묵주기도 성월 특강

 

관상에 이르는 묵주기도

 

1단계: 각 신비에 집중하고 주님의 말씀과 그 배경을 그린다. 묵상기도

2단계: 하느님 현존에 들어가 마음의 평화와 휴식을 얻는다. 마음의 기도

3단계: 하느님 현존과 일치하여 그 안에 머문다. 관상기도

 

기도문은 수단일 뿐 묵주기도의 목적은 하느님을 만나는 것이다.

기도문은 정신을 집중시키고 마음을 모으도록 도와주는 도구이다. 반복되는 기도문은 우리 정신을 단순화시키고 마음을 차분하게 만든다. 처음에는 기도문을 의식하지만 반복하다 보면 입으로는 기도문을 외우고 있지만 내 마음은 하느님 현존으로 옮아감을 느낄 것이다.

 

비유컨대, 묵주기도는 걷는 행위와 같다. 우리는 한 걸음 한 걸음을 의식하면서 걷지 않는다. 기계적으로 걸음을 반복하지만 걷는 행위에 의미를 두지 않는다. 우리는 걸으면서 서로 이야기를 나누고 아름다운 경치를 보며 탄복한다. 마찬가지로 묵주기도는 기도문을 반복해서 외우지만 그것에 의미를 두는 것이 아니라, 입으로는 기도문을 외우면서 속으로는 주님과 대화하고 주님 현존에 머물면서 황홀경에 빠지는 것이다.

 

또 다른 비유를 들겠다. 기도문은 강둑과 같고 기도는 강물과 같다. 강둑은 강물이 방향을 잡기 위해 필요하고 강물의 깊이와 흐름을 지켜준다. 그러나 우리가 관심을 가지는 것은 강물이지 강둑이 아니다. 기도문은 기도를 하게 하는 틀이다. 기도문은 기도가 아니다. 기도는 언제나 기도문을 넘어선다. 강둑은 강물을 바다로 흘러가게 하기 위해 필요할 뿐이다. 마찬가지로 우리가 하느님 현존 안으로 잠겨들면 기도문은 사라지고 하느님 사랑의 바다 한 가운데 있게 될 것이다.

 

묵주기도는 말을 초월하여 침묵하고 계신 하느님 안에서 쉬는 것과 같다. 어린아이들이 노는 모습을 떠올려 보라. 놀이에 몰입한 어린이들은 자기가 놀고 있다는 사실을 의식하지 못한다. ‘내가 놀고 있구나.’라고 생각할 겨를이 없이 놀이에 푹 빠져 있는 상태이다. 기도할 때에도 이와 비슷한 일이 일어난다. 어떤 단계에 이르면 소리 내어 기도하거나 마음속으로 조용히 반복하던 기도를 그치고 침묵에 잠기게 된다. 말은 사라지고 내적 침묵 속에 머무르게 되는 것이다. 놀고 있는 어린이들처럼 우리도 내가 지금 침묵 안에 있구나.’하는 것 조차 의식 못할 만큼 몰입되어 있다. 그러다가 다시 의식하게 되면 입으로 기도문을 외우면 된다. 이 과정은 반복되고, 어떤 날에는 전혀 침묵에 이르지 못할 때도 있다.

 

또 사랑하는 연인들을 보라. 서로를 속속들이 알게 되면 많은 말이 필요 없다. 함께 있는 것만으로도 충만하며 휴식이 된다. 하느님과의 만남인 기도도 이와 마찬가지이다.

 

쉼 없는 기도는 열망이 중단되지 않는 기도이다. 무슨 일을 하든 하느님을 열망한다면 구태여 말을 하지 않더라도 기도하는 것이다. 기도를 멈추지 않으려면 열망을 멈추지 마라. 끊임없는 열망은 당신 안에 있는 끊임없는 목소리와 같다. 또 지향을 가지고 있다면 이미 기도하는 것이나 다름없다. 기도하는 것 같지 않더라도 걱정하지 마라. 당신이 기도하려는 마음으로 묵주알을 만진다면 확실히 기도하는 것이다. 그러나 지향은 항상 하느님을 향해 있어야 한다.

