上宰相書
1839년 한국천주교회의 순교성인 성 정하상 바오로가 쓴 한국 최초의 천주교 호교론서(護敎論書)이다.
상재상서(上宰相書)의 뜻은 ‘재상에게 올리는 글’이라는 뜻으로, 당시 조선의 천주교 박해의 주동자였던 우의정(右議政) 이지연(李止淵)에게 보낸 한문 서신이다. 헌종 5년 기해박해가 일어나자 정하상 바오로는 체포를 예견하고 미리 작성해 두었다가, 체포된 다음 날 종사관(從事官)을 통하여 재상인 이지연(李止淵)에게 전달하게 하였다.
성 정하상 바오로는 1795년에 경기도 양근 땅 마재에서 정약종 아우구스티노와 유소사 체칠리아의 둘째 아들로 태어났다. 1801년 신유박해 때 부친과 형이 순교한 후 정하상은 누이 정혜 엘리사벳과 함께 어머니의 지도로 교리와 기도를 배웠다. 1816년 그는 양반이면서도 스스로 노복의 신분을 취하여 역관의 하인이 되어 북경에 가서 북경 주교에게 조선에 성직자를 보내줄 것을 청하였고, 유진길, 현석문 등과 함께 신유박해로 목자가 없어 굶은 지 오래되었고, 목숨이 경각에 달했으니 사제가 와서 살려야 한다고 교황님께 탄원서를 올렸다. 이런 노력으로 로마 교황청 포교성성은 1831년에 조선 교구를 설정했고, 마침내 그는 1834년에 중국인 유방제 신부를, 1835년에 파리 외방전교회 소속 모방 나 신부를, 1836년에 샤스탕 정 신부를, 1837년에 조선교구 제2대 교구장인 앵베르 범 주교를 영접하여 자기 집에 모셨다. 앵베르 범 주교는 학문과 수덕과 신망이 두터웠던 정하상을 사제가 되기에 적합한 인물로 평가하여 신학과 라틴어 등을 가르쳐 사제로 양성했으나, 기해 박해로 정하상은 사제의 꿈을 이루지 못했다.
정하상은 1839년 7월 12일에 체포되자 미리 준비한 《상재상서》를 올려 박해의 부당함을 항변했다. 《상재상서》는 비록 3600여 자에 불과한 짧은 문장으로 구성된 글이지만, 천주교에 대한 편견을 불식하기 위해, 사서삼경을 인용하면서, 유교의 가르침과 천주교의 가르침이 같다는 논리를 펼쳤고, 천주교에는 유교에 없는 많은 장점이 있음을 ‘영혼불멸’과 ‘천당지옥’의 교리를 통하여 입증하였으며, 천주교가 유교의 부족한 점을 보완할 수 있다고 설파했다. 마지막으로 그는 천주교는 온 세상 모든 백성이 마땅히 믿고 실천해야 할 종교라는 점에서 유교를 초월한 영원한 구원의 진리임을 밝혔다. 결국 그는 그해 9월 22일 서소문 밖에서 순교하였다.
성 정하상(바오로, 1795~1839) 가족은 한국교회의 가장 대표적인 순교자 가문으로 꼽힌다.
성인을 비롯한 아버지 복자 정약종(아우구스티노, 1760~1801)과 어머니 성 유조이(체칠리아, 1761~1839), 형 복자 정철상(가롤로, ?~1801) 및 동생 성 정정혜(엘리사벳, 1797~1839)가 순교의 영광을 안았다.
정약종은 1786년 무렵 중형 정약전(1758~1816)으로부터 교리를 배웠다. 세례 이후에는 교리를 가르치고 연구하며 실천에 몰두했다.
첫 부인 이씨와의 사이에 정철상을 아들로 두었으나 얼마 뒤 사별하고 이후 유조이를 두 번째 아내로 맞았다. 유조이는 곧 정하상과 정정혜의 친모가 된다.
양반 출신 지도층으로 제사 문제 등 가문과의 마찰을 피할 수 없었던 정약종은 서울에서 경기도 광주로 이주하는 용단을 내렸다. 이후 지역 신자들에게 교리를 가르치며 최초의 한글 교리서 「주교요지」를 완성했다.
1794년 말 주문모 신부가 입국하자 주 신부를 도와 교회 일을 처리했으며 주 신부에 의해 명도회(明道會) 회장에 임명된 후 신앙 공동체 유지와 교육, 선교를 위해 노력하는 등 지도층 신자로 활동했다. 그가 쓴 한글 교리서는 주 신부 승인을 받아 신자들에게 보급됐다. ‘초기 한국교회 교부’로 불릴 만큼 교회 공동체의 중심에 서 있었던 모습이다.
