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7일 묵주 기도의 복되신 동정 마리아 대축일)

 

 

묵주기도와 함께 성장한 부산교구

 

오늘은 묵주 기도의 복되신 동정 마리아 대축일입니다. 원래는 107일인데 경축 이동하여 오늘 지냅니다. 왜냐하면 부산교구의 주보 성인이시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오늘은 묵주기도에 대한 이야기를 하려합니다. 레지오 단원들은 익숙하겠지만 일반 신자를 위해 복습하겠습니다.

 

묵주기도는 원래 수도자들이 시작한 것입니다. 수도자들은 매일 시편 150편을 외웠으나, 글을 읽을 줄 모르는 수도자들은 시편 대신 주님의 기도를 구슬로 헤아려 150번 암송했었습니다. 이러한 관습이 평신도들 사이에도 확산되어 오다가 12세기 중엽부터 주님의 기도대신 성모송을 외우는 관습으로 널리 퍼지게 되었습니다. 수도자들은 계속 시편 150편을 50편씩 세 부분으로 나누어 외웠으나, 글을 모르는 평신도들은 성모송을 150번 외우는 것으로 대신했습니다. 15세기 후반에 도미니코회 수사 알랑 드 라 로슈는 도미니코 성인이 묵주기도를 보급했다고 주장했지만 역사적 근거는 없고 그가 속한 도미니코 수도회가 묵주기도 신심의 보급에 크게 공헌한 것은 사실입니다. 교회 역사상 지금까지 묵주기도의 효력으로 많은 기적들이 일어났습니다. 그 중에서 가장 유명한 기적은 1571107, 레판토에서 그리스도교 연합군이 터키 함대를 격파한 일입니다. 당시 전세는 터키 군이 유리했고, 그들의 승리는 확실했습니다. 그때 비오 5세 교황은 유럽의 전 신자들에게 묵주기도를 바치게 함으로써 기적적인 승리를 거둔 것입니다. 그 후 비오 5세는 이 승리의 날을 묵주기도의 기념일로 정했고, 현재까지 107일을 묵주기도의 축일로 지내고 있습니다.

 

묵주기도는 바오로 6세 교황의 말씀처럼 복음 전체의 요약이며 주님 구원 사업의 총합입니다. 묵주기도의 각 신비는 복음서에서 영감을 받아 나온 것입니다. 그리고 예수님의 구원 신비를 가장 깊이 깨닫고 체험한 사람은 단연 마리아입니다. 마리아처럼 예수님을 사랑하고 깊이 이해하신 분이 세상에 없습니다. 따라서 우리는 성모님의 눈을 통해 예수님의 구원 신비를 바라보면서 예수님을 가장 사랑하고 따랐던 성모님의 모범에 따라 그리스도를 따릅니다.

 

오늘 복음은 묵주기도 환희의 신비 1마리아께서 예수님을 잉태하심을 묵상합시다.”를 떠올리게 합니다. 여기서 우리는 두 가지를 묵상할 수 있습니다. 첫째는 마리아의 순명과 하느님의 자기포기입니다. 인간과 하느님이 동시에 스스로를 버렸습니다. 하느님은 인간을 위해서, 마리아는 그러한 하느님을 위해서 자신을 버렸습니다. 마리아는 동정 잉태를 받아들임으로써 자칫 죽음으로 내몰릴 수 있는 위험과 위기를 받아들였습니다. 하느님은 스스로 자신의 권능과 권위를 버리고 무능과 비천을 선택하셨습니다. 전지전능하신 하느님이 굳이 연약한 아기로 오셨다는 것은 신이 인간과 같아지기로 결심한 지고한 사랑이며 자기포기입니다. 마리아는 하느님께 대한 신뢰로 하고 순명했고, 하느님은 그러한 마리아를 당신의 어머니로 받아들였습니다. 이로써 인간과 하느님이 하나의 목적, 즉 세상 구원을 위하여 서로를 받아들였습니다. 두 번째 묵상은 우리도 마리아처럼 하고 그리스도를 자기 품 안에 잉태하는 것입니다. 그리스도를 지금 내가 잉태한다는 것은 마리아처럼 우리의 품 안에 계시는 예수님께 집중해서 살아가는 것을 말합니다. 예수님을 내 안에 잉태하는 순간부터 나는 그분과 함께 살며, 매 순간 그분을 위해, 그분 안에서 살아야 합니다. 이렇게 묵주기도는 구송기도를 넘어서서 묵상과 관상기도입니다. 따라서 많이 바치는 것도 중요하지만 의미를 알고 정성껏 제대로 바치는 것이 더 중요합니다. 이 부분은 다음 주 화요일 저녁 미사 후 특강을 통해서 보강하겠습니다.

