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중 제 31주일
✠ 마태오복음 23,1-12
"섬기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11)
오늘 복음의 주제는 "겸손"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당신의 말씀을 듣는 이들에게 특히 제자들에게 율법학자들과 바리사이들 처럼 살아서는 안된다고 하십니다.
복음서에서 그들은 자기자랑꾼들로 드러납니다.
그 누구보다도 하느님을 섬긴다는 그들이 사람들 앞에서 위대한 인물로, 지식인으로 존경 받고 싶은 갈증으로 목이 타서 신앙조차 위선으로 포장하고 있습니다.
하느님보다 자신을 섬기고 있는 것이지요. 하느님의 사랑받는 자녀라는 자존감도 없는 사람들입니다.
사실 진정한 자존감이 없는 사람은 끊임없이 다른 이에게서 자신의 존재를 확인하려 합니다.
그렇다면 참 겸손이란 무엇일까요?
물론 무조건 자기를 아무것도 아닌 것처럼 여기는 것을 의미하지 않습니다.
이런 얘기가 있습니다.
늘 자신은 한심한 아이라고 고민하는 학생이 있었습니다. "나는 왜 잘하는 것이 하나도 없을까?"
학생의 자책을 귀기울여 들은 선생님은 이런 이야기를 들려줍니다.
"세상에서 단 두 장밖에 없는 우표가 있었어. 두 사람이 한 장씩 나눠 가졌지. 어느 날 한 사람이 다른 사람을 찾아갔단다.
'당신 우표를 내게 파십시오. 우표 가격의 열 배를 드리겠습니다.' 상대방은 이게 왠 떡인가 하고 팔았지.
우표를 받은 그는 그 자리에서 찢어 버렸어.
'아니 왜 그러시는 겁니까?'
상대방이 어이없다는 표정으로 바라보자 그는 말했다.
'이제 이 우표는 세상에 하나밖에 없습니다.
그러니 부르는 게 값일 테지요.'
그 우표는 당연히 이전의 두 장을 합친 것보다 훨씬 비싸게 팔렸지."
선생님은 제자를 따뜻한 눈길로 바라보며 말했습니다.
"종이에 불과한 우표도 세상에 단 한 장이라는 사실로 값어치가 엄청나단다. 너도 마찬가지야. 늘 기억해 두렴. 너라는 존재는 세상에 단 하나밖에 없다는 이유만으로 무한한 가치를 지녔다는 걸."
자기의 존재가치를 알 때, 진정한 자존감이 있을 때 겸손할 수 있습니다.
진정한 자존감은 자신이 세상에서 단 하나 밖에 없는 유일한 존재라는 것을 알고 하느님의 사랑스런 눈길 아래 머물 때 생겨납니다.
예수님께서는 가장 높은 사람은 섬기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고 말씀하십니다.(11절)
이 말씀은 예수님께서 당신께서는 섬김을 받으러 오신 것이 아니라 섬기러 왔다고 하신 말씀(20장 28절)을 기억하게 합니다.
예수님께서 인간을 섬길 수 있었던 것은 당신의 정체성, 하느님의 유일한 아들임을 알고 계신데에 기인합니다.
정체성이 없으면, 자존감이 없으면 다른 이를 섬기는 것은 창피한 일이고 비굴한 일일 수 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위로 올라서야지요.
남을 내리 눌러야 존재감을 느끼게 되지요.
바리사이들과 율법학자들이 예수라는 인물을 견뎌낼 수 없었던 이유도 여기에 있습니다.
"숨은 일도 보시는 하느님 아버지께 보이는 것"(마태6장 참조)으로 자존감을 키워야 합니다.
우리의 시선이 보이지 않는 하느님께 가 있을 때 보이는 인간의 눈길에 사로잡히지 않습니다.
그래서 겸손이란 하느님의 눈길에 사로잡히는 참된 기도 없이는 불가능합니다.
머물러봅시다. 그냥 하느님 그분 앞에 그분 사랑을 느끼며 머물러봅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