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10.22 연중 제29주일)

 

전교 주일을 맞이하여

 

오늘은 전교주일입니다. 그래서 독서와 복음 말씀이 모두 전교를 가리키고 있습니다. 1독서 이사야서는 모든 민족들이 주님의 산으로 밀려들 것이라고 예언합니다. 주님의 산은 시온산이고, 야곱의 하느님 집은 예루살렘 성전을 말합니다. 그러고 보니 이사야 예언자는 구약 시대에 이미 선민이 아니라 만민 구원을 내다 본 것입니다. 그리고 제2독서 로마서는 만민 구원은 예수님은 주님이시라고 입으로 고백하고 마음으로 믿어 구원을 얻는다고 전합니다. 역시 만민 구원을 말하고 있습니다. 마태오 복음은 더 구체적으로 만민 구원의 방법으로 모든 민족들에게 세례를 주고, 그리스도의 계명을 지키게 하라고 하면서 전교는 선택이 아니라 사명이라고 가르치고 있습니다. 이렇게 오늘 전례 독서 세 가지는 모두 전교를 부르짖고 있습니다.

 

그러나 갈수록 전교가 어렵니다. 한국 천주교회는 2000년도를 기점으로 입교율이 급격하게 하락 곡선을 그리고 있습니다. 아니러니컬하게도 설문조사를 하면 항상 선호하는 종교 1위가 천주교이지만, 실제로 입교하는 사람은 적습니다. 그리고 이러한 현상은 비단 우리뿐만 아니라 개신교, 불교도 비슷합니다. 다시 말해 물질문명이 발달하고 선진국 대열로 진입하면서 종교에 대한 관심이 적어지고 있다는 것입니다. 이제 종교는 노인들의 전유물이 되어 버렸고, 젊은이들은 더 이상 교회를 찾지 않습니다. 전포성당 주변에 얼마나 많은 젊은이들이 거리를 활보하고 다닙니까? 그러나 성당에 눈길조차 주지 않습니다. 화장실 급할 때 찾는 것 말고는.

 

젊은이들이 그저 종교에 관심 없고 세속에만 빠져 있어서 성당에 무관심할까요? 저는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물질이 발달할수록 정신은 더 황폐화되어 갑니다. 물질은 풍요로워졌지만 상대적 박탈감과 스트레스는 더 켜졌습니다. 최첨단 문명으로 편리한 세상이 되었지만 우리는 영혼의 휴식 없이 더 바쁘게 살아가고 있습니다. 또 이웃 간의 정은 사라지고 서로에 대한 무관심과 경계로 삭막한 세상을 살아가고 있습니다. 겉으로는 치장을 열심히 하고 다니지만 속으로는 텅 비어 있습니다. 함께 있지만 늘 외롭습니다. 소유하고 있지만 공허합니다. 그래서 젊은이들 가운데 중독자들이 많습니다. 성형 중독, 마약 중독, 알콜 중독, 성 중독, 게임 중독, 인터넷 중독, 타로 중독 등. 젊은이들은 무신론자라서 성당을 찾지 않는 것이 아닙니다. 그들은 현재 영혼의 길을 잃었습니다. 오히려 지금의 젊은이들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따듯한 관심과 사랑인지 모르겠습니다. 어릴 때부터 혼자였던 그들은 누군가의 관심과 이해가 절실히 필요한 친구들일지 모르겠습니다. 왜 신천지에 청년 신자들이 많겠습니까? 사이비이지만 같은 청년 또래들이 청년들의 결핍과 욕구를 이해하고 채워주기 때문입니다. 어떤 천주교 신자였던 청년이 신천지에 들어가서 한 말이 있지요. “성당에 가면 아무도 안 알아주는데, 여기서는 모두가 나에게 관심을 가지고 이야기를 들어 줍니다.” 이 이야기는 우리가 새겨들어야 할 대목입니다.

