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황청 정의평화평의회 · 주교회의 정의평화위원회
인권과 사목
HUMAN RIGHTS AND THE PASTORAL MISSION OF THE CHURCH
WORLD CONGRESS ON THE PASTORAL PROMOTION OF HUMAN RIGHTS
- 인권 신장을 위한 세계 회의 -
로마, 1998년 7월 1-4일
이창영 신부 번역
차 례
들어가는 말
교황 요한 바오로 2세 성하의 연설
로제 에체가레이 추기경의 회의 개막 연설
교황 요한 바오로 2세의 가르침:인권의 토대와 원리 / 조르지오 필리배크 박사
인권에 관한 설문 조사 결과 / 지암파올로 크레팔디 몬시뇰
교회 생활과 인권:증거
- 남아프리카 가톨릭 교회의 경험 / 애쉴리 그린 톰슨
- 한국의 인권 증진 사목 / 한홍순 교수
- 보스니아-헤르체고비나 전쟁과 가톨릭 교회의 인권 옹호 / 프란조 코마리카 주교
- 과테말라 교회의 사목과 인권 / 로날드 오체타 아르구에타 박사
- 태평양 지역 보고서 / 샌디 코리니슈
그룹 작업에서 제기된 핵심 사안
부 록
- 교황 요한 바오로 2세 성하의 세계인권선언 50주년 담화
- 교황 요한 바오로 2세 성하의 제32차 세계 평화의 날 담화
들어가는 말
저는 세계인권선언 50주년을 기념하여 프랑스 정부가 파리에서 개최한 기념식(1998년 12월 10일)에 참석한 바 있습니다. 이 기념식은 명망 있는 인권 운동가들, 특히 인권 운동의 산 증인들이 참석한 감격적인 자리였습니다. 인간의 권리는 단순히 법률 조문에만 기록되어 있는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그것은 고통스런 상황 아래서 목숨을 잃어 가면서까지, 인권의 원천인 인간 존엄성이 부인되거나 말살될 수 없다는 것을 용기 있게 보여 준 증인들을 통하여 실현되고 있습니다.
교황청 정의평화평의회는 1998년 7월 1-4일까지 인권 신장을 위한 세계회의를 개최하였습니다. 이 회의의 목적은 무엇보다 교회의 복음화 사명과 모든 인간의 존엄 증진 사이의 긴밀한 관계를 강조하는 것입니다. 세계 각국의 주교회의 대표자들이 이 회의에 초대받았습니다.
회의록 전문을 출판하는 것이 어렵게 되어 우리는 이렇게 약소하지만 유용한 문헌을 출판하기로 결정하였습니다. 이 문헌에서는 그 당시 모든 회의 참석자가 강조했듯이 이 중요한 회의의 풍요롭고 유익한 결실을 담고자 합니다.
저는 대희년을 시작하는 날 이 문헌에 서명하게 된 것을 기쁘게 생각합니다. 교회는 대희년을 살아가면서, 인격으로서 개인적 차원과 민족과 국민으로서 공동체적 차원, 이 양 차원에서 인간 존엄성이 완전히 존중받기를 열망하는 우리 시대의 모든 남녀에게 지속적으로 봉사할 것입니다.
실제로, 교황 요한 바오로 2세께서는 우리에게 이렇게 일깨워 주십니다. “참으로 그토록 수많은 갈등과 참을 수 없는 사회적, 경제적 불평등으로 점철된 우리의 세계에서 정의와 평화에 대한 투신은 희년의 준비와 경축을 위한 필수 조건입니다”(「제삼천년기」, 51항).
이 문헌이 이와 같은 뜻을 품고 매진하는 모든 그리스도인의 활동을 격려하는 데 이바지하기를 바랍니다.
2000년 1월 1일
천주의 성모 마리아 대축일
세계 평화의 날
교황청 정의평화평의회
의장 프란시스 하비에르 응귀엥 반 투앙 대주교
교황 요한 바오로 2세 성하의 연설
존경하는 추기경님들과
형제 주교님들과
형제 자매 여러분!
