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달의 훈화
연중 제2주간 - 연중 제6주간

김경민 판크라시오 신부

김경민 판크라시오 신부는 2011년 사제 서품을 받고, 교황청립 성 안셀모대학교 전례학 대학원에서 수학했으며, 현재 제주교구 서귀복자본당 주임 신부로 재직 중이다.


연중 제2주간(1월 15-21일)
그리스도 안에서 한마음 한 몸이 되도록

바오로 사도는 코린토 교우들에게 보낸 편지에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여러분은 그리스도의 몸이고 한 사람 한 사람이 그 지체입니다”(1코린 12,27). 성령께서 각 사람에게 베푸시는 다양한 은사가 교회를 튼튼히 건설하는 데 쓰이지 않고 도리어 갈등과 분열의 요인이 되어버리자, 그리스도 안에서 이루는 바람직한 일치를 사람 몸에 빗대어 설명한 것입니다.
실제로 교회 생활을 하면서 온갖 종류의 불화를 겪을 수 있는데, 그럴 때마다 우리는 자기의 옳음을 증명하여 상대를 제압하려 하기보다, 내 몸의 일부가 나를 아프게 할 때 어떻게 하는지를 생각해야 합니다. 우리는 고통을 유발하는 부분을 탓하거나 무시하지 않고, 그 부분이 없어지기를 바라지도 않습니다. 우리는 신체의 각 부분이 온전히 제 기능을 되찾아 몸 전체에 골고루 활기가 돌기를 바랍니다. 동시에 그렇게 되기 위한 수고를 마다하지 않습니다.
어떤 사람으로 인해 공동체의 질서와 평화가 흐트러질 때도 이와 같은 태도가 필요합니다. 이것은 단지 성경 속 권고에 그치지 않고 미사 때마다 우리가 함께 드리는 기도의 주제이기도 합니다. 감사 기도 제3양식은 이 정신을 아주 잘 드러내 줍니다. “성자의 몸과 피를 받아 모시는 저희가 성령으로 충만하여 그리스도 안에서 한마음 한 몸이 되게 하소서.” 이 기도를 통해 우리는 미사의 가장 거룩한 순간, 빵과 포도주가 사제의 입에서 나오는 그리스도의 말씀으로 성체와 성혈이 된 다음에, 그리스도의 몸과 피가 과연 무엇을 위하여 존재하는지를 배우는 것입니다.
성혈은 우리를 그리스도 안에서 한마음 한 몸이 되게 해 줍니다. 다른 무엇도 아닌 이 거룩한 빵과 포도주를 통해 우리는 서로를 그리스도의 지체로 알아봅니다. 참으로 ‘그리스도의 몸인 성체’는 ‘그리스도의 몸인 교회’를 이루는 바탕입니다.
그러므로 성체를 받아 모시러 제단에 나아갈 때마다 우리를 그리스도 안에서 한 몸이 되게 하시는 성령의 현존과 나와 다른 모습으로 그리스도의 지체를 이루는 교우들을 생각합시다.


연중 제3주간(1월 22-28일)
복음의 인호

레지오 마리애 단원들은 까떼나를 바칠 때, “내 영혼이 주님을 찬송하며”에서 십자성호를 긋습니다. 보통 가톨릭 신자들은 십자성호로 기도를 열고 닫지, 기도문을 바치는 중에는 성호를 긋는 일이 없는데 어떻게 된 걸까요? 답은 까떼나에 들어있는 ‘마리아의 노래’가 나온 출처에 있습니다.
마리아의 노래는 성모님이 가브리엘 천사의 알림을 받은 후 사촌 엘리사벳을 방문했을 때 부른 찬미의 노래입니다. 라틴어 첫 글자를 따서 마니피캇(Magnificat)으로 불리며, 아주 오래전부터 교회의 전례와 신자들의 신심 안에서 사랑받아 온 이 찬미가는 루카 복음 1장 46-55절에 수록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이렇게 예수님 생애의 신비를 고스란히 담고 있는 복음에서 나온 찬가를 바칠 때는 복음에 대한 존경의 표현으로 첫 구절을 낭송하면서 십자성호를 긋는 것입니다.
복음에서 나온 또 다른 찬가인 ‘즈카르야의 노래’(루카 1,68-79)나 ‘시므온의 노래’(루카 2,29-32)를 바칠 때 십자성호를 긋는 것도 같은 이유입니다. 무엇보다 미사 안에서 복음이 선포될 때 “주님, 영광받으소서.”하며 이마와 입술과 가슴에 작은 십자성호를 긋는 익숙한 행동이 십자성호로 복음에 존경을 표하는 방식을 잘 드러내 줍니다.
여기서 우리는 십자가와 복음이 하나로 포개지는 모습을 봅니다. 십자가는 지울 수 없는 ‘복음의 인호’와 같고, 복음은 그 전체가 십자가의 그늘 아래 있습니다. 그리스도인은 우리가 받고, 또 우리가 전하는 기쁜 소식이 곧 십자가에 달린 그리스도라는 것을 믿는 사람입니다. 우리는 복음을 듣기만 하는 것이 아니라 선포하고, 십자가를 바라보기만 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 몸에 십자 표시를 하며 자기 십자가를 짊어집니다. 레지오의 까떼나를 바치며 십자성호를 그을 때마다 복음과 십자가의 이 신비로운 일치를 기억하고, 우리가 주님의 십자가로 새 생명을 얻은 사람임을 되새깁시다.


