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아들의 비유
마태오 21, 28-32/ 2023. 10. 1. 연중 제26주일
오늘 복음은 예수님의 두 아들의 비유를 들려줍니다. 포도밭 주인에게 두 아들이 있었습니다. 포도밭에 가서 일하라는 주인의 말에, 큰 아들은 ‘싫다’고 대답하지만 막상 일하러 나갔고, 작은 아들은 ‘가겠다’고 했지만 가지 않았습니다. 이 둘 가운데 아버지의 뜻을 실천한 이는 누구인지 예수님은 질문하십니다. 이 비유는 무엇보다도 하느님의 뜻에 응답하는 것 같지만 실상 실천하지 않는 이스라엘의 지도자를 비판하는 것입니다. 동시에 언뜻 보기에 하느님의 뜻을 거스르는 것 같지만 실상 하느님의 구원의 은혜를 입게 될 세리와 창녀와 같은 죄인들을 칭찬하시는 말씀이기도 합니다.
오늘 복음뿐 아니라 복음서의 여러 곳에서 창녀와 세리가 하느님 나라에 먼저 들어갈 것이라는 말씀을 자주 접합니다. 세리는 로마에 협력하여 세금을 거두는 사람들이고 창녀는 윤리적 타락을 대표하는 사람이라 할 수 있습니다. 이들은 이스라엘의 율법에 의해 공식적으로 죄인으로 취급되었고, 사회적 낙인 아래 있었습니다. 그러기에 그들은 자신들 스스로도 죄인으로 생각했고, 그러기에 언제나 하느님의 크신 자비를 청하고 또 청하는 이들이었습니다. 반대로 이스라엘의 지도자들은 스스로 선택받은 사람들이고 거룩한 사람들이라고 여겼습니다. 그들은 하느님 앞에서 자신들이 벌거벗은 모습을 깨닫지 못한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주님께서 죄인들이 먼저 하느님 나라에 들어갈 것이라고 말씀하십니다. 이 말씀을 묵상해보면, 결국 죄인은 특정한 직업을 가진 사람이나 어떤 특정한 삶의 방식을 따르는 사람을 일컫는 말이 아닙니다. 복음서에서 말하는 죄인은 자신의 부족함과 죄를 깨닫고 하느님의 크신 자비에 기대는 사람입니다. 결국 죄인은 하느님을 향해 서 있는 인간의 실존과 태도를 말하는 것입니다. 복음서에서 가난한 사람이 물질을 적게 소유하고 결핍 상태에 있는 사람만을 뜻하는 것이 아니듯, 복음이 말하는 죄인 역시 하느님 앞에 서있는 인간의 실존을 말하는 것이며 결국 하느님 앞에서 자신의 허물과 약점을 인정하고 겸허하게 용서를 청하는 태도를 뜻합니다. 바로 그런 사람이 하느님 나라에 먼저 들어갑니다.
또한 오늘 복음은 신앙이 무엇인지 다시 생각하게 이끌어 줍니다. 신앙은 하느님의 부르심에 응답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 응답은 자기 자신의 입으로 고백하면서 시작됩니다. 우리는 자기 입으로 신앙을 고백하면서 세례를 받았고, 자기 입으로 배우자를 평생 사랑하겠노라 고백하면서 혼인성사를 받았습니다. 그러나 입으로 하는 고백은 시작입니다. 그 응답이 입술에서만 머문다면 완성된 신앙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신앙은 우리를 부르시는 하느님을 알고 그분을 내 삶의 주님으로 고백하는 것뿐 아니라, 내 삶이 변화되는 것까지 포함합니다. 내 삶이 변화되어야 한다는 말은, 결국 하느님 앞에 서 있는 우리의 태도를 바꾸는 것입니다. 그것은 결국 하느님 말고는 아무것에도 의지하지 않는 가난한 사람, 하느님 자비 말고는 어떤 것에도 기댈 데 없는 죄인이라는 것을 깨닫는 것입니다. 하느님 앞에서 자신의 실존과 한계과 부족함을 깨닫는 사람에게 하느님의 자비와 구원이 드러납니다.
오늘 복음은 우리의 신앙을 다시 돌아보게 합니다. 더 나가서 오늘 복음은 하느님 앞에 서있는 우리의 모습을 돌아보게 합니다. 우리가 기대고 청하고 의지할 것이라고는 하느님뿐입니다. 오늘 우리의 마음을 모아 이 미사를 봉헌합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