1. 저는 이 아침에 세계인권선언 50주년을 맞이하여 교황청 정의평화평의회가 주최한 인권 신장을 위한 세계 회의에 참석하신 여러분을 진심으로 환영합니다. 교황청 정의평화평의회의 새 의장이신 프란시스 하비에르 응귀엥 반 투앙 대주교님께서 여러분의 업적을 소개해 주신 데 대하여 감사 드리며, 동시에 이 평의회의 의장직을 물러나시는, 친애하는 로제 에체가레이 추기경님께 감사를 드릴 수 있는 기회를 갖게 된 것을 기쁘게 생각합니다. 추기경님께서는 14년 동안 지칠 줄 모르는 헌신과 능력으로 이 평의회를 지도해 주셨습니다.
저는 이 자리를 통하여 모든 참석자와 정의평화평의회 회원, 고문, 그리고 직원 여러분께 인사 드립니다. 다른 그리스도교 교회와 여러 국제 기관 대표들께서 이 회의 석상에 계신 것은 오늘날 인간 존엄성 증진에 대하여 우리가 다 함께 관심을 가지고 헌신하고 있다는 것을 말해 줍니다.
2. "구속 신비의 인간적 차원”을 통한 인간에 대한 하느님의 계획은 저의 첫 번째 회칙 「인간의 구원자」(Redemptor Hominis, 10항 참조)의 핵심 주제였습니다. 인간이 “교회의 일차적이고 근본적인 길”(14항)임을 밝히는 가운데, 저는 “인간의 객관적이고 침범할 수 없는 권리”(17항)의 의미를 말했습니다. 그리고 이것은 금세기의 시련과 고난의 한복판에서 차츰 국제적 차원으로, 특히 세계인권선언 안에 공식적으로 표명되었습니다. 또한 저는 보편 교회의 목자로서, 직무 전체에서 인간 삶의 모든 측면과 정치적 사회적 경제적 문화적 상황에서 인간의 존엄과 인권을 보호하고 증진하는 데 특별한 관심을 기울여 왔습니다.
저는 회칙 「인간의 구원자」에서 인권 옹호에 관한 희망의 징표들과 인간을 위협하는 극심한 고통의 징표들 사이에 놓인 긴장을 분석하면서, 인권의 “문자”와 “정신”의 관계에 대하여 질문하였습니다(17항 참조). 지금도 우리는 여러 국제 “문헌”이 인정하고 있는 “문자”와, 아직 완전히 존중되지 못하고 있는 “정신” 사이에 존재하는 간극에 주목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우리 시대에는 아직도 심각한 인권 유린 사태가 벌어지고 있으며, 아직도 이 세상의 수많은 남녀들과 아동들의 권리가 무참히 거부되고 있는 실정입니다. 얼마나 많은 사람이 인간적 자유와 개인적 소신을 표현하고 하느님께 신앙을 고백하는 가능성을 박탈당하고 있습니까? 얼마나 많은 사람이 고문과 폭력과 착취의 희생자가 되고 있습니까? 얼마나 많은 사람이 전쟁, 차별, 실직, 비참한 경제 상황 때문에 하느님께서 그들에게 부여하신 인간 존엄을 충만히 누리지 못하고 있으며, 얼마나 많은 사람이 하느님께 받은 재능을 마음껏 펴지 못하고 있습니까?
3. 그러므로 사목적 측면에서 인권을 신장하는 제일차적 목표는 보편적 권리들에 대한 그 “문자”의 수용이 “정신”의 실천적 적용을 동반해야 한다는 사실을 인식하는 것입니다. 이것은 하느님의 모습대로 창조되어 그리스도 안에 하느님의 자녀가 된 모든 인간의 동등한 존엄과 인간에 대한 진리에서 출발하여 어디에서나 그리고 가장 효과적인 방법으로 실천되어야 합니다.
