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년 7월 <아름다운 세상을 여는 미사> 강연자료 / 주최: 천주교 부산교구 정의평화위원회

 

박노자의 평화 이야기

 

박노자 교수(노르웨이 오슬로국립대학교 한국학)

 

1. 평화의 정의:

 

- "포성이 들리지 않는 정전 (停戰)의 상태"와 "평화"는 질적으로 다름. 남북한 (남북조선)은 지금 형식적으로도 사실상 "무기한 정전"일 뿐이고 "평화"와 사이가 멀다.

 

- 진정한 평화 - 무엇보다 "이쪽"에서 "저쪽"을 "적대적 타자" 내지 "비정상적 타자"가 아닌 "친선의 대상자", "우리와 마찬가지로 정상적인 인간"으로 보고 있는 집단적 심성 상태. 이러한 차원에서 본다면 예컨대 서구/미국과 아랍세계 사이에서도 진정한 평화는 아직도 존재하지 않고 있음 (무엇보다 서구, 미국인의 적대적인 이슬람觀으로 인해서). 그런데 그것보다는 남북한 (남북조선) 사이의 정서적 상황은 훨씬 나쁘다고 볼 수 있음.

 

2. 남한 (남조선) 주류의 북한 (북조선) 인식 형태:

 

- 남한 (남조선)의 건국 이데올로기는 북한(북조선)에 대한 무조건적 증오와 공포를 기반으로 했지만, 지금 같으면 종전의 냉전적 반공, 반북주의는 신자유주의적 자본주의 신체제라는 새로운 상황에 의해서 훨씬 복합화되고, 많은 면에서 서구인들의 아랍/이슬람세계에 대한 멸시의 이데올로기인 "오리엔탈리즘"과 흡사해졌음.

 

- 핵무기 등에 대한 공포의 조장과 이북 정치체제의 "독재"라는 일(一)측면만의 무조건적 부각 등은 여전하지만, 거기에다가 "밥도 제대로 먹을 수 없는 그들"에 대한 멸시 ("경제적 인종주의")와 "세계에서 고립된 그들"에 대한 멸시 (남한의 "국제성", "일류를 지향하는 중진국가"로서의 자본주의적 정체성의 재확인을 위한 북한에 대한 부정), "통일만 되면 거지떼가 몰려온다"는 식의 공포 조장 등 "선진국式 오리엔탈리즘"과 가까운 요소들이 첨가됐음. 결국 지금 북한 (북조선)이라는 "적대적 타자"는, 남한 (남조선)의 주류가 유일하게 "마음 놓고 마음껏 짓밟을 수 있는" (즉, 상징적, 언어적 폭력을 행사할 수 있는) 대상이 됐음 (동남아 등 남한 자본이 악질적으로 착취하는 "저임금 국가"만 해도, 일단 경제적 관계가 존재하는 이상 일정한 자제를 행사해야 하는데, 이북에 대해서는 이와 같은 고려를 거의 하지 않아도 됨). 또 현실적으로도 북한(북조선)은 남한(남조선)의 통치자들이 유일하게 언젠가 식민화 (흡수통일)할 생각을 할 수 있는 대상이기도 함. 이러한 차원에서는, 현금의 반북 선전을 북한 (북조선) 정권 붕괴의 경우에 남한(남조선) 통치자들이 시도할 수도 있는 식민화를 위한 사전 준비로 이해할 수도 있음. 소결 (小結): 지금 "이쪽" 주류의 "저쪽"에 대한 지배적 인식 형태는 "무기한 정전"에 따를지도 모를 전쟁 행위 일종인 식민화의 준비면 준비지, 평화와는 완전히 무관함.

 

3. 남한 (남조선) 주류의 대북 시각의 인식론적 문제점:

 

- 역사성의 절대적 결여: 북한 (북조선)의 가시적 문제점 (경직되고 군사화된 규율적인 국가 체제, 상대적인 경제적 궁핍 등)의 역사적인 원인 (러시아 혁명의 보수화와 스탈린주의라는 세계적 현상의 초기적 영향, 성리학적 전통이 강한 농업국가에서의 불가피한 "혁명의 한계", 냉전의 최전선이라는 상황과 6.25 전쟁 때의 국가적 총동원의 체험 등등)에 대한 "의도적 무지".

 

- 자성 (自省)의 절대적 결여: 남한 (남조선)의 주류가 지향하는 "세계체제적 표준" (자유주의적 자본주의)의 입장에서 본다 해도, (스탈린주의 국가의 관행의 입장에서 본) 이북보다 오히려 이남의 정치, 사회 체제의 여러 측면들 (노동자들의 평화적 쟁의/저항에 대한 국가의 지속적인 개입과 과도하고 야만적인 물리력 사용, 매우 과도한 군사화, 국가보안법의 존속 등등)이나 "인간성 상실", "인간의 물화", "인간의 소외" 정도는 "비정상적으로" 왜곡된 것으로만 보임.

 

- 미래지향성의 절대적 결여: 이와 같은 인식의 틀들은 식민화 준비나 "무기한 정전"의 지속 이상을 지향하게끔 만들 수 없음. 소결 (小結): 지금 "이쪽" 주류의 "저쪽"에 대한 지배적 인식 형태는 극도로 비도덕적이며 위험할 뿐이다.

 

4. 종교적 시각의 유효성?

 

기독교든 불교든 "남을 재판하지 말라", "참회와 개선을 자기부터 하라"고 가르친다. 이 가르침에 따라 우리는 "저쪽"을 마음으로 "재판"하기 전에 "이쪽"의 탈(脫)인간화(化) 정도, "이쪽"의 각종 참상들을 직시하고, "이쪽"에서의 노동해방과 인간해방을 위한 투쟁이라는 형태의 "집단적/적극적 참회/개선"을 힘차게 시도하면 될 것이다. 그 "해방적 과정"에서는 "저쪽"에 대한 균형 잡히고 미래지향적인, 자성적이고 역사의식에 기반한 올바른 시각이 절로 정립되리라고 믿는다. 이는 바로 평화를 지향해서 가는 길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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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노자 (朴露子, 러시아 이름: 블라디미르 티호노프)는 대한민국의 대표적인 진보주의 학자이다. 상트페테르부르크에서 태어나 상트페테르부르크 국립대학교의 동방학부 한국사학과를 졸업하고 모스크바 국립대학교에서 박사학위를 취득했다. 2001년 대한민국으로 귀화했으며, 현재 노르웨이 오슬로 국립대학에서 한국학을 가르치고 있다.

 

■ 저서:《우리가 몰랐던 동아시아》,《당신들의 대한민국1》,《당신들의 대한민국2》,《나를 배반한 역사》,《우승열패의 신화》,《좌우는 있어도 위아래는 없다》,《하얀 가면의 제국》,《우리 역사 최전선》(허동현과 공저),《열강의 소용돌이에서 살아남기》(허동현과 공저),《박노자의 만감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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