1801년 신유박해로 체포됐으나 문초 중에도 오로지 천주교 교리의 정당성을 설파했고, 체포된 지 15일 만에 사형을 선고받아 1801년 4월 8일 순교했다.
복자 정철상 가롤로가 옥고를 치르는 아버지 정약종 아우구스티노를 찾아가 음식을 전하고 있다. 그림은 탁희성 화백의 작품.
정철상은 어려서 모친을 여의고 정약종으로부터 천주교 교리를 배워 신앙생활에 전념했다. 부친이 체포되자 감옥 근처에 머물며 옥바라지를 했던 그는 정약종이 순교하던 날 체포됐다. 모진 고문 속에서도 주문모 신부의 거처를 함구하는 등 교회를 지키며 신앙을 증거했다. 이후 한 달 이상을 옥에 갇혀 있다가 5월 14일 부친을 뒤따라 순교의 칼을 받았다.
정약종이 순교할 때 만 6살이었던 정하상은 박해 당시 유조이와 함께 옥에 갇혔다가 석방됐다. 이후 성가정의 신앙을 이어받으며 모친으로부터 교리를 배웠던 그는 누구보다 더 열심히 교리를 실천하는 데 노력하는 신앙인으로 성장했다
정하상은 성직자 영입 운동을 통해 한국교회 발전에 큰 공헌을 쌓았던 평신도 지도자였다. 또 실천하는 신앙인이자 박해 시대의 참다운 영성가로 평가된다. 올해로 순교 180주년을 맞는 그는 1816년부터 여러 차례 북경을 왕래하며 성직자 영입 운동을 전개했다. 그 결과 1831년 조선교구 설정, 1833년 이래 여러 명의 성직자가 입국하는데 중요한 공헌을 했다.
주교의 복사를 맡으며 신학생으로 선발돼 라틴어와 신학을 공부했던 정하상은 한국인 최초의 성직자가 될 것으로 기대됐으나 1839년 기해박해가 일어나면서 중단됐다.
그해 7월 11일 가족, 동료와 함께 체포된 그는 이후 한국인 최초의 호교론서인 「상재상서」를 통해 천주교 견해를 밝히며 박해를 그치도록 주장했다. 엄한 문초 속에서도 나약함을 보이지 않고 굳건한 천주의 신앙을 드러냈던 정하상은 잡히고 두 달여 뒤인 9월 22일 참수됐다.
유조이는 체포 당시 79세 고령임에도 옥고를 치르고 230대 곤장을 맞았다. 당시 법률에 노인에 대한 참수는 금지됐기에 재판관들은 곤장으로 죽이기로 하고 문초를 거듭했다. 많은 나이에 매를 맞으면서도 흐트러짐 없이 강인한 신앙을 보였던 그는 같은 해 11월 23일 옥 바닥에 누워 마지막으로 ‘예수, 마리아’를 소리 내어 부르다 숨을 거뒀다. 그는 103위 성인 중 최고령 순교자다.
어려서부터 모친으로부터 경문(經文)과 교리를 익혔던 정정혜는 바느질과 길쌈 일로 가족의 생계를 돕고 오빠 정하상의 뒷바라지를 했다. 정하상이 교회 일에 적극적으로 나서자 모친과 함께 더욱 신앙생활에 몰두하며 동정을 결심했다. 모방 신부 등 선교사들의 처소를 정성껏 돌봤으며 신자들이 가톨릭 의식과 성사를 잘 받을 수 있도록 준비시키는 역할도 했다.
체포된 뒤 포도청에서 7회의 심문과 320대 곤장을 맞고 형조에서 다시 6회 심문을 받는 등 혹독한 고문을 당했으나 끝까지 신앙을 지켰다. 옥중에서도 기도하며 갇힌 신자들을 격려했던 그는 1839년 12월 29일 부친과 오빠들이 하느님을 위해 목숨을 내놓았던, 서소문 밖 형장에서 참수됐다.
천진암 성지에는 복자 정약종과 성 정하상의 묘가 모셔져 있다.