이 세상 모든 사람은 “인간에 대한 진리”를 알 권리가 있으며, 각자는 가정―특별한 권리의 주체―과 사회 안에서 정신적 능력, 지성적 창의력 그리고 직업을 가진 인격적이고 바꿀 수 없는 고유한 신원에 따라 그 진리를 살아갈 권리가 있습니다. 모든 인간 존재는 하느님께 받은 재능의 열매를 맺을 권리를 가지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인간과 모든 창조물에 대한 하느님의 계획에 반대되는 행위는 인간의 존엄을 비하하고 자기 실현의 가능성을 저해합니다.
따라서 사목적 측면의 인권 신장은 현대 세계 안에서 교회 자신의 사명과 밀접히 관련되어 있습니다. 교회는 결코 인간을 버릴 수 없으며 인간의 운명은 그리스도와 매우 밀접히 연결되어 있습니다.
4. 사목적 측면에서 인권을 신장하는 두 번째 목적은 객관성과 성실성과 책임감을 가지고 “오늘과 미래의 인간 상황에 관하여 근본적인 질문”(「인간의 구원자」, 15항)을 하는 데 있습니다.
이 점에서는 오늘날 사람들이 살아가는 데 사회적 경제적 조건이 특별한 중요성을 가진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인본주의와 과학의 급속한 발전으로 특징지어지는 오늘의 세계에서 소수의 사람이 누리는 풍요와 대조를 이루는 극도의 빈곤은 인류의 진정한 수치이며 완전한 인권 실현에 걸림돌이 되는 심각한 원인의 하나입니다. 여러분은 틀림없이 여러분의 주위와 직장에서 빈곤과 기아, 그리고 기본적인 봉사의 부족으로 발생하는 일을 거의 매일 만나고, 서민들의 삶과 그들이 자신과 사랑하는 사람들의 생존을 위하여 투쟁하는 현실을 볼 것입니다.
절대 빈곤층에 있는 사람들은 그들의 불안정한 상황 때문에 개발 도상국이 겪는 경제 위기에서 가장 큰 타격을 받는 사람들입니다. 우리는 경제 번영이란 첫째 인간 노동의 결실이며, 정직하고 힘든 수고의 결실임을 기억하여야 합니다. 세계적 차원에서 벌어지고 있는 경제의 재구조화는 인간의 존엄과 권리, 특히 노동의 권리와 노동자의 보호에 바탕을 두어야 합니다.
그러므로 오늘날 경제의 재구조화는 인권의 전체적 틀 안에서 서로 분리할 수 없는 사회 경제적 권리에 새로운 주의를 기울일 것을 요청합니다. 이 권리들의 진정한 법적 지위를 부인하는 모든 시도를 거부하는 것이 중요하며, 그 권리들의 전면적이고 효과적인 실현을 위하여 모든 부문―정부, 정당, 회사, 시민 사회―이 공동 책임을 져야 합니다.
5. 오늘날 사목적 측면의 인권 신장에서 특별히 중요한 구실을 하는 것은 교육입니다. 인권 존중에 관한 교육은 자연스럽게 진정한 인권 문화를 꽃피울 것입니다. 인권이 존중되고 국제 사회가 진정으로 권리의 존중 위에 세워지려면 인권 교육이 필수적입니다. 현재 로마에서는 국제 형사 재판소 설립을 위한 국제연합 외교관 회의가 열리고 있습니다. 모든 사람이 바라는 것처럼 저도 이 회의가 세계적 차원에서 인권 문화를 옹호하는 새로운 기관을 출범시키기를 희망합니다.
실제로 인권에 대한 완전한 존중은 모든 문화에 통합될 수 있습니다. 인권의 원천은 모든 인간의 평등한 존엄입니다. 따라서 인권은 본질적으로 보편적인 것입니다. 세상에 존재하는 문화들의 다양성과 여러 수준의 경제 발전을 인정하면서 인권이 모든 사람과 관련된다는 것을 반복해서 강조하는 것은 극히 지당한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올해 세계 평화의 날 담화에서 언급한 것처럼(로세르바토레 로마노[L'Osservatore Romano], 영문판, 1997년 12월 17일, 3면), 문화의 특수성에 관한 주장이 결코 인권 유린의 구실로 사용되어서는 안 될 것입니다. 저의 선임자이신 교황 바오로 6세께서 바라신 것처럼 '전체적' 발전, 곧 인간 전체와 인류 전체의 발전(「민족들의 발전」[Populorum Progressio], 14항 참조)과 권리 향상에 대한 총체적 개념을 증진시키는 것이 중요합니다. 인권의 완전성에 손상을 끼치면서 한 개인의 권리 또는 부분적 권리의 증진을 강조하는 것은 바로 세계인권선언의 정신을 배반하는 것과 다를 바 없습니다.
