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가위 미사 강론

우리는 합동으로 위령미사를 드리면서 먼저 돌아가신 조상들과 부모님, 가족과 친지들이 하느님 품에서 영원한 안식을 누리기를 기원하고 있습니다. 교리에 따르면 이미 죽은 영혼은 스스로 구제할 방법이 없습니다. 따라서 비록 하느님을 알지 못하여 세례를 받지 못하고 돌아가셨지만 혹시 연옥에 있을 영혼들을 위해 우리는 구원의 기도를 바치는 것이 마땅합니다. 또 천국에 계신 조상들과 부모님에게도 우리의 기도가 필요합니다. 이때 기도는 구원의 기도가 아니라 사랑과 감사의 기도입니다. 그렇다면 지옥에 있는 영혼은 어떻게 해야 할까요? 어떤 누구도 나의 조상과 부모가 지옥에 있을 거라고 믿지 않습니다. 우리는 사후 세계를 알 수 없습니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하느님께서는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자비로우신 분이시라는 것입니다. 그러니 우리는 조상들의 영혼을 그분의 자비에 맡겨야 합니다.

며칠 전 아버지와 대화했는데, 일찍 상처한 아버지께서는 지금도 매일 어머니를 위해 묵주기도를 바치고 있으며, 하루 한시라도 잊어버리는 때가 없다고 하십니다. 그렇게 어머니를 사무치게 그리워하던 아버지께서 이런 말씀을 하셨습니다. “니 엄마가 있는 곳이라면 어디든지 가고 싶다. 천국이 아니라 연옥에 있다면 연옥에 가서 엄마를 만나고 싶고, 그럴 일은 없지만 만일 지옥에 있다면 지옥 끝까지 내려가 엄마를 만나고 싶다.”

이 대목에서 저는 인간에 대한 예수님의 마음도 그러지 않을까 생각이 들었습니다. 사도신경에 이런 대목이 나오지 않습니까? “저승에 가시서 사흗날에 죽은 이들 가운데 부활하시고저승이 어디입니까? 옛말로 고성소가 아닙니까? 죄 없으신 분이 왜 죄인들이 머무르는 고성소까지 내려갑니까? 사랑하는 이가 있으면 그곳이 어디이든 찾아갑니다. 이렇게 인간에 대한 사랑이 넘치는데 그 한계가 어디일까요? 아마 우리의 조상들도 익명의 그리스도인으로 살았다면 충분히 주님과 함께 계실 겁니다.

오늘 복음은 부자의 탐욕을 경계합니다. 백만장자라 할지라도 단 한 푼도 저 세상으로 가져 갈 수 없습니다. 하필 추석 날 이 말씀을 들려주시는 것일까요? 한가위 위령미사의 목적은 단지 돌아가신 분들을 기억하기 위함이 아니라 우리의 남은 생도 돌아보기 위함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항상 사심판을 의식하고 살아야 합니다. 정하상 바오로는 상재상서에서 이렇게 이야기합니다. “사람의 목숨이 길어야 백 년을 넘지 못하는데, 사람은 현세에 집착하여 사리사욕만을 추구하며 아직 얻지 못한 것을 얻으려고 걱정하고, 이미 얻은 것은 잃을까봐 걱정하면서 죽을 날이 가까이 오는 것을 알지 못하고 있습니다. 사람이 한 번 죽으면 재산과 지위와 공로와 명예는 결국 헛된 것이 되고 맙니다.”

사랑하는 형제자매 여러분, 우리 모두는 한 자리에서 만날 것입니다. 그 자리는 바로 하느님 나라입니다. 그 나라는 죽어서 가는 나라이기도 하지만 이미 현세에서 체험하는 나라이기도 합니다. 이미 그 나라에 가신 분들을 위해서 우리는 기도해야 하지만 남아 있는 우리들은 하느님 나라가 지금 여기에서 실현되도록 열심히 그리스도를 따라야 하겠습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