가정으로, 우리의 모범이 되는 것입니다.

 

(17-13)

희망이 담긴 봉헌

 

김태현 마태오 신부 (인천가톨릭대학 교수)

 

메시아를 기다리던 동방의 세 박사는 경배하기 위해 황금과 유향과 몰약을 가지고 자신의 고장을 떠나 유다 베들레헴까지 찾아옵니다.

동방박사가 지나온 여정은 쉽지 않았을 것입니다. 당시는 지금처럼 교통이 발달하지 못했고, 치안이 잘 되어 있었던 것도 아닙니다. 곳곳에 강도가 득실거렸고, 수많은 걸림돌과 위협 속에서도 보물을 가지고 마구간의 아기를 별 하나만 보고 찾아 온 것입니다. 그 먼 거리를 찾아 온 그들은 어떠한 보상을 받았습니까? 이제 막 마구간에 초라하게 태어난 아기만을 보았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황금과 유향과 몰약을 그 아기에게 바칩니다. 이 세 선물은 그들의 희망을 고백합니다. 황금은 가장 고귀한 분을 상징하며 아기가 기다리던 왕이심을 고백합니다. 유향은 제사때 사용하는 것으로 그 아기가 하느님으로부터 오셨음을 고백합니다. 몰약은 장례를 치를 때 썩지 않도록 하는 약품으로 그 아기가 죽음을 이긴 생명이심을 고백합니다.

메시아에 대한 희망이 담긴 봉헌을 동방박사들은 하였고, 가장 큰 보답을 받았습니다. 초라해보였던 마구간의 아기가 보여주신 구원 신비가 이루어졌기 때문입니다.

동방박사가 고백하는 희망은 주님을 보기 위해서라면 어떤 고통과 시련도 문제가 될 수 없다는 것을 가르쳐 줍니다. 우리는 어떠한 희망을 가지고 주님을 만나려고 합니까? 그 희망을 어떻게 고백하고 있습니까? 주님 공현 대축일 우리 앞에 오신 아기 예수님께 동방박사들과 함께 희망을 고백해봅시다.

 

 

 

 

 

 

 

 

(114-20)

세례의 기억

 

김태현 마태오 신부 (인천가톨릭대학 교수)

 

예수님께서 세례자 요한에게 세례 받으심으로 하느님께서 그분이 누구이신지를 공적으로 세상에 알려주시고 계십니다. “너는 내가 사랑하는 아들, 내 마음에 드는 아들이다.” 사실 하느님의 외아드님인 예수님께서는 부족하고 나약한 인간 세례자 요한에게 굳이 세례를 받으실 필요는 없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 세례를 받으심으로 우리 인간들 역시 세례를 받아야 한다는 것을 직접 보여주시고 계십니다. 하느님의 아드님도 받으신 세례, 따라서 연약하고 부족한 인간 역시 회개하고 세례를 받아야 한다는 것이지요. 그분을 따라 세례를 받음으로서 은총을 얻게 하려는 것입니다.

세례는 우리가 하느님 안에서 다시 태어나겠다는 결심으로 시작됩니다. 새로운 생명을 얻기 위한 첫 걸음으로 변화, 즉 회개를 요구합니다. 그리고 새로운 생명으로 태어난 우리는 하느님을 아버지라 부를 수 있는 은총의 자리를 차지하게 됩니다. 또한 주님 세례 때에 나타나신 성령이 우리를 그 은총의 자리를 지킬 수 있도록 도와주시고 인도해 주십니다.

예수님의 세례는 단지 세례자 요한 앞에서 자신을 낮추고, 하느님의 아드님임을 드러내는 것이 아니라 우리 모두를 위하여 낮춘 겸손과 사랑의 초대입니다. 그렇다면 예수님을 따른다는 우리 역시 그 모습을 따라야 하지 않을까요? 오늘 예수님의 세례 장면을 보면서, 우리 자신의 세례를 기억해봅시다.

하느님의 자녀로서 자유를 누리기 위하여 죄를 끊어 버리고 죄의 지배를 받지 않기 위하여 악을 끊어버리겠다는 그 약속들을 우리는 기억해야합니다. 창조주 성부와 구원자이신 성자, 그리고 우리를 이끄시는 성령과 교회. 그리고 영원한 삶에 대한 굳은 신뢰에 대한 우리의 믿음의 응답을 기억하며 살아가야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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