6. 사목적 측면의 인권 신장은 특별히 인간의 영성적이고 초월적인 차원에 관심을 가져야 합니다. 특히 오늘의 상황은 인간을 단순히 경제적 차원으로 그리고 무엇보다 먼저 하나의 경제학 용어로 축소시키고 있습니다.
인간의 초월성에 대한 고려는 종교 자유의 권리를 옹호하고 증진할 의무를 수반합니다. 따라서 이번 회의는 아직도 종교 자유의 권리를 완전하고도 자유롭게, 개인적으로 그리고 공동체적으로 행사하지 못하는 이 세상의 모든 사람을 위한 본인의 연대와 기도의 도움을 표현할 수 있는 기회이기도 합니다. 저는 국민의 인권을 구체적으로 보장해 줄 것을 세계 각국 지도자들에게 호소합니다. 정부 당국자들은 신자들 가운데서 더욱 정의롭고 평화로운 사회를 건설하기 위하여 모든 사람과 협력하고자 하는 사람들을 발견할 수 있을 것입니다.
7. 이 회의에 참석해 주신 여러분 모두에게 진심으로 감사 드리며, 그리스도인 공동체 안에서 여러분이 보여 주는 일상적 증언과 교육 활동에 대하여도 깊이 감사 드립니다. 저는 여러분과 함께 형제 자매들에 대한 사랑 때문에 자신의 권리를 포기하고 인간 존엄성에 대한 그리스도의 메시지를 증언한 우리 시대의 모든 증인들에게 깊은 존경을 드립니다. 저는 여러분의 다양한 사명을 교회의 어머니이신 마리아께 맡겨 드립니다. 마리아께서는, 당신께서 인간 구원의 위대한 신비를 깨달으신 것처럼 우리도 그 속에 담긴 심오한 의미를 깨달을 수 있도록 도와 주실 것입니다.
여러분과 여러분이 사랑하시는 모든 분, 그리고 여러분과 함께 일하시는 모든 분에게 축복을 드립니다.
로제 에체가레이 추기경의 회의 개막 연설
친애하는 친구들,
교황청 정의평화평의회의 새 의장께서는 이 회의의 원래 계획을 변경하지 않으시고 이 자리를 저에게 베풀어 주셨습니다. 이 자리는 제가 마치 아직도 ―저의 마지막 작품이 될― 몇 가지 대책에 대하여 권한을 가지고 있다는 즐거운 착각을 하게 합니다. 저는 제가 숨을 쉬고 있는 한, 이 세상의 모든 남녀가 인간답게 살도록 그들의 신성한 권리를 옹호하는 발언을 그치지 않을 것입니다.
여러 곳에서 다양한 방법으로 세계인권선언 50주년 경축 행사가 거행되고 있습니다. 그러나 오늘날의 불안정한 세계 상황은 인류가 스스로 형성해 온 인권 개념 그 자체에 대하여 질문하게 합니다. 인권의 정의가 너무나 방대하여 그 속에 무엇이나 포함될 수 있으며, 인권 자체가 그러한 광범위한 목적들을 연상하게 합니다! 자국의 이익을 최우선시하는 나라들 사이의 거래에서는 인권을 교환의 수단으로 이용하여 서로의 이익을 추구합니다! 보편적이고 불가분한 것으로서 인권의 본질적 특성이 약화되는 사태에 직면하여, 인권이 실제로 도덕적 토대의 기능을 하고 세계 질서의 보증 구실을 할 수 있는지에 대하여 회의적인 시각이 등장하고 있습니다.
