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니 계시면서도 그득하신
노옥분 글라라
사하성당·시인
gll1998@hanmail.net
40년 만에 하는 영성체라고 했다. 성체를 영한 에디나 자매님의 얼굴이 환하게 빛났다. 결혼 전에는 열심한 가톨릭 신자였지만 시댁이 불교 집안이고 맏며느리여서 자연스레 냉담을 하게 되었단다. 남편은 어른들 돌아가시고 나면 성당에 나가게 해주겠다고 약속을 했다. 3년 전 시어머니의 별세로 신앙의 자유를 얻었지만 손 내미는 사람이 없었다. 그럴 즈음, 나의 권면과 중계로 혼인 장애(조당)를 해소하게 되었다.
혼인 장애를 푸는 데 필요한 서류를 갖춰 제출하고 신부님과의 면담도 이루어졌다. 신실하신 세실리아 형님 내외분께 부탁을 드렸더니 흔쾌히 증인을 서 주셨고, 부활 대축일을 한 주 앞둔 평일 어느 날에 주임 신부님의 주례로 관면 혼배성사가 거행되었다. 에디나 자매님의 오랜 갈망을 잘 알고 있었기에 예식 내내 나의 가슴도 덩달아 달아올랐다.
때마침 본당에서는 예비신자 교리가 시작되었는데, 관면 혼배 때 평화롭게 임하던 형제님을 떠올리며 입교시키기로 마음을 먹었다. 가끔 가게로 찾아가기도 하고, 에디나 자매님과 통화를 하다가도 수시로 입교를 권면했다. 하지만 “다음에”를 약속하며 선뜻 마음을 열지 않았다. 어쩌겠는가. 미약하나마 기도를 시작했다. “주님, 형제님도 영원한 생명을 주는 참된 양식을 맛보게 하소서!”
본당에서 예비신자 교리반이 시작된 지 한 달여가 지났다. 형제님의 마음이 강경한 것 같아 권면을 멈추고 하느님께서 인도해주시기를 청했다. 관면 혼배 후 미사참례 시간대가 달라 만나지 못했던 에디나 자매님으로부터 전화가 왔다. “글라라, 우리 남편 교리 아주 잘 받고 있어. 덕분이야.”라고 한다. 끄떡도 않던 형제님께서 교리가 시작된 그다음 주부터 교리반에 합류했다고 했다. 감사의 기도가 절로 나왔다. 하느님의 이끄심을 절감하는 순간이었다.
이렇듯이 그분은 보이지 않아도 계시고, 아니 계시면서도 그득하시다. 세상의 잣대와 아집으로 가득 차 자신이 필요할 때 입교하겠다던 형제님의 마음이 어떻게 변화되었는지는 지금도 알지 못한다. 다만 영원한 생명으로 초대해 주신 주님의 크신 사랑을 기억할 뿐이다. 교리가 있는 화요일에는 아침부터 마음을 정갈히 갖춘다는 자매님의 귀띔이 있었다. 교리를 예복습 한다고도 했다. 오늘의 작은 기쁨이 성체성사의 영원한 기쁨으로 거듭날 날이 머지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