 

성공하려고 힘을 청하지만

겸손하라고 약함을 주십니다.

위대한 일을 하려고 건강을 청하지만

더 나은 일을 하라고 연약함을 주십니다.

행복하려고 부유함을 청하지만

현명해지라고 가난함을 주십니다.

사람들의 칭송을 받으려고 권력을 청하지만

당신의 필요를 느끼라고 연약함을 주십니다.

삶을 즐기려고 모든 것을 청하지만

모든 것을 즐기라고 삶을 주십니다.

그래서 우리가 청한 것은 하나도 받지 못했지만

바란 모든 것을 받았기에

우리의 기도는 이루어졌고

축복을 받았습니다.

 

 

그래서 내가 자만하지 않도록 하느님께서 내 몸에 가시를 주셨습니다. 그것은 사탄의 하수인으로, 나를 줄곧 찔러 대 내가 자만하지 못하게 하시려는 것이었습니다. 이 일과 관련하여, 나는 그것이 나에게서 떠나게 해 주십사고 주님께 세 번이나 창하였습니다. 그러나 주님께서는, “너는 내 은총을 넉넉히 받았다. 나의 힘은 약한 데에서 완전히 드러난다.”하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나는 그리스도의 힘이 나에게 머무를 수 있도록 더없이 기쁘게 나의 약점을 자랑하렵니다. 나는 그리스도를 위해서라면 약함도 모욕도 재난도 박해도 역경도 달갑게 여깁니다. 내가 약할 때에 오히려 강하기 때문입니다.(2코린 12, 7-10)

 

 

하느님보다 못한 것을

하느님한테서 찾는 사람은

하느님보다 하느님의 선물을

더 소중하게 여기는 것입니다.’

 

하느님을 소유한 사람은 모든 것을 소유한 사람입니다.’ -대 데레사

 

복음 전체의 요약

 

묵주기도는 복음 전체의 요약’(바오로 6세 교황)이며 주님 구원 사업의 총합이다. 묵주기도의 각 신비는 복음서에서 영감을 받아 나온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묵주기도를 복음의 마음으로 외워야 한다.

 

묵주기도의 영성

 

예수님의 구원 신비를 마리아보다 더 깊이 깨닫고 체험한 사람이 어디 있겠는가! 또 마리아보다 더 이 구원 신비에 참여할 수 있도록 우리를 도와주신 분이 어디 있겠는가! 마리아만큼 예수님과 가까운 사람이 없으며, 마리아만큼 예수님의 마음을 이해하고 함께 나눈 사람은 없다. 또한 마리아만큼 예수님의 구원 사업에 협력한 사람도 없다. 마리아의 중심은 예수님이셨고, 마리아의 전부 역시 예수님이셨다. 마리아의 유일한 기쁨은 예수님이시다. (환희의 신비, 영광의 신비) 또한 마리아의 유일한 고통은 예수님의 고통이다.(고통의 신비) 한편 예수님께 기쁨을 드리는 사랑과 선행만이 마리아의 기쁨이 되고, 예수님께 고통을 드리는 죄악들이 마리아의 고통이 되는 것이다.

 

묵주기도를 바치면서 마리아를 통해 예수님께!

 

묵주기도 요령

 

정해진 각 신비 묵상 외에 다른 생각이나 다른 묵상을 하지 않는다.

지향은 묵상 전에 세우고 생각할 수 있으나, 묵상 중에 생각한다면 그것도 일종의 분심이다.

주님의 기도와 성모송의 내용을 생각하면서 바치는 것도 바람직하지 않다.

 

묵상의 4단계

1. 성찰

이는 신비의 내용에 자신의 생활과 행동을 비추어 생각하고 반성하는 행위이다.

2. 감동

이는 성찰한 내용에 대한 마음의 감동적인 움직임이며 주님과 대화 형식으로 할 수 있다.

3. 간구

성찰하고 감동한 신비에 관한 어떤 은총을 청원하는 것이다.

4. 결심

구체적인 사항을 실천에 옮기겠다고 마음을 다지는 것이다.

