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중 제 25주일
✠ 마태오복음 20,1-16
오래전에 겪은 일이지만 기억에 생생하게 남아 있습니다.
어느 관공서에서 참 불친절한 직원을 만났습니다.
줄곧 불친절하던 태도가 친구로 보이는 한 사람의 등장으로 싹 바뀌었습니다. 얼굴표정, 음색, 음조가 환하게 바뀌어 '저런 모습도 있구나' 생각하게 되었어요.
왜 갑자기 이 얘기를 꺼내는지 궁금하지요?
이야기 하나를 더 들려드리고 복음으로 가보지요.
탈무드에 나오는 얘기입니다.
[하루는 스승이 제자들에게
“밤이 끝나고 낮이 시작되는 때를 어떻게 알 수 있느냐?”고 물었습니다.
이에 한 제자가
'멀리서 한 마리의 동물을 보았을 때, 그것이 양인지 개인지 구별할 수 있을 때입니다.'
스승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아니라고 했습니다.
또 다른 제자는
'멀리서 나무를 보았을 때, 그것이 무화과나무인지 복숭아나무인지 구별할 수 있을 때입니다.'
역시 스승은 아니라고 했습니다.
제자들이 나름대로 대답을 내보았지만, 스승이 기대했던 것은 없었습니다.
마침내 스승은
“너희가 사람의 얼굴을 보고, 그 사람이 너희 형제나 자매라는 것을 알아볼 때가 바로 그때다. 너희가 그걸 알아보지 못한다면 너희가 아직도 밤이기 때문이다” 하였습니다.]
오늘 복음의 포도밭에서 이른 아침부터 일한 사람들의 불평은 정당해 보입니다.
'마지막으로 겨우 한시간 남짓 일한 사람이 온종일 일한 사람과 똑같은 대우를 받다니?'(11)
오후 다섯시, 이미 그날 일할수 있으리란 희망이 사라진 시각에도 장터에 서있었던 이유는 뻔합니다. 빈손으로 집으로 갈수 없었겠지요. 막막한 심정으로 부인과 아이들을 어찌볼까 생각하며 서 있었겠지요.
이 마지막 사람이 만약 아침부터 일한 사람의 동생이라면 어떤 반응을 보였을까요?
온종일 뙤약볕 아래에서 온종일 고생해도 받을 품삯, 가족에게 맛있는 저녁을 먹일 수 있는 기쁨을 생각하며 기쁘게 일했을 그가 불만으로 가득차게 된 까닭은 똑같은 처지의 동료가 아직은 내 형제가 되지 못한 까닭이 아닐까요?
주인은 답합니다. "내가 후하다고 해서 시기하는 것이오?"(15)
공정, 공평이란 이름으로 저지르는 불의는 없는지 오늘 잠시 생각해 볼까요?
나는 아직도 밤중에 살고 있지나 않은지요? 내게 못마땅한 일들은 어쩌면 이웃을 내 형제자매로 보지 못한 까닭은 아닌지ᆢ
내 삶에 동이 빨리 트기를 기도해야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