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활 제5주일
✠ 요한복음 14,1-12
“하느님을 믿고 또 나를 믿어라.”(1)
오늘 복음 본문 앞에 나오는 이야기를 읽으면 왜 예수께서 “마음이 산란해지지 않도록 하시오.”(1)라고 말씀하시는지 알 수 있습니다.
제자들의 마음이 정말 산란해져 있었습니다.
왜냐하면 예수께서 그들 중 하나가 배반하리라고(13, 21)
또 베드로는 그를 모른다할 것이라고(13, 38) 그리고 당신이 그들과 함께할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13,33)고 방금 말씀하셨기 때문입니다.
예수께서는 믿음의 자세로, 당신과 아버지께 대한 신뢰로 그 산란함을 이겨내라고 하십니다.
그리고 이 믿음은 하느님 아버지의 집에 함께 하기를 원하신다는(2-3) 사실에 그 동기를 둡니다.
아버지께서는 당신이 거처하시는 곳에서
우리가 사랑받는 자녀로서 당신 아드님과 더불어 당신과 함께 하기를 원하십니다. 다른 원함은 없습니다.
이것이 의미하는 바가 과연 무엇일까요?
이는 하느님께서 당신의 참된 행복 안에서, 당신의 자리, 생명이 충만한 그 자리에서 당신과 함께 하기를 원하신다는 뜻입니다.이미 그 자리는 마련되어 있습니다.
아버지의 집에 있는 자리는
그곳에 가고 싶어 하는 사람들 수만큼 많습니다.
문제는 정말 그렇다는 사실을 우리가 깊이 믿지 못하는데 있습니다.
우리는 자주 전적으로 하느님을 신뢰하지 못합니다.
우리에 대한 그분의 사랑을 의심하고,
하느님의 의향이 딴 곳에 있을까 두려워합니다.
이 왜곡된 두려움이 죄의 근원(뿌리, 원죄)이며
하느님과 멀어지게 하는 원인입니다.
이런 우리를 위해 하느님은 당신의 아드님을 보내시어 사람이 되게 하셨습니다.
이는 아들 예수님 안에서 아버지 하느님의 얼굴이 어떠한지,
우리가 그분에게 어떤 존재인지, 우리를 어떻게 사랑하시는지 구체적으로 볼 수 있게 하기 위함입니다.
예수께서 그래서 필립보에게
“아버지를 본 것이 곧 나를 본 것”(9)이라고 하십니다.
예수님의 삶, 말씀, 죽음과 부활에서 우리는 하느님의 얼굴을 봅니다. 하느님의 사랑을 봅니다.
거듭 되풀이 해서 말씀드리지만 하느님께서 얼마나 우리를 사랑하시는지 우리가 알 수 있도록 우리를 용서하시면서 십자가에 못 박히시기까지 하십니다.
그런분이시기에 “하느님을 믿고 또 나를 믿어라.”(1) 하십니다.
그렇다면 하느님과 우리를 분리시키는 죄의 근원인 하느님께 대한 두려움에서 해방되기 위해 우리가 무엇을 해야 합니까?
길이요 진리이며 생명이신 예수를 믿는 것을 베우는 것입니다.
예수께서는 길이십니다.
아버지의 사랑 받는 자녀로서 사는 법을, 그래서 서로 사랑하려 애쓰는 형제로서 사는 법을 가르쳐주신다는 뜻입니다.
그분을 바라보며 들으며 그분의 뒤를 따름으로써 하느님의 진리와 우리에 대한 진리, 곧 하느님은 사랑이시고 우리는 그분의 사랑 받는 자녀라는 진리를 발견하게 됩니다.
(이것이 우리가 날마다 기도를 먹어야 하는 이유이지요.
이 기도란 말씀을 근간으로 하는 기도를 말합니다. 기도는 의무가 아니라 필요입니다.)
이 진리가 내 마음 속에, 우리의 관계 속에 자리 잡도록 우리에게 생명을 참 생명을 주시는 분이 예수님이십니다.
참생명, 우리 마음을 쉬게 하고 모든 것을 아름답게 만드는 생명입니다.
예수님을 믿고 그분을 따라 진리의 길,
생명의 길을 걸으면 그분께서 하신 일보다 더 큰일을 하게(12) 해주신다는 약속까지 하셨습니다.
"나를 믿는 사람은 내가 하는 일을 할 뿐만 아니라,
그보다 더 큰 일도 하게 될 것이다."(12)
"너희가 내 이름으로 청하면 내가 다 이루어 주겠다.”(14) 하십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