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주교 부산교구 정의평화위원회 촛불 집회 연설문>
“돌들이 외칠 것이다.”(루가 19,40)
종교가 지향하는 세상은 전혀 다른 이데아가 아닙니다. 산다는 일의 보편적인 진리와 상식이 통하는 세상, 공평할 수는 없어도 공정할 수는 있는 세상, 사람과 사람이 서로를 신뢰하고 희망할 수 있는 세상, 정의로운 이들이 합당한 대접을 받고 불법의 사람들이 부끄러움으로 고개 숙이는 세상, 종교가 희망하고 기도하는 세상은 이렇듯 거창한 것 하나 없음에도 불구하고, 이 기본적인 희망마저도 철저히 짓밟고 오만과 독선으로 이 땅의 시계를 다시금 과거의 어둠으로 되돌리려는 이명박 정권을 향해 <일단 정지!> 하라고 외칩니다.
어두움이 이 땅을 덮었습니다. 돈만 되면 뭔 짓을 해도 상관없다는 뻔뻔스러움이 오늘 이 지경까지 이르게 만들었고, 성공하고 출세만 하면 최소한의 양심과 도덕 따위는 모른 척 눈감아주었던 부끄러운 탐욕이 오늘 이 촛불을 치솟게 하고 있습니다.
“부끄러움을 모르는 천박한 정신세계”의 심장에 이명박 정권의 검은 혀가 헐떡이고 있습니다. 그래서 그는 지금도 장사꾼 CEO 대한민국을 자처하고, 갖은 말 바꾸기를 거듭하며 돈 되는 모든 것을 죄다 팔아 치우고, 산은 파고 바다는 막고 강은 파헤쳐 금수강산 이 땅을 걸레 조각으로 만들고, 최소한의 양식을 요구하는 함성에 기껏 한다는 짓이 물대포에 소화기에 방패와 군홧발의 겁주기입니다.
이명박, 당신이 가고 있는 길은 대한민국을 위한 길이 아닙니다. 건강주권을 팔아 철저히 미국의 국익에 충실한 길입니다. 이명박, 당신이 가고 있는 길은 사람을 위한 길이 아닙니다. 사람이 아니라 오로지 자본을 위한 길입니다. 이명박, 당신이 가고 있는 길은 국민을 위한 길이 아니라 일제에 빌붙어 기득권을 누려왔던 소수의 있는 자들만 섬기는 길입니다.
종교가 희망해 온 최소한의 상식과 정의의 길은 이명박의 길이 아니라 그를 심판하기 위해 나선 무명의 민중들이 들고선 이 촛불의 길입니다. 천주교회 정의평화 위원회는 칠흑 같은 어둠을 밝히려 촛불을 들고선 이 길의 외침에, 희망할 것이 없어도 희망해야만 하는 종교인으로서 함께합니다.
이 촛불의 정신이 대한민국이 가야 하는 길을 바로 잡아줄 것임을 희망합니다. 오로지 경제 발전 하나에 염치도 부끄러움도 모른 척 했던 이 시대의 어리석음을 밝혀, 사람답게 사는 일이 무엇이고, 구호의 민주주의가 아니라 생활 참여의 민주주의로 가는 길이 무엇이며, 궁극적으로는 이 대한민국 민주공화국의 참 주인이 누구여야 하는지를 드러내는 위대한 주권의 횃불로 승화될 것임을 지지합니다.
고시강행으로, 무차별 연행으로, 국회의원도, 12살 아이도, 모두 다 잡아넣어, 입 막고 그저 조용히 질 좋고 값싼 고기 배불리 먹여주면 감사할 줄 알아라, 국민개조 프로그램이나 작동시키려는 이명박 대통령에게 더 이상 기대할만한 소통이 남아있지 않음을 확인한 마당에, 이런 머슴은 이제 더 필요하지 않다고 단언합니다.
미국에게 칭찬 받고 미국에게 박수 받는 대통령이 필요한 것이 아니라, 국민에게 칭찬 받고 국민에게 박수 받는 대통령이 필요합니다. 최소한의 양심을 갖춘 대통령과 함께 살고 싶다는 국민 주권의 소망은 아주 단순합니다.
이명박 대통령, 우리는 더 이상 당신이 필요하지 않습니다. 내려오십시오! 그간 충분히 맛보았던 위선과 배신의 상처들은 우리 사회가 성숙한 민주주의로 진보하는 성장통이라 생각하겠습니다. 촛불 끄려고 물대포 쏘지 말고, 국민들 가슴 속에 치솟는 천불을 꺼주십시오. 한 번 더 기회를 드립니다. 내려오십시오! 그것만이 촛불을 끄고 이 땅 대한민국의 가슴 속 천불을 끄는 마지막 방법입니다.
2008. 6.27 천주교 부산교구 정의평화위원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