국제연합 헌장과 관련 기구들의 출범은 인류의 양심을 지키고 어느 정도 집단적 인간 양심을 일으키는 데에 기여하였습니다. 인간에 대한 범죄 행위에 대하여 다소나마 언급하는 것은, 현대인들이 자신을, 단순히 추상적인 존재가 아니라 각자 공동 역사의 한 부분을 작성하도록 초대된 살아 있는 전체로서, 한 인류의 구성원이라고 인식함을 의미합니다.
이러한 빛과 그늘의 상황 속에서 교회의 자리는 어디에 있습니까? 우리가 이 회의에서 추구하는 것은 소신을 가지고 그러나 겸손하게 바로 이 질문에 대하여 대답하는 것입니다. 인권 분야의 사목직은 교회의 고유한 영역입니다. 교회 용어인 “사목직”은 어쩌면 시대에 뒤쳐진 것처럼 들릴지 모르지만 사실 복음의 모든 새로움과 어느 곳에나 현존하시며 각자의 이름으로 우리를 부르고 계시는 목자의 대담성을 실현합니다. 교회는 길 잃은 자들과 인간 존엄을 유린당한 자들에 대한 관심 그 이상을 추구합니다. 교회는 착한 목자인 동시에 착한 사마리아인입니다.
교회가 지난 세기에 가끔 인권에 관하여 침묵을 지켰음을 우리는 겸허하게 인정하여야 합니다. 교회는 인권이 자유주의적이고 반종교적 의제의 하나로서 주장될 때 이에 대한 적극적이고 적절한 식별을 해낼 수 없었습니다. 교회가 인권을 옹호하는 시위를 한다는 말을 듣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경우에 인권을 그 집인 교회로 데려온다고 말하는 것이 더 정확할 것입니다. 실제로 복음은 인권의 탄생지이기 때문입니다.
인류가 교회에 거는 기대만큼 교회는 더욱 집요하게 인권을 옹호하고 거취를 명백히 해야 하며 자신과 다른 사람들에게 이를 주장하여야 합니다. 현대인들은 그 어느 때보다 자기 권리에 대하여 의식하고 있으며 이 권리에 대한 의식은 계속해서 고조되어 가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 권리의 명백한 표현을 발견할 수 있는 진리는 무엇입니까? 사람들에게 화합을 가져다 주는 사랑의 실체는 무엇입니까? 헌장의 성격은 선언적일 뿐 권리를 주지 않습니다. 인류의 합의를 이끌어 낼 수 있는 가치 추구는 우선적으로 국제 공동체가 하여야 할 일입니다. 국제 공동체는 인내심을 가지고 이를 위하여 적극적으로 노력하여야 할 것입니다. 이 일은 교회의 임무이기도 합니다. 교회는 인권을 교회만이 고백하는 배타적인 진리로 만들어서는 안 됩니다. 교회는 그 어느 때보다 개인들과 민족들과 공동 탁자에 함께 앉으려는 의지를 보여야 합니다.
교회는 신앙의 역동성이 어떻게 인권에 대한 호소를 변화시키고 강화하는지 보여 주고자 합니다. 인간을 권리의 토대로 보는 것은, 곧 인간 존재가 그 어떤 외부의 힘으로도 이용되거나 착취될 수 없는 초월적 실재와 결합되어 있다는 말과 같습니다. 오직 신앙인들만이 인권에 대한 이러한 숭고한 개념을 이해할 수 있습니다. 저는 모든 사람에게 이 점을 분명히 이해시키려고 하신 요한 23세와 요한 바오로 2세의 사상이 아직 충분히 연구되지 않고 있으며 완전히 활용되지 않고 있다고 봅니다. 이는 서로 다른 두 개의 언어 문제가 아니라 교회가 말하는 언어에 하느님과 인간의 지혜를 부여하는 문제입니다.
