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누리의 임금이신 그리스도 왕
마태오 25, 31-46/ 2023. 11. 26. 온 누리의 임금이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 왕 대축일
오늘은 그리스도왕 대축일입니다. 이번 주간을 마지막으로 교회 전례는 연중시기를 끝맺고 성탄을 준비하는 대림시기로 들어갑니다. 연중시기를 끝내며 교회는 다시 한번 더 예수님이야말로 온 세상의 임금이시고 우리의 주님이시며 메시아이며 왕이시라고 고백하고 선포합니다. 이런 고백과 선포가 우리 신앙의 출발점입니다. 그런데 예수 그리스도가 우리의 왕이라는 표현은 언뜻 이해되지 않을 수 있고 또 오해를 불러일으키기도 합니다. 실제로 예수님을 왕으로 생각하는 사람들과 예수님 사이에 끊임없는 갈등이 있었고, 결국은 예수님의 죽음 자체도 이런 오해의 귀결이라고도 볼 수 있습니다.
예수님은 “하느님의 나라가 우리 가까이에 왔다”는 말씀으로 당신의 복음 선포를 시작했습니다. 그분은 하느님 나라로 표현되는 하느님의 구원과 은총, 하느님의 치유와 용서와 자비를 우리에게 보여주었습니다. 아픈 이들을 치유해 주시며, 죄인들을 용서해 주시며, 많은 이들을 배불리 먹이시며 하느님의 구원이 다가왔음을 선포했습니다. 그러나 많은 이들이 예수님의 가르침과 행동을 보고 예수님이 “왕”이 되려고 한다고 오해했습니다. 예수님의 제자들 조차도 그분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제자들은 세 차례에 걸쳐서 예수님의 나라가 오면 자신들을 제일 앞 자리에, 좋은 자리에 앉게 해달라고 부탁했습니다. 그들의 청원에 예수님의 대답은 가장 작은 이, 가장 낮은 이, 그리고 자기 자신을 희생할 수 있는 사람이 되라는 것이었습니다. 그럼에도 예수님을 따르는 많은 이들이 예수님을 왕으로 모시기를 원했고, 그들의 마음 안에는 사실상 예수님이 주시는 빵과 건강과 힘을 가지고자 하는 욕심이 숨어있었습니다. 마찬가지로 예수님을 반대하는 이들 역시 예수님이 왕이 되려고 한다고 오해했습니다. 그들의 오해는 결국 십자가 위의 죄명패 “유다의 왕 나자렛 예수”에서 가장 잘 드러납니다. 예수님은 유다인의 왕이 되려고 했다는 혐의를 쓰고, 로마 총독에 의해 십자가 죽음을 맞이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그런 왕이 되고자 하지 않았습니다. 예수님은 공생활을 시작하시기 전 광야에서 악마의 유혹을 받으실 때, 빵과 권력과 명예의 유혹을 단호히 뿌리쳤습니다. 예수님은 빵과 권력과 명예를 이용하기를 원하지 않으셨습니다. 반대로 모든 이들이 빵과 권력과 명예를 추구하는 족쇄에서 자유롭게 해방되기를 원하셨습니다. 그러기에 그분께서는 가장 약하고 무력한 모습으로, 가장 낮은 이들의 자리에, 가장 아픈 이들과 함께 계셨습니다. 세상이 추구하는 풍요가 아니라 하느님의 참다운 생명을 보여주셨고, 빵과 권력과 명예로 얻을 수 없는 참다운 행복을 우리에게 보여주셨습니다. 이런 의미에서 오늘 복음에서도 예수님께서는 가장 작은 이들이 바로 당신의 형제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분께서는 이웃에 대한 연민과 죽음에 이르는 헌신의 삶으로 참다운 왕이 누구인지를 보여주셨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온 누리의 임금이시요 왕이십니다. 빵과 권력과 명예로 왕권을 행사하시는 왕이 아니라, 연민과 약함과 헌신의 힘을 행사하시는 왕이십니다. 더 많은 빵과 권력과 명예를 주시는 분이 아니라 그런 집착과 아집에서 우리를 해방시켜 주시는 왕이십니다. 온 누리의 임금이시요 왕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우리의 삶이 참다운 자유를 얻고, 또 다른 행복을 맞보며, 하느님 앞에서 참다운 생명을 얻습니다. 주님이시야말로 온 누리의 참다운 왕이십니다.
오늘 그리스도 왕 대축일을 지내며, 우리가 참으로 바라는 예수님은 어떤 분이신지 다시 한번 묵상하며, 이 미사를 봉헌합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