 

묵상기도의 관상은 각 단의 신비를 다양하고 복잡하게 묵상하는 것이 아니라 신비의 핵심을 단순하고 순수한 형태로 받아들임으로써, 직관적으로 인식하고 사랑하는 행위이다.

 

교리와 기도에 대한 지식이 별로 없다 해도 묵주기도를 매일 단순한 마음으로 외우고 묵상하면서 깊은 관상에 도달한 그리스도교 신자들도 상당수에 이른다.

 

묵상은 우선 각 단 신비의 장면을 상상으로 꾸미는 일부터 시작한다. 각자가 등장인물이 되어 그 장면 안에 들어가 상상으로 주님과 마리아와 함께 행동하며 그들과 직접 대화를 나눈다면 묵상이 보다 잘 될 것이다.

 

위에서 서술한 묵상의 4단계를 신비 묵상에 다 적용할 필요는 없다. 실제로 묵주기도를 바칠 때는 그 중 한 가지 주제만 골라 간단하고 단순하게 묵상하면 된다. 결심도 쉽게 실천할 수 있는 한 가지만 하면 된다.

 

환희의 신비

 

1단 마리아께서 예수님을 잉태하심을 묵상합시다.

 

묵주기도는 마리아의 눈을 통해 예수님을 바라보고 사랑하는 기도이다.

성모님의 동정 잉태를 떠올리면서 나도 성모님처럼 예수님을 내 영의 태 중에 모시도록 라고 대답한다. 1단의 묵상 주제는 성모님의 순명과 하느님의 자기 포기이다.

 

성찰

우리도 하느님의 뜻과 온전히 일치할 때 마리아의 품 안에서 잉태되신 예수님과 동일한 분을 자기 품 안에 잉태하는 것이다. 그분을 잉태했으니 모든 것을 그분께 집중해서 살아간다. 출산 경험이 있는 엄마들은 태아와의 관계를 잘 이해할 것이다. 이제 우리의 몸과 마음, 삶 전부를 예수님께 바치고 예수님과 함께 산다.

 

감동적 대화와 간구

하느님, 당신은 마리아가 !”하고 대답하신 그 순간에 마리아의 품 안에 내려오시고 인간이 되셨습니다. 무한히 위대하신 당신께서는 저희에 대한 사랑으로 연약한 인간이 되셨습니다.

빛이신 당신이 어둠인 저에게 오시고, 생명이신 당신이 죽음인 저에게 오시고, 의사이신 당신이 병자인 저에게 오셨습니다. 영원한 순결이신 당신이 수많은 죄의 진흙인 저에게 오시고, 무한이신 당신이 유한인 저에게 오시고, 영지이신 당신이 무지인 저에게 오셨습니다.”(시에나의 성녀 가타리나)

성모님, 저희들도 당신처럼 하느님의 뜻에 순명하도록 도와주십시오. 저도 당신과 같이 저의 사명에 충실하여 인류 구원에 협력하게 해 주십시오.

성모님, 예수님을 잉태하신 순간부터 낳으실 때까지 당신은 얼마나 긴밀하게 예수님과 하나가 되셨습니까? 얼마나 사랑스러운 마음으로 예수님을 품 안에 모셨습니까? 보십시오. 저희도 같은 예수님을 품 안에 모시고 있습니다. 저희도 예수님의 몸으로 살고 예수님의 생명을 살고 있사오니, 저희 몸과 마음을 온전히 예수님과 하나가 되게 해 주십시오. 저희도 삶의 매 순간을 오직 예수님을 위해 바치게 해 주시고, 모든 일을 예수님 안에 예수님과 함께 행하게 해 주십시오. 그리하여 당신과 함께 당신과 같은 마음으로 저희 몸도 예수님의 작은 감실이 되고 삼위일체의 작은 성전이 되게 하소서.

 

결심

-마리아와 같이 하느님 뜻에 순명하기 위하여 어떤 계명이나 규칙을 정성껏 실행하고, 일상생활에서 일어나는 부득이한 일을 신앙으로 받아들이자.