연중 제4주간(1월 29일-2월4일)
그리스도인이라는 이름표

어느 늦은 저녁, 외부 교육을 마치고 본당 사제관으로 돌아가는 길이었습니다. 가로수에 가려져 가로등 불빛이 미처 다 비추지 못하는 길가 저 멀리서 한 무리의 사람들이 모여 떠드는 모습이 보였습니다. 그러더니 가게 문 옆 낮은 담벼락에 무언가를 놓은 다음 이쪽으로 걸어오는 것이었습니다. 지나치면서 보니 인근 중학교 교복을 입은 남녀 학생들이었습니다. 조금 더 가서 그 아이들이 놓고 간 것을 보니 음료수 캔 등 자기들이 먹고 버린 쓰레기였습니다. 저도 모르게 낮은 한숨이 나왔습니다. 중학생이란 존재가 사람의 머리로는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외계인처럼 느껴졌습니다.
어느 대낮에 길을 건너려고 신호등이 바뀌기를 기다리고 있는데, 건너가려는 횡단보도에 차량의 사이드미러 한쪽이 떨어져 있는 것이 보였습니다. ‘저거 차바퀴에 튕겨 날리면 위험하겠는데.’ 하는 생각이 든 찰나, 신호등이 파란 불로 바뀌었습니다. 그때 길 맞은편에서 건너오던 어느 중학생이 아무렇지도 않게 떨어진 사이드미러를 주워 반대편 길가 가로수 곁에 안전하게 놓아두고 자기 길을 가는 것이었습니다. 저의 시선은 줄곧 그 행동을 좇았고, 그 학생의 뒷모습이 다 사라질 때까지 지켜보았습니다. 저도 모르게 얼굴에 미소가 떠올랐습니다. 중학생이란 존재가 사람의 가슴으로는 다 담을 수 없는 신비로 다가왔습니다.
중학생에 대한 상반된 이 경험은 사람의 행동 하나가 그가 속한 세계의 이름에 어떤 영향을 주는지 되돌아보게 합니다. 세례받은 신자는 그리스도인이라는 이름을 받아 교회에 속하게 됩니다. 그리고 우리의 크고 작은 행동은 믿는 이와 믿지 않는 이 모두에게 한숨이 될 수도, 신비가 될 수도 있습니다.
세례받을 때 끊어버리기로 약속한 악습을 과감히 던져버리고, 믿기로 다짐한 신앙의 덕목을 생활로 드러낼 수 있다면, 우리 영혼에 새겨진 그리스도인이라는 이름표가 아무리 작아도 온 세상을 비출 만큼 환히 빛날 것입니다.