서론: 논술 동기
본론:
제1편 천주교 교의 해설
1장 천주존재 증명
2장 천주께 나아가는 길
3장 영혼과 내세
4장 천주교의 특징
제2편 천주교 호교 변증
1장 천주는 대군대부(大君大父)
2장 성윤리
결론: 천주교 신앙의 자유 호소
1장 천주교는 무해정도(無害正道)의 교
2장 박해 철회 호소
부록: 조상 제사와 신주 모시는 것에 대한 부당성 제시
<논술 동기>
“우리 나라에서 天主의 거룩한 종교를 금지하는 이유가 도대체 무엇입니까? 먼저 意義와 理致가 어떤지는 물어보지 않고 너무나 어이없고 원통스러운 말로 무조건 거룩한 교회를 옳지 못한 가르침이라고만 몰아 세우고는 死刑法으로 처리하여 辛酉年(1801년)을 前後하여 수많은 사람들의 생명을 앗아갔으면서도 천주교의 기원과 전통을 조사해 본 사람은 단 한 명도 없습니다. 아! 이 가르침을 배운다고 해서 유교의 가르침에 해가 된단 말입니까? 아니면 서민들을 혼란에 빠뜨린단 말입니까?”
<천주존재 증명>
天地 위에는 어른(하느님)이 계신데, 그분은 스스로 존재하시고 主宰하시는 분으로서 이는 다음 세 가지로 증명할 수 있습니다. 첫째는 만물이고 둘째는 良知(=양심)이며 셋째는 성경입니다.
만물
“천지 만물은 집에 비유할 수 있습니다. 집에는 기둥과 주춧돌이 있으며, 대들보와 서까래가 있고, 또한 집으로 들어가는 문이 있고, 담과 벽이 있어서 그 사이와 틈이 한 치도 어긋남이 없고, 모남과 둥금에 있어 각각 일정한 규칙이 있습니다. 만일 누군가가 기둥과 주춧돌과 대들보와 서까애와 집으로 들아가는 문과 담과 벽이 우연히 맞추어져서 저절로 우뚝 세워졌다고 말한다면 사람들은 분명히 미친 사람이라고 할 것입니다. 생각해보면 天地는 하나의 커다란 집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하늘을 우러러 보아도 아무런 소리가 안나고, 아무런 냄새도 없다 하여 사람들이 무덤을 향해 죽어가는 것을 그저 자연의 이치라고만 모두들 생각한다면, 이것은 遺腹子가 자기 아버지를 뵙지 못했다고 하여 자기 아버지가 있음을 믿지 않는 것과 무엇이 다르겠습니까?”
2. 양심
“밝은 낮이 갑자기 캄캄해지면서 천둥과 번개가 번갈아 쳐대면 어린아이라도 금방 무서워 떨고 눈을 토끼 눈처럼 뜨고는 오금도 제대로 못 펴면서 몸 둘 바를 몰라 합니다. 이것을 보면 선을 주시고 악을 벌하시는 큰 임금님께서 계시다는 것이 사람들 마음과 머리 속에 깊이 새겨져 있음을 우리는 알 수 있습니다.”
3. 성경
易經 ☞以享上帝(이향상제) “하느님께 바칩니다.” 누릴 향이 아니라 제사드릴
時經 ☞昭事上帝(소사상제) “하느님께 아뢰나이다.” 밝을 소
書經 ☞譚干上帝(담간상제) “하느님께 제사 드립니다.” 이야기 담이 아니라 깊을 담, 방패 간이 아니라 바랄 간
論語 ☞獲罪干天(획죄간천) 無所禱也(무소도야) “하늘에 죄를 지으면 기도바칠 곳이 없다.” 범할 간
“또한 하늘을 공경하고 하늘을 두려워하며 하늘에 순종하고 하늘을 받들어야 한다는 등의 학설이 여러 성현들과 철학자들의 저서 곳곳에 나타나 있으니, 설사 서양의 사기(성서)가 전래되지 않았다고 해서 무엇이 걱정되겠습니까?
손건의 동오시대에 쇠 십자가 발견, 당나라 정관 9년에 경교 번창
만약 하늘을 이고 땅을 밟고 살면서 입고 먹기만 한다면, 인류를 내신 큰 은혜를 이보다 더 크게 저버리는 것이 또 어디에 있겠습니까? 예컨대, 아버지가 집을 짓고 살림을 마련하여 아들에게 주어 사용하게 하였더니, 그 아들이 그 집에 살고 그 살림을 쓰면서 함부로 제가 잘난 체하고 부모를 섬기는 도리와 근본에 보답하는 뜻은 모른다면 이것이 효도하는 것이겠습니까? 불효하는 것이겠습니까?