-자신의 사명과 신분에게 오는, 즉 부모, 부부, 자녀, 직장인, 상인, 학생, 신앙인으로서 갖는 임무와 일상생활의 모든 일들을 순수한 사랑으로 정성껏 행하자.

 

2단 마리아께서 엘리사벳을 찾아보심을 묵상합시다.

묵주기도는 마리아의 눈을 통해 예수님을 바라보고 사랑하는 기도이다.

복음 자체를 잉태한 성모님께서는 기쁨을 간직한 채 친척 엘리사벳을 찾아가 석 달 동안 머무르시면서 집안일과 아기의 탄생 준비를 도와주듯이 우리도 자신과 가까운 사람에게 먼저 사랑과 봉사를 실천해야 한다.

 

성모님은 4~5일이 걸리는 그 먼 길을 혼자 여행하시면서 앞으로 자신에게 닥칠 위기를 염려하기보다 믿음 안에서 당당히 걸으면서 모든 일을 마음속에 간직하여”(루카 2, 51) 묵상하셨다. 이러한 믿음이 엘리사벳, 즉 세례자 요한의 어머니에게 동정 잉태의 기쁜 소식을 전하고 그녀에게 봉사할 마음을 갖게 했을 것이다. 이로써 태중의 예수님은 태중의 세례자 요한과 처음으로 상봉한다. 신약과 구약이 만나는 장면이다.

 

감동적 대화와 간구

마리아님, 당신은 얼마나 순고하고 순수한 사랑으로 엘리사벳을 찾아가시고 도와드리셨습니까? 당신은 남에게 헌신하는 데에서 오는 어려움과 불편을 큰 사랑으로 받아들이셨습니다.

어머니, 저희도 모든 선행을 순수하고 불타는 사랑으로 행하게 해 주십시오. 일상의 평범한 일 하나하나를 마음 다하여 정성껏 행할 수 있도록 도와주십시오.

 

결심

-아랫사람에게 겸손과 친절로 봉사합니다.

-어떤 행동과 노동을 하든 기도의 정신으로 하느님과의 일치와 잠심을 유지합니다.

 

3단 마리아께서 예수님을 낳으심을 묵상합시다.

 

성찰

강생의 신비야말로 하느님 사랑의 최고 표현이다. ‘영원이 시간 안에 들어오셨고, ‘전능이 무력의 모습이 되셨다. 전능하신 하느님께서 아무 힘도 없는 아기로 태어나시고, 무한히 부유하신 하느님께서 말구유 안에 누우시고, 영광의 하느님께서 추위에 떨며 배고픔으로 울고 계신다. 이렇게 하느님이 인간이 되심으로써 우리의 생명, , , 정신 그리고 마음은 다 거룩하게 되었다.

 

아기 예수님의 모습에 나타난 하느님의 가난과 겸손과 자기양도를 그대로 받아들이고 이해하고 실천하려고 하는가? 예수님이 세상에 태어나셨어도 내 마음 안에 태어나시지 않으면 소용이 없다. 예수님은 진정 내 안에 태어나셨는가? 예수님은 내 안에서 자라고 계시는가? 나의 자아는 작아져서 소멸되고 예수님의 마음으로 생각하고 느끼고 행동하는가?

 

감동적 대화와 간구

당신은 당신의 사랑을 자신의 무한한 힘과 영광을 버리고 아기의 무력함과 갸날픔으로 드러내셨습니다. 아기 예수님, 당신의 지극한 겸손과 철저한 희생과 자기 양도의 마음을 묵상하면 저도 모르게 머리가 숙여집니다. 어떻게 당신은 그렇게까지 자신을 낮추시고 비우실 수 있었습니까? 어떻게 그렇게까지 자신을 내어 주실 수 있었습니까? 추위에 떨며 배고픔에 울고 계시는 당신은 벌써 수난을 시작하신 것입니다.

 

마리아의 아들 예수님, 부디 제 마음 안에 태어나시고 자라나시고 저와 함께 사십시오. 당신 강생의 신비가 제 안에 실현되게 해 주십시오.