교회는 자신의 모든 교육 경험을 활용하여야 합니다(「어머니요 스승」[Mater et Magistra]). 인권을 실천하는 겸손한 학교인 교회는 인권을 일상의 현실에 적용하면서 이를 무의미한 것으로 만들지 말아야 합니다. 교회는 책임의 의미를 가르침으로써만 이를 실현할 수 있습니다. 의무가 따르지 않는 권리는 불구입니다. 의무에 대한 인식은 권리를 최고의 수준으로 들어 올려 줍니다. 인권은 인간의 의무에 완전히 응답하는 권리입니다. 이 의무를 내일로 미루거나 2000년까지, 더 나아가서는 장래로 미룰 수는 없습니다. 미지의 “새로운 시대”까지 기다리지 않고 바로 오늘 이 곳에서 응답하는 권리입니다. 미래를 향한 진정한 용기는 현재, 곧 지금 이 곳에서 모든 것을 바치는 데에서 발견됩니다. 이러한 태도는 카뮈가 주장한, 진정으로 정의로운 사람들의 태도입니다. 카뮈의 말에 따르면 미래는 주인이 종에게 베푸는 유일한 보상이기 때문입니다.
인권 교육은 복음을 실천하는 교회의 길에 대한 자리 매김입니다. 모든 사람이 교회 안에서 인간 존엄에 대한 순수하고 고무적인 존중과 태도를 확인하여, 교회가 더욱 모든 사람에 대한 진지한 관심의 모범으로 보여지도록 하는 형제적 사명을 느끼지 않을 사람이 우리 가운데 누가 있겠습니까?
인권 투쟁은 계속하여 분노를 일으키는 싸움과 같습니다. 우리는 함께 견디고 투쟁할 때에만 이 싸움에서 성공할 수 있습니다. 이 싸움에 투신하는 사람들은 사회로부터 소외당하고 억압받는 사람들과 연대를 촉구합니다. 그 어느 때보다 우리가 인권 옹호자들에게 보여 주어야 할 점은 바로 그들과 하나가 되는 것입니다. 우리는 인권 투쟁에 헌신하는 사람들을 보호하여야 합니다. 그들의 투쟁은 때로는 오해를 받고 흔히는 위험스러운 것이기 때문입니다. 아직도 많은 나라에서 인권 옹호자들은 감옥, 고문, 죽음은 물론 우리가 감히 상상할 수 없는 참혹하고 비참한 죽음의 위험을 감수하여야 합니다. 저는 파키스탄의 존 조세프 주교님과 과테말라의 후안 제라르디 주교님을 생각합니다. 이 두 분과 저는 잘 아는 사이였습니다.
인권을 위하여 싸운다는 것은 종종 죄의 암울한 현실과 죄의 사회적 구조와 정면으로 대결하는 것을 말합니다. 조금의 희망이라도 없다면 적절하게 이 싸움에 참여할 수도 없을 것입니다. 모든 고발은 동시에 예고가 되어야 합니다. 이미 가까이 다가와 있는 선을 알려 주지 않고서는 악을 고발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교회는 살아 계시는 하느님, 끊임없이 우리 가운데 오시는 하느님, 억압받는 자들과 함께하시는 하느님을 예언하고 선포하는 파수꾼이기에 앞서 먼저 예언자가 되어야 합니다. 그들이 하느님을 믿지 않는다면 하느님을 기다리지도 않을 것입니다.
우리가 잘 알고 있는 「인간으로 살 권리」(The Right to Be a Man) 속에 모든 시대의 인간과 문화에 대하여 천명하는 내용이 실려 있습니다. 유네스코가 펴 낸 이 책의 서언에서 당시 유네스코 의장 르네 말뤼 씨는 이렇게 쓰고 있습니다. “우리가 아무리 위대한 노력과 발전을 이루었다 할지라도, 아무리 많은 영웅적 희생을 치러 냈다 할지라도, 인류는 아직도 자신의 자유에 대한 정당한 값을 치르지 못했으며 그 참된 가치를 정하지도 못했습니다. 바로 이 순간에도 우리와 같은 수백만의 인간 존재가 무참히 짓밟히고 억압당하고 있으며 여러분과 저의 손길을 애타게 기다리고 있습니다.”
여러분과 저, 그리고 우리 모두를 위하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