<십계명과 칠죄종>
공자는 제자인 안연에게 仁의 실천 조목을 설명하면서 예가 아니면 보지 말며, 예가 아니면 말하지 마록, 예가 아니면 듣지 말고, 예가 아니면 행하지 말라고 가르치고 있으며, 禮記에서는 볼 때는 밝기를 생각하고, 들을 때는 총명하기를 생각하고, 얼굴빛은 온화하고자 생각하고, 태도는 공손하고자 생각하고, 말은 성실하고자 생각하고, 일을 할 때는 성실하고자 생각하고, 의심이 날 때는 질문하여 밝히고자 생각하고, 화가 날 때는 잘못하여 환난이 부모에게 끼치지 않을까 생각하고, 이득을 보면 그것이 의로운가를 생각하라고 가르치고 있지만 모두 십계명에 비교하면 너무나 부족합니다.
십계명 안에는 충성과 관용과 용서, 그리고 효도와 우애, 인애와 의리, 예의와 지혜가 모두 들어 있으니 털끝만큼도 부족한 것이 없습니다. 그러므로 이 도리를 한 집안에서 실행하면 집안을 바로잡을 수 있을 것이며, 한 나라에서 실행하면 나라를 잘 다스릴 수 있을 것이고, 전 세계에서 실행하면 온 세계가 평화로울 수 있을 것입니다.
열 가지 계명 가운데 한 가지라도 범해서는 안 되며, 더욱이 몸으로 범하는 것뿐만 아니라 마음으로 범하는 것도 금하고 있습니다. 헤아려 생각하건대, 사람의 과실은 모두 마음에서 일어나서 행동을 그르치기 때문입니다. 세상을 다스리는 법은 행동은 다스릴 수 있지만 마음은 다스리지 못합니다. 하지만 하느님의 계명은 행동을 다스릴 뿐만 아니라 마음까지도 다스립니다.
그러나 인간의 마음은 위태롭기만 하고 진리를 구하는 마음이 미약해서 자칫하면 죄를 범하게 됩니다. 개인적인 욕심과 집착이 사람을 온갖 방법으로 유인하니 교만에 빠지게 하고, 분노에 빠지게 하고, 탐욕에 빠지게 하고, 음란한 생각에 빠지게 하고, 질투에 빠지게 하고, 인색하게 화고, 게으름에 빠지게 하여 마침내는 사람을 죽는 지경에 빠뜨리고 맙니다. 진실로 그때그때 경계하여 물리치지 않으면 함정에 빠짐을 면하지 못할 것이기 때문에 죽는 날까지 싸워야 하는데, 아무리 힘들더라도 싸워서 이기면 공로가 되나 이기지 못하면 죄에 떨어지게 됩니다.
<사심판>
공로와 죄에 대한 판결은 육신이 죽는 날 있게 됩니다. 하느님께서는 지극히 공번되시어 선은 꼭 갚아주시고 또한 지극히 의로우시어 악은 반드시 벌하십니다.
만약 사람이 죽은 뒤에 영혼까지 없어진다면 하느님이 상이나 벌을 어디에 베푸시겠습니까? 따라서 분명히 영혼은 없어지지 않는다는 것을 알아야 하겠습니다.
<영혼과 내세>
혼(魂)은 세 가지가 있습니다. 첫째는 生魂이고, 둘째는 覺魂이며, 셋째는 靈魂입니다.
영혼이 정말 죽지 않고 사라지지도 않는다면 도대체 어디로 가겠습니까? 선한 사람의 영혼은 천당으로 올라가서 하느님께 상을 받고 악한 사람의 영혼은 지옥에 내려가 벌을 받게 됩니다. 상은 천당의 영원한 행복이며 벌은 지옥의 영원한 고통입니다. 만약 천당과 지옥을 보지 못했다고 해서 천당과 지옥이 있음을 믿지 않는다면 눈먼 사람이 하늘을 보지 않았다고 해서 하늘에 해가 있다는 것을 믿지 않는 것과 무엇이 다르겠습니까?
또한 천당에 오르고 지옥에 내려가는 것은 한 번 결정되면 다시 변경할 수가 없습니다.
아! 세상 사람들이 영혼이 죽지 않는다는 것은 명확히 알면서도 어디에 있는 줄은 알지 못하니 이 어찌 슬프지 않겠습니까?
