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수 2737호 2022. 12. 25 
글쓴이 박선정 헬레나 
기적을 만들기에 딱 좋은 크리스마스

 
 
박선정 헬레나 / 남천성당, 인문학당 달리 소장
whitenoise99@hanmail.net

 
   작은 촌동네에서 조부모와 살던 내게 성탄은 크리스마스 트리도 아니고 선물도 아니고 아기 예수님도 아니었다. 그 시대에 어떻게 그 멀리까지 연결이 되었는지 몰라도, 당시 나는 ‘홀트 아동복지회’를 통해 캐나다의 한 부부로부터 매달 일정액의 도움을 받았다. 그러나 정작 내가 그분들의 존재를 느끼고 눈으로 확인할 수 있었던 것은 성탄 때였다. 부부는 어김없이 내게 성탄카드를 보내왔던 것이다. 어딘지도 모르는 먼 나라에서 배달되어 온 읽을 수도 없는 낯선 글자가 적힌 종이 한 장이 어린 나에게는 성탄이었다. 
 
   그것은 꼬부랑 글씨가 적힌 그냥 종이가 아니었다. 내가 읽고 쓰는 언어 이외의 언어가 있음을 알게 해 주고, 내가 사는 동네 너머에도 크고 따뜻한 세상이 있음을 보여 주고, 당장 여기 내 눈에 보이지는 않지만 분명히 존재하는 존재자들이 거기-있음을 깨닫게 해 주기에 충분한 어떤 것이었다. 나아가, 내가 알고 있다고 자부했던 모든 것들이 얼마나 작은 세상인지, 그 작은 세상 때문에 좌절하고 모든 것을 단정 짓는 것이 얼마나 어리석은지도 깨닫게 해 주었다. 그러니, 그분들이야말로 내 삶의 진정한 성탄 소식이었고, 가장 가난하고 버림받은 곳에 오신 아기 예수님의 뜻을 제대로 전달한 성인(산타)이었던 셈이다. 
 
   그분들은 캐나다 부부라는 이름으로 변장한 성모님이었을지도 모른다. 하느님과 예수님과 성모님은 늘 그렇게 변장을 하고 우리에게 오시는 건지도 모른다. 그러니, 이제는 우리 스스로가 아기 예수님의 분신들을 보살펴주시기를 기대하고 계실 게다.
 
   성탄이다. 그분은 가장 낮은 데서 태어나심으로써 이미 우리에게 충분히 메세지를 전달하셨다. 나보다 가난하고 힘든 이가 모두 아기 예수라고 말이다. 예수님을 높은 데서 찾지 말고 낮은 데서 찾아 몸과 마음으로 찾아가 경배하라고 말이다.
 
   오늘은 아기 예수님을 찾아봐야겠다. 평생 아기 예수님의 곁을 지키는 성모님은 못 되어도 내가 동방박사로 변신하는 기적은 만들어봐야지 않겠나. 늘 내게 기적이 오기를 기도하면서도 정작 내가 기적을 만들 생각은 못한 나를 반성하면서 말이다. 다행히, 하느님께서는 게으른 우리를 위해 과학 기술의 놀라운 발달과 함께 편지 한 통, 계좌이체 한 건으로도 충분한 기적이 일어나도록 만들어 놓으셨다. 성탄인 오늘은 낮은 곳의 누군가에게 작은 기적을 만들어야겠다. 구유에 누운 채 따뜻한 손길을 기다리는 아기 예수님의 손을 더이상 못 본 체하지 말아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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