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활 제2주일(하느님의 자비 주일)
✠ 요한복음 20,19-31
✠ 요한복음 20,19-31
"성령을 받아라"(22)
오늘은 부활 제 2주일 하느님 자비 주일입니다.
자비주일 유래에 관해서는 끝에 말씀드리기로 하고 먼저 복음으로 가보겠습니다. 오늘 복음에는 두 번에 걸쳐 예수님의 발현 얘기가 나옵니다.
한 번은 부활절 당일(안식일 다음날) 저녁이고 두 번째는 꼭 1주일이 지난 뒤에 나타나십니다.
그래서 얼마 지나지 않아 그리스도인들은 안식일(토요일) 다음 날을 '주님의 날' 곧 <주일>이라 부르기 시작합니다. 이 주님의 날에 모여 하느님의 말씀을 듣고, 성찬식을 거행했습니다.
오늘 복음에 나오는 첫번째 발현 이야기에서 예수님께서 당신 부활로써 얻은 권능을 제자들에게 전해 주시는 장면을 우리에게 묘사하고 있습니다.
두번째 발현이야기는 오늘은 접어두고 첫번째 이야기에 머물러 묵상해봅니다.
"예수님께서.... 숨을 불어넣으며 말씀하셨다. '성령을 받아라. 너희가 누구의 죄든지 용서해 주면 그가 용서를 받을 것이고.....' "
성령의 체험은 초세기 교회에 있어 예수 부활을 확정적으로 믿게해 주는 근본적인 체험이었습니다.
성령께서 임하신 다음, 제자들의 공동체의 모습을 오늘 1독서 사도행전에서 이렇게 들려주고 있습니다.
"한마음 한뜻이 되어, 아무도 자기 소유를 자기 것이라 하지 않고 모든 것을 공동으로 소유하였다....."
어느 누구도 '내 자리' '내 것' ' 내 권리' '내 지위' '내 능력' '내 재주'하지 않는 공동체보다, 또 더 필요로 하는 이에게 선뜻 자리를 양보하는 이들의 공동체보다 더 성령의 현존을 드러낼 수는 없습니다.
한마음 한뜻이 되려면 자기를 버려야합니다. 용서와 이해로 이웃을 받아들여야 합니다. 사실 어느누구도 용서가 필요없을 만큼 완벽하지는 못합니다.
우리가 거저 용서받고 또 거저 용서하는 일은 성령께서 우리 안에서 이루시는 일입니다. 성령을 모시고 살때 가능한 삶입니다.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숨을 불어넣으며 말씀하십니다.
"성령을 받아라"(23)
용서가 어렵습니까?
하느님의 용서를 깊이 들이마셔야 겠습니다. 무한히 거듭 용서받고 사는 존재임을 인식하고 내안에서 용서를 이루시는 성령의 현존에 머무는 것입니다. 용서의 기적은 오늘도 일어납니다.
“성령을 받아라. 너희가 누구의 죄든지 용서해 주면 그가 용서를 받을 것이고, 그대로 두면 그대로 남아 있을 것이다.”(23)
오늘은 자비주일입니다.
자비라는 단어를 살펴 보겠습니다.
慈=무성할玆+마음心
많은 사랑을 뜻하는 단어
悲 =非+心 슬플 비
그러니까 자비란 자(慈) 사랑으로 기쁨을 주고 비(悲) 연민으로 고통을 덜어준다는 뜻을 가집니다.
그러니까 자비란 자(慈) 사랑으로 기쁨을 주고 비(悲) 연민으로 고통을 덜어준다는 뜻을 가집니다.
이 자비심의 근간에는 용서가 있습니다. 오늘 하루만이라도, 아니 이 한 주간 동안 용서를 살아보면 어떨까요?
자비주일은 이렇게 시작됩니다.
교황 요한 바오로 2세께서는 2000년 4월 30일 폴란드출신의 파우스티나 수녀을 하느님의 자비의 사도로 시성하시면서 부활절 다음주일을 하느님 자비주일로 정하고 하느님의 자비를 특별히 기념하고 묵상할것을 당부하심으로써 이 주일이 생겨났습니다.
파우스티나 수녀는 20세에 입회하여 33세의 젊은 나이로 생을 마감했는데 그녀는 하느님의 환시를 보는 특별한 은총을 받지만 눈에 드러나지않게 그것을 일기에 기록하였으며, 하느님께서 당신의 외아들 예수님을 우리에게 주시고 그분의 죽음과 부활로 우리를 구원해 주신 하느님의 그 풍성한 자비를 깊이 묵상하는 생활을 하였습니다.
그녀는 아이와 같은 순수한 마음으로 하느님의 자비에 우리자신을 온전히 맡길것을 당부하셨고 환시중에 본 예수님자비의 모습을 제작케 했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