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중 제30주일)

 

사랑의 이중계명

 

오늘 예수님의 가장 큰 계명에 대한 말씀은 당신 스스로 창작하신 것이 아닙니다. 예수님 역시 구약성경의 전통 속에 살고 계셨고, 구역 성경을 갈파하고 계셨습니다. 먼저 신명기 6장의 한 대목을 말씀하시고, 이어서 레위기 19장의 한 대목을 말씀하십니다.

 

네 마음을 다하고 네 목숨을 다하고 네 정신을 다하여 주 너의 하느님을 사랑해야 한다.”(신명 6, 5)

 

네 이웃을 너 자신처럼 사랑해야 한다.”(레위 19, 18)

 

예수님은 구약성경의 대표격인 율법과 예언서를 요약하면서 이른바 사랑의 이중 계명을 말씀하십니다. 사실 유대인들이 그리 중시하던 율법은 총 613가지 조항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율법 조항 613가지는 십계명의 확장판이죠. 율법의 모든 세칙은 십계명이 시간이 지나면서 세분화되었고, 보강되었습니다. 그러나 그 정신은 십계명에 근거합니다. 십계명은 1계명~3계명까지 하느님 사랑에 관한 계명이고, 4계명부터 10계명까지는 이웃사랑에 대한 계명입니다. 그러니까 예수님께서 오늘 복음에서 말씀하신 이른바 사랑의 이중계명도 모든 율법의 근간인 십계명의 정신에 근거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당시 율법학자들과 바리사리들은 율법의 정신보다 율법 조항 자체를 지키는 것에 더 의미를 두었습니다. 이에 예수님은 율법의 형식주의가 아니라 율법의 본질인 사랑을 재차 강조하신 것입니다.

 

우리 신자들도 계명생활을 합니다. 계명은 외우라고 있는 것이 아니라 지키라고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본질적으로는 하느님 사랑과 이웃사랑을 목적으로 계명을 지키는 것입니다.

 

이 대목에서 김병엽 신부님 이야기를 들려 드리겠습니다. 신앙생활 오랜 하신 분들은 한 번쯤은 들어 보셨을 겁니다.(사고 경위 설명)

 

<유언장>

 

1. 안구를 기증한다.

2. 장기가 병원에서 필요하다면 육체 어는 부분이든지 기증한다.

3. 대학원에서 연구에 필요하다면 육체 전부를 실험 도구로 제공한다.

4. 교회법에 저촉되지 않는다면 화장하여 그 재는 산림 성장의 비료로 하면 좋겠다.

5. 대영백과사전은 ㅇㅇㅇ신부에게 기증하고 책은 ㅇㅇㅇ신부에게 위탁하여 처리한다.

6. 만일 돈이 있다면 ㅇㅇㅇ 신부에게 위탁하여 처리게 한다.

 

982월 교통 사고로 돌아가신 김신부님의 유언장입니다. 유언대로 다 시행하였고 동료사제들은 평생 학생들을 위해 사셨던 신부님의 유지를 받들어 교통사고를 일으켰던 청년을 풀어주게 하였으며, 통장에 있던 30만원 찾아서 특별히 사랑하시던 성심여자 중고등학생들에게 볼펜 한 자루씩을 돌렸다고 합니다.

 

남김없이 사랑하신 분의 아름다운 후일담입니다. 또한 오늘 복음을 충실히 실천한 분의 이야기이기도 합니다. 저는 신부님이 돌아가신 뒤 10년 후 성모여고와 데레사 여고에서 교목을 했습니다. 항상 김병엽 신부님은 저의 롤모델이었습니다. 그분처럼 살 수는 없지만 닮아가려고 무던히 노력했습니다. 그래서 후회가 없습니다. 신부님의 사고사는 한 개인의 역사로 보면 어이없고 딱한 죽음일 수 있습니다. 그러나 하느님의 아들로, 그리스도의 사제로써 충만한 완성을 이룬 삶이었습니다. 항상 힘들 때 그분의 유언장을 생각합니다. 그것은 생을 마치면서 삶을 정리하기 위한 말이 아닙니다. 그것은 또 다른 삶을 시작하는 일종의 권두사입니다. 세월이 흐르면 젊음도 가도 열정도 식습니다. 그리고 언제인지는 모르지만 내가 기거하던 육신과도 이별합니다. 그러나 한 가지 변함없는 것? 사랑, 그것은 결코 시들지 않습니다. 그 신부님은 아마 죽어서도 천국에서 활짝 웃고 계실 것입니다. 그리고 살아 있는 우리에게 말씀하십니다. 서로 사랑하라고. 죽음이 설사 우리를 갈라놓는다 해도 그 사랑만큼은 영원히 내 곁에 살아 있는 것이라고. 그리고 그 사랑 안에서 다시 만날 수 있다고...

 

갑자기 파킨스 병으로 오랫동안 고생하다 돌아가신 요한 바오로 2세 교황님의 유언이 생각납니다. “서로 사랑하십시오. 나는 행복합니다. 여러분도 행복하십시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