사람의 목숨이 길어야 백 년을 넘지 못하는데, 사람은 현세에 집착하여 사리사욕만을 추구하며 아직 얻지 못한 것을 얻으려고 걱정하고, 이미 얻은 것은 잃을까봐 걱정하면서 죽을 날이 가까이 오는 것을 알지 못하고 있습니다. 사람이 한 번 죽으면 재산과 지위와 공로와 명예는 결국 헛된 것이 되고 맙니다. 더욱이 재산과 지위와 공로와 명예는 한평생 구하여도 다 얻지 못하는 것인데 그 헛된 꿈에서 깨어나기가 어찌 그리도 어렵습니까?
<성교회 특징>
왜 성교회가 지극히 공번되다고 하냐하면 성교회는 지위가 높거나 낮거나, 학식이 있거나 없거나, 남자이거나 여자이거나, 늙었거나 젊었거나를 막론하고 전세계 사람들이 다같이 마땅히 실천해야 할 종교이기 때문에 지극히 공번되다고 할 수 있는 것입니다.
성교회가 지극히 완전하다고 하냐하면 다음과 같은 이유에서입니다. 그것은 나무에 비유하여 설명할 수 있습니다. 즉 이단 종교들 중 어떤 것은 줄기는 있으되 가지가 없고, 어떤 것은 잎은 있으되 꽃이 없고, 또 어떤 것은 꽃은 있으되 열매가 없어 시작과 끝이 서로 연결되지 않고 이어지지가 않습니다. 그러나 성교회는 줄기가 있고 가지가 있으며 잎이 있고 꽃이 있으며 열매가 있어서 천지와 귀신과 인간의 시작과 끝, 과거와 현재와 미래의 순서를 다 갖추고 있기 때문에 지극히 완전하다고 할 수 있는 것입니다.
<대군대부>
또한 부모님을 업신여기고 임금도 업신여긴다고 말하니 이는 성교회의 가르침을 하나도 모르고 하는 말입니다. 십계명의 네 번째가 부모님을 효도로 공경하는 계명입니다. 무릇 ‘충’과 ‘효’라고 하는 두 글자는 만대가 흘러도 변할 수 없는 도리입니다. 부모님의 뜻을 받들고 그 육신을 봉양하는 것은 사람의 자식으로서 당연한 일이지만 천주교 신자들은 더더욱 열심히 삼가고 조심하여야 합니다. 그래서 예를 다하여 부모님을 섬기고 온 힘을 다하여 부모님을 봉양해야 합니다. 또한 임금에게 충성을 바칠 때에도 자신의 몸을 허락하여 생명을 바치고, 끓는 물 속에 들어가고 타는 불을 밟더라도 결코 피하지 않아야 하는 것입니다. 이렇게 하지 않으면 성교회에서 가르치는 계명을 어기는 것이 됩니다. 이런데도 성교회를 보고 부모를 업신여기고 임금을 업신여기는 학설이라고 하는 것입니까?
그러나 지위에는 높고 낮음이 있고 일에는 가볍고 무거운 것이 있으니, 집안에서는 아버지가 제일 높으나 한 집안이 아버지보다 높은 것은 나라의 임금이며, 한 나라 안에서는 임금이 가장 높으나 임금보다 높은 것은 천지의 큰 임금이십니다.
아버지의 명령을 듣고 임금의 명령을 듣지 않으면 그 죄가 무겁습니다. 하지만 임금의 명령을 듣고 천지의 큰 임금의 명령을 듣지 않으면 그 죄는 더욱 커서 비할 데가 없습니다. 그러므로 천주를 받들어 섬기는 것은 임금의 명령을 일부러 어기려는 마음에서 하는 것이 아니라 이같은 어쩔 수 없는 이치 때문에 하는 것인데, 이 한 가지 때문에 아버지를 업신여기고 임금을 업신여긴다고 말하는 것이 옳겠습니까?
<성윤리>
또한 여자를 서로 교환한다고 말하는데, 동물도 그렇지 않은 것들이 있는데 하물며 어찌해서 그런 행동을 천주교에서 한다고 하는 것입니까? 십계명 중 여섯 번째 계명에서는 음행을 하지 말라 하였고, 아홉 번째 계명에서는 남의 아내를 탐하지 말라고 하였습니다. 여섯 번째 계명은 몸으로 범하지 말하는 것이고, 아홉 번째 계명은 마음으로 범하지 말하는 것입니다. 천주교에서는 간음을 엄격하게 금지하는 것을 이와 같이 거듭 강조하고 있는데, 어째서 도리어 여자들 교환한다는 거짓말을 보태기까지 합니까?