 

오늘 우리가 기념하는 묵주기도의 복되신 동정 마리아는 부산교구의 주보성인입니다. 초대 교구장이신 최재선 요한 주교님께서는 항상 교구 발전을 위해서 묵주기도의 복되신 동정 마리아께 기도하며 의탁했습니다. 전후 가난했던 부산교구는 1957년 대구대교구로부터 분리되면서 황무지 같은 상황이었습니다. 이 때 최주교님은 매일 묵주기도를 하며 유럽 교구로부터 원조를 유치하여 교구 초석을 다집니다. 그때 일을 주교님은 이렇게 회상합니다. “부산교구장으로 임명받고 왔는데, 교구청은 제 건물도 없어 더부살이를 하고 있고, 가진 돈도 없었어. 어째. 성모님께 열심히 기도드렸지. 그랬더니 기적이 일어났어.” 사실 그 당시 원조받아 매입한 교구 부지들 덕분에 본당, 학교, 병원, 사회복지관 등 지금의 부산교구를 이룩할 수 있었습니다.

 

주교님은 특별한 묵주기도의 신심으로 은퇴 후에도 청빈의 삶으로써 모범이 되십니다. 교구장 은퇴 후 한국외방선교수녀회에서 생활했던 주교님은 안락한 주교관을 마다하고 2평 남짓한 경비실에서 지냈습니다. 한 번 쓴 휴지도 접어뒀다 재활용하고, 선풍기 한 대 없이 여름을 났습니다. 받은 선물은 사용하지 않고 다시 다른 이들에게 선물했고, 반드시 노인 우대 할인을 받아 무궁화호 열차만 탔으며, 명절에 종증손녀가 세배를 가면 주님의 기도를 외워야만 세뱃돈 1,000원을 주는 지독한(?) 할아버지였습니다.

 

늘 묵주를 손에 쥐고 기도를 바친 최재선 주교님. 교회 발전을 위해 묵주기도를 봉헌해야 한다고 생각한 주교님는 남녀노소, 신분을 막론하고 묵주기도를 권했습니다. 이것이 한국교회 묵주기도 바치기 운동의 효시가 됐습니다.

 

은퇴 후 한국외방선교수녀원에 머물렀던 최주교님은 한겨울 추위에도 수녀원 앞 성모당에서 장괘를 한 채 몇 시간씩 묵주기도를 바쳤으며, 새신부들이 인사차 찾아가면 즉석에서 같이 묵주기도를 하며 앞으로 기도 많이 해야 한다고 신신당부했다. 저도 또렷이 기억합니다. 새 신부 때 동기들과 인사드리러 간 적이 있는데, 앉자 마자 대뜸 환희의 신비 4단이 뭐냐고 묻더라구요. 1단부터 순서대로 묻는 것이 아니라 처음에는 당황했는데, 함께 5단을 바치면서 그 이유를 깨달았습니다. 늘 생활 속에서 묵주기도를 실천하라는 할아버지 주교님의 뜻이었습니다.

 

우리는 묵주기도를 지속적으로 받쳐야 합니다. 묵주기도는 쉬우면서도 효력이 검증된 훌륭한 기도입니다. 코로나 이후 성장 동력을 잃어버린 지금의 교회를 위해 열심히 바쳐야 합니다. 그리고 묵주기도의 지향대로 우리는 교회의 활성화를 위해 순명, 희생, 봉사의 삶을 살아야 합니다. 그것이 오늘 우리가 묵주기도의 복되신 동정 마리아 대축일을 지내는 의미가 아닌가 생각합니다. 잠시 교구 은인들을 떠올리며 우리가 교구를 위해 무엇을 할 수 있는지 다짐해 봅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