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중 제9주간 레지오 마리해 훈화
어느 한 남자가 사랑하는 여인의 집을 찾아가, 초인종을 눌렀습니다. 그러자 안에서 “누구세요?”하고 물었습니다. 이 남자는 자신의 목소리를 알아듣겠지 싶어 “나야, 나”하고 대답했습니다. 그러나 문을 열리지 않았습니다. 다시 초인종을 눌렀습니다. “누구세요?” “나야, 나” 그러나 문을 열리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이 남자가 곰곰이 생각하고 다시 초인종을 눌렀습니다. “누구세요?” 이때서야 “너야, 너”라고 대답했습니다. 그러자 비로소 문이 활짝 열렸습니다. 그렇습니다. 사랑하는 사람에게는 ‘나와 너’의 개념이 성립되지 않습니다. 하느님 안에서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관계도 그러합니다. 그래서 하느님은 한 분이십니다.
우리는 성부에게서 파견되고 사람이 되어 우리에게 오신 성자의 수난과 부활을 기억하고 기념하였으며, 오순절에 성부와 성자에게서 파견되신 성령의 강림 사전으로 전례력 상 부활 시기를 마쳤습니다. 이로써 신학적으로 하느님의 세 위격이 다 계시 되었기에, 성령 강림 대축일 다음 주일에 교회는 삼위일체 대축일을 지내는 것입니다. 그러나 삼위일체 교리는 우리 인간의 이성으로는 완전히 이해하기 힘든 교리입니다. 많은 신학자가 그 많은 시간을 드려 많은 책자를 써냈어도, 아직도 우리는 완전히 이해를 못 하는 것입니다. 이처럼 삼위일체의 신비를 논리적으로 이해하려고 애쓰지 말고, 우리는 삼위일체의 신비를 ‘살아야’ 합니다. 삼위일체 신비는 머리로 이해하는 교리가 아니라 우리의 삶을 통해 체험되는 교리이기 때문입니다. 하느님은 사랑이시기에, 이 삼위일체의 신비도 바로 사랑의 신비였으며, 겸손의 신비인 것입니다. 그리고 그 신비 덕분에 우리도 사랑을 본받아 주님과 하나를 이루면서 기쁨의 삶을 살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를 사랑하시어 자신의 아들까지 내어주신 하느님의 그 사랑을 본받아 우리도 자기 욕심과 이기심을 버리고 이웃들과 하나가 될 수 있을 때만이 삼위일체의 신비를 체험하게 될 것입니다. 매일 십자성호를 그을 때마다 우리를 사랑하시는 하느님께 대한 믿음을 확고히 하면서 우리도 그런 사랑으로 이웃들을 받아들일 수 있는 은총을 구하며 축복된 한 주간이 되기를 기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