<호교론>
우리 나라에서는 불교가 해를 끼친지 오래되었습니다. 전국에 있는 사찰의 건축은 사치가 극에 이르고 있으며 금과 구리로 된 불상은 재산을 낭비하여 만든 것입니다. 저 불교라는 것은 서역의 이단입니다. (중략) 헛된 길흉화복이 학설을 떠벌려 무식하고 어리석은 백성을 협박하는 것이 지금의 불교가 가지고 있는 괴이하고 못된 풍습입니다.
그리고 심지어 무당, 풍수, 점장이, 관상쟁이와 같은 사람들까지 부녀자와 아이들을 속이고 흘려 돈과 재물을 조금씩 조금씩 낚아채가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런 것들은 그냥 예사로 보면서 유독 천주교만은 결코 받아들이지 않으려고 하는 것은 어찌된 것입니까?
성교회가 가정에 해를 끼쳤습니까? 국가에 해를 끼쳤습니까? 그 하는 일을 보고 그 행실을 살펴보면 그 사람의 됨됨이를 알 수 있고 그 가르침이 어떠한지를 알 수 있습니다. 저희들이 일찍이 나라와 임금님께 반역을 하였습니까? 도둑질을 하였습니까? 간음을 하였습니까? 살인을 하였습니까?
가정과 국가가 어렵고 빈곤한 바로 이때, 바라건대 우리 임금님(헌종)께서는 밤에도 옷을 벗지 마시고, 해돋이에 진지를 잡수실만큼 부지런히 정사를 돌보시며 어지심을 베푸시어 생명을 소중히 여기시는 덕스러운 통치로 백성들의 마음을 흡족하게 하시옵소서. 아! 우리 천주교를 믿는 사람들만이 홀로 우리 임금닙의 자식이 아니란 말씀입니까? 슬프다! 어찌하여 사람들이 이렇듯 극도에 이르도록 조금도 서로 감싸주지 않는단 말입니까?
그러므로 이제 임금님께서는 밝게 비추히고 굽어보시어, 성교회의 도리가 참된 것인지 그릇된 것인지 올바른 것인지 자세히 판단하신 다음, 위로는 조정으로부터 아래로는 일반 서민들에 이르기까지 새롭게 변화되어 성교회로 돌아와서, 금령을 늦추고 체포하는 법을 철회하고 옥에 갇힌 사람들을 석방하여, 모든 백성들이 고향에 정착하여 생업을 즐기면서 다같이 평화를 누리며 살 수 있도록 해주시기를 이렇게 엎드려 간절히 바라고 또 바라옵니다.
<추신: 조상제사와 신주>
죽은 사람 앞에 술과 음식을 차려 놓는 것은 천주교에서 금하는 일입니다. 살아있을 동안에도 영혼은 술과 밥을 받아먹을 수 없는데, 하물려 죽은 뒤에 영혼이 어찌하겠습니까? 먹고 마시는 것은 육신의 입에 공급하는 것이요, 진리와 덕행은 영혼의 양식입니다. 아무리 효성 지극한 사람이라도 맛있는 것이라고 해서 부모님이 주무시고 계실 때 부모님 앞에 차려 드릴 수는 없습니다. 왜냐하면 잠자고 있는 동안에도 먹고 마시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잠시 잠들었을 때에도 이러한데, 하물며 영원히 잠들어버렸을 때는 어떠하겠습니까? 그러므로 벼와 수수와 기장과 피와 향기로운 과실로 된 제사 음식을 차려 놓는 것은 헛되거나 잘못된 일입니다. 자식된 도리로 어찌 허위와 가식의 예로써 이미 죽음 부모를 섬기겠습니까?
소위 사대부 집안의 신주라고 하는 것도 천주교에서 금하는 것입니다. 신주라는 것은 정신적으로나 육체적으로나 혈육과는 아무런 관계가 없고 또 낳아서 길러준 부모님의 노고와도 아무런 관련이 없습니다. 아버지와 어머니라 부르는 것이 얼마나 중대한 일입니까? 그런데 목수가 만들어서 분을 칠하고 먹을 찍은 신주를 보고 참된 아버지요 어머니라 부를 수 있겠습니까? 그것을 뒷받침할 근거도 없을 뿐만 아니라 양심 또한 허락하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차라리 양반에게 죄를 짓더라도 성교회에 죄를 짓고 싶지는 않습니다.
감사합니다.
오륜대 순교자 성지에서 2015년 교회사 특강 1기 수강생으로 열심히 들었던 교회사(한국교회사 세계교회사 사건으로 보는 세계교회사) 1년 수강과정을 다시 떠올리게 됩니다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