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중 제28주일)

 

혼인 예복

 

예수님의 비유는 당시 사람들에게 아주 쉽게 이해가 되는 말씀이었습니다. 유대인들에게 혼인 잔치는 늘 하느님 나라를 상징했습니다. 그리고 그 나라는 항상 선민 이스라엘 백성, 그 중에서도 의인들이 들어갈 수 있는 곳이었습니다. 다시 말해 이방인들은 태생적으로 하느님 나라에 들어갈 수 없었고, 유다인이더라도 세리와 창녀 같은 죄인들도 들어갈 수 없었습니다.

 

오늘 비유에서 어떤 임금이 아들의 혼인 잔치에 종들을 보내어 초대받은 이들을 불러오게 했다고 합니다. 여기서 임금은 하느님 아버지이고 아들은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그리고 종들은 예수 그리스도를 예언하고 증거한 세례자 요한을 비롯한 구약의 모든 예언자들을 가리킵니다. 그러나 초대받은 이들은 오지 않았습니다. 초대받은 이들은 수석 사제들과 백성의 원로들, 즉 종교 및 사회 지도자들입니다. 그들은 그리스도를 받아들이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그들은 관심이 없거나 박해를 일삼았습니다. 오늘 복음에서 어떤 자는 밭으로 가고 어떤 자는 장사하러 갔다고 하는데, 이는 자신의 생업 때문에 그리스도의 복음에 귀 기울이지 않는 사람들을 말합니다. 이러한 부류의 사람은 지금도 존재합니다. 주일 파공을 지키지 않습니다. 생계가 어려워 불가피한 경우가 아닌데도, 더 돈을 벌기 위해 주일에도 일을 합니다. 일 주일에 하루도 쉴 수 없을 만큼 시간적· 경제적 여유가 없는 것이 아니라 주님께 대한 관심이 없는 것입니다. 주님 안에서의 영적인 휴식과 예배보다 세상일에 관심이 더 많은 사람들입니다.

 

이제 임금은 종들에게 이르기를 고을 어귀로 가서 아무나 만나는 대로 잔치에 불러오너라.’고 합니다. 이제 선민 구원의 시대가 끝났다는 말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이제는 선민 이스라엘과 소수의 의인이 아니라 이방 세계의 만민과 다수의 죄인들까지 다 구원의 대상이 됩니다. 다만 혼인잔치의 입장 조건으로 혼인 예복을 갖춰 입으라고 합니다. 여기서 혼인 예복은 무엇을 말할까요? 바로 회개입니다. 회개하지 않고서는 하느님 나라에 들어갈 수 없습니다.

 

지난 수요일 이번 1112일 세례식을 앞두고 있는 예비신자들에게 종합 교리를 가르쳤습니다. 도입부에 저는 입교 동기를 물었습니다. 가족과 지인의 권유가 많았고, 혼배를 앞두고 예비 배우자의 설득으로 입교한 분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저는 입교 동기가 그 무엇이든지 여러분들이 스스로 선택한 것이 아니라 하느님께서 당신의 놀라운 섭리로 교회로 부르셨다고 강조했습니다. 또 인간적인 방법으로 오묘하게도 이 자리로 부르신 하느님께서는 어쩌면 여러분들이 세상에 태어나기 전부터 여러분들을 알고 계셨고 오늘의 이 시간을 예비하신 분이라고 했습니다. 세례를 통하여 우리는 하느님의 자녀가 되고 현세의 하느님 나라인 교회에 입문합니다. 그러나 세례의 조건은 나의 노력과 실적이 아닙니다. 다시 말해 교리 공부를 하고 기도문을 외우는 것이 세례의 조건이 되지 않습니다. 세례를 통해서 주어지는 영원한 생명은 하느님의 공짜 선물이고, 하느님의 과분한 처사입니다. 내가 잘 나서, 내가 받을 만해서 마치 자격증 따듯이 세례성사가 주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 우리가 그 놀라운 은총을 받기 위해서 준비해야 할 것이 있다면 회개입니다. 세례를 통해서 원죄와 본죄 모두 사하여 지는데, 그것은 성사 행위로 자동적으로 이뤄지는 것이 아니라 회개를 전제로 합니다. 진심으로 세례받기 전의 모든 죄를 눈물로 뉘우쳐야 합니다. 그리고 새롭게 태어나도록 다짐해야 합니다.

 

오늘 복음은 말합니다. “사실 부르심을 받는 이들은 많지만 선택된 이들은 적다.” 이 말씀 그대로라면 세례를 받았다고 다 구원받는 것은 아니라는 말입니다. 세례는 구원의 입문 과정입니다. 중요한 것은 세례 후의 삶입니다. , 회개한 삶을 살아가는 것이 더 중요합니다. 이미 세례를 통해서 공짜로 죄를 다 용서받았지만, 이제 다시 죄를 짓지 않도록 세례의 은총을 보존하는 것이 더 중요합니다. 가끔 이런 말을 들을 때가 있습니다. “신자들보다 외인들이 더 낫다.” 세례를 받지 않은 외인들이 더 착하고, 더 베풀고, 더 따듯하다는 말이지요. 오히려 신자들이 더 이기적이고, 인색하며, 남 등쳐 먹는다는 것입니다. 사제가 신자에게 이런 말을 들을 때면 낯이 뜨거워집니다. 너무 창피해서 그렇습니다. 가끔 신자들 간에 금전 문제로 분쟁이 되고 외인들까지도 이 사실을 알게 되는 경우도 있다고 합니다. 사제로서 참 할 말이 없습니다. 생전에 이갑수 주교님께서 이런 말씀을 즐겨 하셨다 하지요. “교회가 세상을 성화시키는 것보다, 세상이 교회를 속화시키는 속도가 더 빠르다.” 세상 성화는 고사하고 외인들보다 못하다면 이 성당 문 닫아야 하지 않겠습니까? 어쩌면 우리는 하느님 백성 공동체가 아니라 사회 동아리처럼 개인의 필요에 따라 모이고 흩어지는 종교 단체일지도 모릅니다.

 

사랑하는 형제자매 여러분, 오늘 예수님의 비유를 듣고 과연 수석 사제들과 백성의 원로들이 회개하였을까요? 결론은 회개는커녕 예수님께 적개심을 가지고 십자가에 못 박았습니다. 여기 모인 우리들이 그러지 않으리라는 법이 있습니까? 혼인 잔치에 들어가기 위해서는 회개라는 예복을 입어야 하는데, 우리는 과연 그 옷을 입고 있는지요? 우리의 오장육부를 꿰 뚫어보시는 하느님 앞에서 허위와 가식을 벗어 던져 버리고 영적으로 벌거벗은 몸으로 묵상해 봅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