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중 제27주간 레지오 마리애 훈화
문학가 “오스카 와일드”가 예수님께서 과거에 은혜를 베푼 몇 종류의 사람을 그 후 다시 만나게 되었다는 이야기를 우화적으로 엮은 이야기가 있습니다. 처음 예수님은 한 주정꾼을 만납니다. 거의 폐인과 같이 된 젊은이였습니다. 예수님께서 “왜 그런 생활을 하고 있소” 하고 물었더니 주정꾼은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내가 절름발이였을 때 당신이 나를 일으켜 걷게 만들어 주었지요. 그러나 걸어 다닌들 무엇을 먹고살라는 말입니까? 그동안 직업을 구해 보았으나 만족한 직업 하나도 없었습니다.” 그다음 예수님은 한 여자가 창녀가 되어 남자들 사이에서 희롱 받는 장면을 보게 됩니다. 예수님은 여자에게 “어째서 이런 생활로 되돌아갔는가?”하고 물었습니다. 창녀는 “당신이 나를 창녀촌에서 건져 새 사람을 만들어 준 것 같았으나, 창녀에서 발을 씻은들 무슨 행복이 있단 말이오? 나는 더욱 고독해서 살 수가 없었기 때문에, 다시 창녀의 생활을 시작했소.” 하고 대답했습니다. 그 후 예수님은 한 불량자가 정신없이 이웃과 싸우고 있는 장면에 보게 됩니다. 예수님은 그에게 “여보 청년, 어째서 이런 생활을 하고 있소?”하고 물었습니다. 불량자는 예수님께 “나는 당신이 눈을 뜨게 해 준 소경이었소. 그러나 눈을 뜨고 무엇을 보라는 거요? 보이는 것이 모두 신경을 돋우고 귀찮고 화나는 세상이 아니요? 결국 나는 화풀이도 하고, 마구 치고받고 하는 생활이 나에게 주어진 길이라고 생각하였소.”
이 단편은 은총을 은총으로 받아들이지 못하여 은총의 삶을 살지 못하는 인간상을 그리고 있습니다. 인간이 하느님으로부터 받은 사랑은 참으로 거대한 것입니다. 창녀에게서 구원되거나 소경이 눈을 뜨는 이상의 큰 은혜를 우리는 입고 있습니다. 그러나 많은 사람은 감사를 모르고 있습니다. 감사란 입술로 하는 것이 아니라, 받은 은혜를 깨닫고 그 은혜에 보답하는 새로운 생활로 자신의 삶을 바꿀 때 비로소 감사가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혹시라도, 복음에 나오는 어리석은 포도원의 소작인들처럼 자신의 욕심에 사로잡혀 하느님의 은혜를 잊고 배은망덕한 행위를 하지는 않았습니까? 무엇보다도 우리의 일상적인 삶에 대해 감사의 기도를 하며 주님의 은혜에 대해 보답하며 지내는 알차고 복된 한 주간이 되기를 기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