연중 제5주간(2월 5-11일)
우리 인사에도 찬미의 마음 담겨 있기를

가브리엘 천사를 통해 예수님 잉태 소식을 들은 마리아가 엘리사벳을 찾아갔을 당시의 모습을 떠올려봅시다. 엘리사벳은 하느님께서 하신 일을 두고 놀라워하며 마리아에게 이렇게 인사했습니다. “행복하십니다, 주님께서 하신 말씀이 이루어지리라고 믿으신 분!” 살 만큼 살아 인생에 더 이상 새로울 게 없어 보이는 한 여인이 예기치 못한 임신으로 이제 막 어른의 세계에 들어가려는 다른 여인을 이렇게 격려했습니다. 아이 없이 한평생을 살다가, 남들 보기 부끄러운 정도가 아니라 아예 임신 자체가 불가능한 나이에 늦둥이를 가진 여인이 뜻밖에 예비 엄마가 된 여인을 이렇게 맞아 주었습니다.
이 인사말에는 삶의 회한도 없고, 한참 아랫사람에게 베푸는 훈수도 없습니다. “나 때는 말이야”로 시작하는 자기 자랑은 찾아볼 수도 없고, 대신 아직 결혼도 하지 못한, 세상살이 아무것도 모르는 처녀에게 찬미의 환호가 건네집니다. 주님과 그분의 은총을 몸에 간직한 두 여인의 인사는 이렇듯 진솔하고 소박한 멋이 있습니다. 거기에 예의를 가장한 거짓 겸손은 그림자도 찾아볼 수 없습니다.
이 두 여인은 자신들의 처지를 돌보아 주시는 하느님을 향한 마음으로 하나가 되었습니다. “도무지 사람의 머리로는 다 이해할 수 없고, 사람의 가슴으로는 다 품을 수 없는 하느님의 뜻을 믿음으로 받아들이고, 그것을 따라 사는 삶이야말로 행복한 삶이지, 아무렴!” 그들이 맞잡은 두 손을 대신하여 그들의 영혼이 서로 맞부딪쳐 소리를 내는 장면이 저절로 그려집니다.
이들의 인사처럼 우리의 인사에도 하느님과 그분께서 하신 일을 찬미하는 마음이 담겨 있기를 바랍니다. 우리가 “찬미 예수님!”하고 건네는 인사에도 우리 삶의 행복과 의미가 예수님을 통한 하느님의 구원에 있음을 찬미하는 목소리가 함께 울리기를 바랍니다.


연중 제6주간(2월 12-18일)
주님의 일꾼으로 일하는 나만의 방식

성 요한 바오로 2세 교황님이 사목 방문차 독일 뮌헨에 계실 때였습니다. 교황님의 일정은 평소에도 빠듯하지만, 다른 나라에 사목 방문을 하실 때는 더더욱 시간을 아껴가며 써야 했습니다. 더군다나 요한 바오로 2세 교황님은 평소에도 아침 일찍부터 저녁 늦게까지 쉬지 않고 열정적으로 일하시는 것으로 유명했습니다. 잠도 하루에 서너 시간 정도만 주무셨다지요. 이렇듯 바쁜 일과로 교황님의 건강이 나빠질 것을 우려한 당시 신앙교리성 장관 추기경은 독일 사목 방문 때만이라도 교황님이 낮에 휴식을 취하시도록 일정을 조정했습니다.
마침 뮌헨 주교관에는 휴식을 취하기에 편한 방이 있었습니다. 그곳에서 휴식을 취하기로 하셨던 교황님은 아주 짧은 시간 동안 거기 계시다가 아래층에 있던 추기경을 빨리 위로 올라오라고 부르셨습니다. 한걸음에 달려간 추기경이 “교황님, 이제 조금 쉬셔야 합니다!” 하고 말했더니 교황님은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나는 영원한 나라에서만 푹 쉴 수 있습니다.”
그때 그 추기경은 성 요한 바오로 2세의 뒤를 이어 베네딕토 16세라는 이름의 교황님이 되셨습니다. 베네딕토 16세 교황님도 재위 기간 중 교황직에 당연히 따르는 고된 일과를 소화해 내시면서 ‘나자렛 예수’라는 대작을 집필하셨을 정도로 일에 몰두하셨습니다. 그러나 그 방식은 이전 교황님과 달랐습니다. 베네딕토 16세 교황님은 잠이 많이 필요한 분이셨고, 하루 일곱 시간 내지 여덟 시간은 꼭 주무셨습니다. 대신 자신이 어디에서 힘을 뺏기고 어디에서 힘을 얻는지 분명히 알아 그에 맞게 업무와 만남을 조절하셨습니다.
요한 바오로 2세 성인 교황님의 위대한 업적과 지칠 줄 모르는 열정을 오랫동안 지켜보았고, 몸소 후임자의 자리에 오른 입장임에도 베네딕토 16세 교황님은 흔들림 없이 주님 안에서 자신의 자리와 상황을 분명하게 인식하셨습니다. 그리고 주님의 포도밭에서 일하는 또 다른 충실한 일꾼의 면모를 훌륭히 보여 주셨습니다. 우리도 그 본을 따라 소명을 이루어내는 나만의 방식을 간직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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