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위일체 대축일
✠ 요한복음 3,16-18
삼위일체, 어렵게만 느껴지는 교리라는 생각만 가지고 있지는 않은지요?
어떻게 셋이 하나가 될수 있는지ᆢ 물질세계의 사고방식으로, 물리적으로만 접근하면 결코 풀리지 않는 수수께끼, 알아들을 수 없는 무조건 받아들여야 할 신비일 뿐입니다.
하느님을 어찌 물리적이고 수학적으로 정의할 수 있겠습니까? 그렇다면 알아들을 수 없는 것을 왜 알려주시고 믿으라 하실까요?
오늘 독서들은 삼위일체를 명확히 설명하지 않고 삼위에 대한 체험들을 말씀합니다. 삼위일체는 믿어야할 교리라기보다 참여하고 체험해야 할 하느님의 본질이라고 얘기하고 있는거지요.
우리가 알수 있는 것은 하느님은 고립된 고독한 존재가 아니라 서로서로 내어주며 끊임없이 친교를 나누는 존재라는 것입니다. 조금 깊이 가볼까요?
"우리와 비슷하게 우리 모습으로 사람을 만들자. "(창세1,26) 하시며 우리 인간을 만드셨다고 하는데 여기서 하느님의 모습이란 창조주하느님의 모습도, '물위를 감돌고 있는 하느님의 영의 모습도, 하느님의 영원한 말씀의 모습도 아닙니다.
'우리의 모습'이란 하느님의 속성, 곧 친교, 내어줌, 사랑을 가리킵니다. 그러니까 우리는 하느님의 모상이라기 보다 삼위일체의 모상으로 만들어져 우리도 하느님처럼 유일무이한 존재라 하시는 것입니다.
또 오늘 1독서에서 말씀하듯 “자비하고 너그러운 하느님이다. 분노에 더디고 자애와 진실이 충만”(34,6) 하신 주님처럼 우리 서로를 그렇게 대하는 존재로 살아간다면 진정 하느님의 모습을 닮았다 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오늘 복음은 "하느님께서는 세상을 너무나 사랑하신 나머지 외아들을"내어주셨다고 합니다.(3,16) 우리는 강생, 수난, 죽음에 이르는 우리에 대한 하느님의 사랑을 예수님 안에서 봅니다. 우리는 이 사랑 때문에 살아난 자들입니다. 그리고 이 사랑 안으로 초대받은 자들입니다.
삼위일체의 신비를 묵상하고 축일로 지내는 것은 이 극진한 하느님의 사랑을 알고 그분의 사랑을 받고 우리 서로 사랑하는 존재로 살아가는 것이 우리의 참모습임을 알아들으라는 거지요.
어떻게 가능할까요?
그래서 우리안에 당신 사랑, 성령을 부어주십니다.
"성령을 통하여 하느님의 사랑이 우리 마음에 부어졌기 때문입니다."(로마5,5)
"하느님의 영의 인도를 받는 이들은 모두 하느님의 자녀입니다."(로마8,14)
성령은 우리 안에서 끊임없이 사랑하라 일깨우십니다. 하느님을 닮은 모습으로 살아라, 친교를 살아라, 이것이 삶의 비결이다. 행복의 비결이다 하고 일깨우십니다.
날마다 조금 더 성령을 따라 걷는 하루이길 소망해 봅니다.
(에르메스 롱키신부의 해설을 참조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