 

성당 앞에 있는 피자집에 늘어선 긴 줄을 보십시오. 한 시간 넘게 대기하며 자기 차례를 오기를 기다리는 젊은이들을 보십시오. 10명 남짓한 우리 청년회와 너무 대조적입니다. 왜 이리 장사가 잘 될까요? 첫째는 맛입니다. 둘째는 가성비입니다. 셋째는 입소문입니다. 종교도 마찬가지입니다. 맛집으로 소문 나야지 사람들이 찾습니다. 무엇으로 맛을 낼까요? 예수님께서 뭐라하셨습니까? 너희들은 세상과 빛과 소금이라고 하지 않았습니까? 소금이 제 짠맛을 잃으면 무엇으로 짜게 할 수 있겠냐고 하셨지요. 소금의 짠맛은 곧 신자들의 선한 행실입니다. 우리가 가정과 직장과 사회에서 좋은 행실을 보이면 분명 사람들은 우리가 믿는 종교가 무엇인지 관심을 가질 것입니다. 외인들로부터 평판이 좋은 신자들이 당당히 성호경을 그으며 식사 전 기도를 할 때 사람들은 쳐다볼 것입니다. “역시 천주교 신자들은 다르군.” 그리고 또 다른 짠맛은 무엇입니까? 일상의 기쁨입니다. 우리가 매일 고달픈 삶을 살면서도 기쁨과 미소를 잃지 않는다면 사람들은 물을 것입니다. “뭐가 그리 좋으냐고?” 그 때 말해야지요. “천주교 신자들은 어떠한 처지에 있든지 감사하고 기뻐할 줄 압니다.”

 

둘째는 가성비라고 했는데, 가격 대비 양이 풍부할 때 가성비가 좋다고 말합니다. 우리 천주교로 치면 무엇을 말할까요? 주일헌금과 교무금 적게 내고도 넘치게 받는 영적 서비스를 말할까요? 그럴듯하긴 한데 정답은 아닙니다. 가끔 개신교 신자 중에 십일조가 너무 부담스러워 천주교로 갈아탔다고 말하는 분도 있긴 하지만요. 영적인 가성비는 하느님의 자비가 넘치고 넘친다는 말입니다. 이것을 본당 신부와 신자들이 보여주어야 합니다. 우리들의 후한 처사로 부족하고 모자란 사람들도 받아주고, 도와주며, 함께 해 주는 것 말입니다.

 

셋째는 입소문입니다. 소문은 손님들이 내기도 하지만, 업주도 냅니다. 왜 광고가 있겠습니까? 천주교 신자들의 취약점이 바로 이것입니다. 가끔 어떤 입교자들 중에 이런 말씀을 하시는 분이 있습니다. “동네 이웃 중에 천주교 신자가 많은데, 가까이 지내면서도 아무도 성당 가지는 말을 하지 않더라고요. 그래서 혼자 스스로 찾아왔습니다.” 전교는 행실로도 하는 것이지만 입술로도 해야 합니다. 오늘 바오로 사도는 로마서에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기쁜 소식을 전하는 이들의 발이 얼마나 아름다운가!”

 

사랑하는 형제자매 여러분, 오늘 여러분들이 어떻게 이 자리에 있게 되었습니까? 누군가의 전교로 가능한 것이 아니었습니까? 가족이 했든, 지인이 했든, 누군가가 입교 권면을 하지 않았더라면 스스로 찾아오기 힘들었을 것입니다. , 생각해 보십시오. 우리 중에 자기기 먹어 본 음식이 맛이 있으면 주변에 맛집이라고 소개하지 않습니까? 그런데 미각으로 느끼는 맛보다 훨씬 좋은 맛이 있다면 왜 주변에 소개하지 않겠습니까? 시편 349절은 이렇게 말합니다. “주님이 얼마나 좋으신지 너희는 보고 맛들여라.” 이제 전교의 달이 얼마 남지 않았습니다. 현재 12명이 예비자 교리를 받고 있습니다. 11선교 할 수 있기를 기도해 봅니다. 선교 대상자를 찾고 그 영혼을 위해 묵주기도 5단을 바친 다음 용기 내어 한 번 말해 보십시오. ‘성당에 함께 가자고.’ 혹시 압니까? 하느님께서 마음을 열어주실지. 잠시 눈을 감고 선교 대상자들을 위해 기도합시다. 아멘.

 

  • 초롱 2023.10.24 00:03
    https://youtu.be/h3MCyz3e0II?si=5ZmLTEO5MEaAqe9K

    며칠 전 가톨릭평화방송 뉴스에 나온 것입니다.

    함께 시청하면서
    해결책을 찾아가는데 도움이 되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