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들에게 보내는 편지
2008년 김태훈 마리오 신학생 아들에게 보낸 편지입니다.
김태훈 마리오 학사에게
마리오
동양란이 아파트 베란다에서 바람과 이야기합니다.
가을이 왔는데 봄 이라고…….
마리오
바로 어제 일인 듯 생생합니다. “전하 성당 김태훈 마리오!” “예, 여기 있습니다.” 2005년 2월 27일 오전 10시 부산 가톨릭대학 성당 제대 앞에 길게 서 있는. 신학생들을 위하여 하느님께 간절히 기도하시는 황철수 바오로 보좌주교님이 기도하셨습니다. “주님, 자비를 베푸소서. / 그리스도님, 자비를 베푸소서. / 성모 마리아님, 저희를 위하여 빌어주소서. / 성 바오로…….” - 성인 호칭 기도 중에서
아빠, 엄마는 30초반에 영세를 받은 후 20년을 훌쩍 넘겼지만 한 번도 눈물을 흘리며 애절하게 기도해본 적이 없었는데 그날, 부제, 재학생들의 기도 노래가 얼마나 애간장을 녹였는지, 그분 속으로 깊숙이 더 깊숙이 빠져 들어가 신학생들을 향한 그분의 자비를 속울음으로 애원하였습니다.
아들이 주교님께 안수를 받는 순간 ‘네 아들은 육적으로는 네 아들이지만 이젠 지구촌 12억 가톨릭 신자의 아들이며 교회의 아들이다.’ 라는 주님의 말씀이 번개처럼 스쳤습니다.
그 순간 제 아들은 죽어버리고 ‘신학생 김태훈 마리오’로 다시 태어났다는 생각이 들자 제 머릿속은 ‘혼돈’ 바로 그 자체였습니다.
방학 때면 집에 오는 아들을 보면 학년이 높아질수록 말과 자세와 눈빛이 달라져 가는 모습에 아들에 대한 신뢰가 쌓여 갔지만 한편으로는 제 마음은 점점 불안과 초조와 헷갈림의 시간 들이 엄습해왔음을 고백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본당에서 처신의 어려움, 성가정을 이루지 못한 아쉬움, 열성으로 다하지 못한 기도와 영성 생활, 본당 사목활동 등 나를 움츠리게 하는 주위 신자들의 눈과 말들…….
방학 때 조간신문과 함께 배달되는 아들, 지나친 음주, 흡연, 혹시나 마음에 두는 여자 친구는 없는지, 언제 보따리 싸들고 신학교 팽개치고 아파트 초인종을 누르지는 않을지, 정말로 부르심을 받았는지…….
하지만 신학생들은 무질서 같지만 질서 있는 삶을 살고 있음을 굳게 믿고 있으며 인간의 눈으로 그들을 보지 말고 그분의 눈으로 그들을 보아야 한다는 신념을 갖고 있습니다.
마리오
독서직 받기 전 2학년, 3학년 방학 때마다 말했던 “부모, 친척, 주위 신자들, 열심히 기도해주시는 수녀님들이 있으니 ”열심히 살아가라고“ 마음속으로 애기 할 때 “네” 하고 빙그레 웃던 아들. 그 말이 부모의 사랑이었는지 아들에 대한 협박이었는지…….?
마리오
“신학교 4학년 여름방학 후 ‘2박 3일 영신 수련’ 대 침묵 피정이 있다지요. 모든 것을 있는 그대로 놔둔 채 오로지 하느님께만 머무르는 시간을 가졌으면 희망합니다.
아빠, 엄마는 마구간에서 배냇짓을 하던 갓난아기 예수님, 세상 모든 것에 궁금해 하던 어린아이 예수님, 하느님을 만나기 위해 ‘몸과 마음과 정신’을 다하던 청년 예수님, 당신을 어디에 쓸 것인지를 알고 온몸으로 거부하던 예수님, 아버지의 뜻을 알고 그분께 의탁하며 십자가의 길을 걸어가던 예수님, 그리고 십자가의 길인 부활의 길에 서 계셨던 그리스도이신 주님을 만나 뵐 수 있을 겁니다. 이번 학기가 끝나면 신학생 삶이 아니라 부제가 되는 길을 준비하십시오.
‘진심으로 회피하고 싶었던 아버지의 뜻을 이제는 온전히 받아들이는 하느님’를 만나시기 바랍니다.”
마리오
지금은 신학교 생활이 힘들겠지만 아빠, 엄마에게 긴 침묵을 깨고 대답해준 것 같았습니다.
‘사제는 살아있는 순교자’라고 평소에 생각해왔는데 어느덧 순교의 길을 뚜벅뚜벅 걸어가고 있는 아들을 보며 예수님의 삶이 아빠. 엄마 피부에 깊숙이 꽂혀버렸습니다.
별들이 낮게 깔린 캄캄한 밤, 한 줄기 빛이 아빠. 엄마 마음속에 꽈리를 틀었고 평화를 위한 ‘성령의 불씨’가 지펴졌습니다.
마리오
부제품 이후 엄마는 추울 때 수단 위에 입을 ‘카디건’, 검은 털스웨터 뜨개질에 여념이 없습니다. 한 올 한 올 뜰 때마다 소리 없는 묵주기도를 바친답니다.
‘성모님의 흔적’을 그 털실 곳곳에 녹진하게 배어 있기를 기원하면서...?
2008년 8월 28일
이빠 김연수 요셉/엄마 박맹자 베로니카 드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