 

결심

-강생하신 아기 예수님의 겸손, 가난과 희생, 자기 양도의 행위를 구체적으로 실행합시다.

-분주한 일상 속에서도 자주 자기 마음속으로 물러가, 그곳에서 태어나시고 자라시는 살아 계신 예수님께 잠심합시다.

 

4단 마리아께서 예수님을 성전에 바치심을 묵상합시다.

 

성찰

예수님께서 이 세상에 오신 것은 인류 구원을 위해 참 제물이 되시기 위함이었다. 그분은 세상에 태어나실 때부터 당신 자신을 하느님께 봉헌하셨으나 이제 율법에 따라 공식적으로 당신을 봉헌하셨다. 그분은 마리아의 손을 통해서 자신을 아버지께 맡기시고 전 생애를 구원의 제물로 바치셨다.

 

그리스도인의 봉헌은 모두 예수님의 봉헌 행위에 참여하는 행위가 된다. 그러므로 예수님과 일치하여 하나되는 정도에 비례해서 나도 봉헌 제물이 된다. 나는 그리스도인, 남편, 아내, 부모, 사제나 수도자로서 주어진 사명에 철저히 몸 바치고 있는가? 자신과 자신의 모든 것을 남김없이 하느님과 남에게 바치고 있는가?

 

감동적 대화와 간구

예수님, 당신은 세상에 오신 순간부터 당신 자신을 희생 제물로 봉헌하셨습니다. 당신의 생애는 끊임없는 봉헌의 연속이었으며, 당신은 그야말로 봉헌 제물 자체이십니다. 저의 봉헌은 당신의 봉헌 행위에 참여해야만 참 봉헌이 되고 속죄의 의미를 지니게 됩니다. 항상 당신과 일치하여 당신과 같은 마음을 갖도록 해 주시고, 또한 이 봉헌을 매일 매 순간 새롭게 하고 심화하게 해 주십시오.

 

결심

-어떤 일을 시작할 때와 마칠 때 그 일을 봉헌하는 습관을 기릅시다.

-지금까지 하느님께 바치지 않고 자기가 차지해 온 어떤 일을 이 기회에 모두 하느님께 바칩시다.

 

5단 마리아께서 잃으셨던 예수님을 성전에서 찾으심을 묵상합시다.

 

성찰

마리아와 요셉처럼 예수님을 잃고, 찾아 헤매고, 다시 찾아내고, 그분과 일치하고, 이를 계속 반복하는 것이 우리의 영성 생활이다.

왜 저를 찾으셨습니까? 제가 성전에 있어야 하는 줄을 모르셨습니까?” 혈육의 관계보다 하느님의 계명과 부르심을 따르는 것이 오히려 자녀로서의 효도이며 부모로서의 참사람의 길임을 확신하는가? 또 하나의 역설. 예수님이 원래 계셔야 할 곳은 성전이다. 우리는 성전에서 예수님을 찾아야 한다. 시끄럽고 복잡한 시내가 아니라, 고요한 성전에서 우리는 다시 주님을 만날 수 있다.

 

감동적 대화와 간구

예수님, 마리아는 당신을 잃으셨을 때 얼마나 애타게 당신을 찾으셨습니까? 또 당신을 찾으셨을 때 얼마나 기쁘고 사랑스러운 마음으로 당신을 맞이하셨습니까? 저는 죄와 악의와 분심으로 자주 당신을 떠나 잊고 맙니다. 그때마다 불안과 슬픔과 불행을 맛보게 됩니다. 주님, 성모 마리아처럼 당신을 애타게 찾아, 당신 안에서 기쁨과 평화와 희망을 되찾게 해 주십시오. 매일 당신을 찾아내고 매순간 당신을 더 가까이 만나게 해 주십시오. 기도와 묵상 속에서 당신을 만나고 이웃과 사물과 행동 속에서 당신을 발견하게 해 주십시오.

 

결심

기도와 묵상으로 마음 깊이 예수님을 만나고, 이웃과 사물과 활동 속에서 예수님을 발견하고, 그분의 사랑을 체험하도록 합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