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한국 사람인데.”
이영훈 신부
노동사목
free6403@daum.net
최근 특강 준비를 위해 자료를 찾던 중 짧은 영상(KBS스페셜 ‘십 년 후 동창생’)을 보게 되었습니다. 이주민 아이들의 이야기였습니다. 10살쯤 되는 아이들이 한국 사회에서 어떻게 살아가고 있으며, 성인이 된 10년 후에는 또 어떤 모습으로 살고 있는지 소개하는, 한편으로는 다행이지만 또 한편으로는 가슴 아프게 하는 영상이었습니다. 그중 청년이 된 ‘한 아이’의 원망 서린 말 한마디에 순간 제 마음이 무너졌습니다. “난 한국 사람인데 …. 한국에서 떠나라는 말이 ….”
부모 따라 한국에 온 이 청년은 부모의 거주 기간이 만료되자 15년 이상 살았던 한국을 떠나 고향(?)으로 돌아갈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 청년은 한순간 ‘미등록(불법) 이주민’이 되었기 때문입니다. 성인이 되었지만, 자기 의사와는 상관없이 한국에서 버림받은 것을 속상해하는 그를 가장 힘들게 했던 건 고향(?)의 너무나 다른 언어, 문화 특히 종교였습니다. 모국어를 읽지도 쓰지도 못하는 그가 할 수 있는 것은 노점상 보조일 뿐이었습니다. 그에게 모국어는 외국어였습니다.
잠시 그가 되어보았습니다. 한국에서의 첫 경험은 비교와 차별 그리고 단절된 꿈이었습니다. 친구가 생겼지만 ‘왜 우리와 달라.’라는 말을 들어야 했습니다. 수능뿐 아니라 어떠한 공인 시험에도 응시할 수 없다는 걸 알았을 때, ‘한국인’이 아니라는 걸 알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지금, 모든 것이 낯선 이곳에서도 ‘왜 우리와 달라.’라는 말을 또 들어야 합니다. 한국인이지만 한국인이 아닙니다. ○○○○ 나라 사람이 아니지만, 그 나라 사람이어야 합니다. 영원한 ‘이방인’입니다.
누군가는 정부의 비인도적인 정책을, 누군가는 부모의 판단이 무책임했다고 비판할 것입니다. 그럴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이러한 끝없고 소모적인 남 탓을 하는 동안 ‘또 한 명의 어린 이방인’이 그들의 삶을 부정당하고, 잊히고 있습니다. 보이지 않는 저편에서 아파하고 절망합니다. 법과 규정이라는 비정함과 우리 무관심 속에서 ….
우리는 ‘있지만 알지 못했던 이웃’을 오늘 다시 만났습니다. 이런 이들을 만날 때마다 막막해집니다. 그렇지만 우리 그리스도인은 안식일보다 한 생명을 구하는 것을 더 중요하게 생각하며(루카 6,9 참조), 그리고 한마리 양을 위해 아흔아홉마리를 남겨둔 채 찾아 나서는 사랑과 용기를 가진 이들입니다. 가장 작은 이 하나라도 잃는 것을 원치 않으시는 하느님(마태 18,12-14 참조)의 뜻을 알고 실천하는 이들입니다. 과연 하느님께서 우리에게 원하시는 것은 무엇일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