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중 제10주간 레지오 마리애 훈화
주님이 아버지 하느님에게 가신 후, 당신 사업을 계승할 제자들을 위해 성령을 보내주셨습니다. 거센 바람 소리와 불꽃 모양의 혀의 형상으로 제자들에게 오신 성령은 새로운 바람을 일으켜 실의와 절망에 빠져 있던 그들에게 희망을 심어주었습니다. 삶의 의욕을 잃고 죽음처럼 보였던 그들의 삶이 새로운 생명으로 활기차게 변하여, 주님 부활의 증인으로 당당하게 이 세상을 사셨던 것입니다.
삼국지 적벽대전의 관전 포인트는 바람입니다. 때맞춰 불어온 동남풍이 제갈공명에겐 디딤돌이 됐고 조조에겐 치명타가 됐습니다. 상업 중심의 중상주의라는 광풍이 유럽을 휩쓸던 때에 새로운 항로가 개척됩니다. 이 바닷길이 중간중간 막혔던 육지의 비단길을 대신하게 됩니다. 당시 중국을 다녀오면 많은 이득이 남는다는 생각에 유럽 각국은 앞다퉈 무역선을 띄웁니다. 중국의 3가지 보물인 비단 도자기 차를 가득 싣고 광저우에서 출발할 때, 유럽 상선은 해상에서 부는 바람의 도움을 받으며 돌아갔습니다. 해마다 반복되는 이 바람을 무역풍(貿易風)이라 부르는데, 이 무역풍이 바로 무역선에 뒤바람이 되었던 것입니다.
우리 신앙인도 삶의 길이 막히고 뒤틀려 힘들 때가 있습니다. 이러한 역경에서 신앙인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세상의 바람이 아닌 성령의 새바람입니다. 마치 이집트를 탈출한 이스라엘 백성이, 홍해에 가로막혀 오도 가지도 못하고 있을 때, 하느님은 큰 동풍을 보내시어 바닷물을 가르시고 새길을 열어 주셨듯이, 성령의 새로운 바람만이 막힌 곳을 뚫고 부서진 곳을 보수하며, 상황을 초월하고 새길을 열어 줍니다. 인간에게는 불가능할지 모르지만, 하느님께는 모든 것이 가능하기 때문입니다. 이제 주님의 말씀을 살아가며 주님의 증인으로 이 세상을 살아가야 하는 연중 시기를 시작하며 우리도 시편의 저자와 함께 기도합시다. “주님, 당신 숨을 보내시어 온 누리의 얼굴을 새롭게 하소서.”(시 104.30)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