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 누리의 임금이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왕 대축일
✠ 루카복음 23,35ㄴ-43
오늘은 그리스도왕 대축일입니다.
오늘 복음에서 그리고 있는 왕의 모습은 세상적 사고방식으로는 도저히 왕이라 부를수 없는 초라하고 처첨하게 죽어가는 죄인의 모습입니다.
곤룡포를 입고 왕관을 쓰고 어좌에 앉아 있다면 왕을 당연히 즉시 알아볼 수 있을 텐데 이런 모습으로야 어찌 알아보겠습니까?
복음은 왕이신 예수님의 모습을 왜 이렇게 그리고 있을까요?
예수님께서도 당신의 왕국은 이 세상에 속하지 않는다고 말씀하셨습니다.(요한 18,36) 뿐만 아니라 당신 자신도, 당신을 따르는 제자들도 이 세상에 속하지 않는다고 말씀하십니다.(요한 17,14)
하느님 나라는 이 세상의 잣대로는 알아볼 수 없고 다른 눈, 다른 사고방식이 필요합니다. 오늘 복음에서 우리는 이 다른 눈, 다른 사고방식을 찾아볼 수 있을 것입니다.
예수님을 못박았던 사람들은 세상적 사고방식으로 예수님이 움직여주시길 요구합니다.
"다른 이를 구원하였으니, 정말 하느님의 메시아, 선택된 이라면 자신도 구원해 보라지."(35)
예수님께서 어떻게 행동하시는지 살펴봅시다. 오늘 복음 단락 바로 앞구절입니다.
"아버지, 저들을 용서해 주십시오. 저들이 무슨 일을 하는지 모릅니다."(34)
당신을 못박는 이들을 향해 하신 말씀입니다. 루카 복음사가는 예수님의 왕직 수행방식은 바로 모두를 용서하는 것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이 용서를 받아들이는 이는 누구나, 어떠한 처지에 있더라도 하느님의 나라, 새 왕국에 들어갈 수 있다고 선포하십니다.
그 구체적인 예로 회개한 강도를 아무런 조건없이 받아들이시고, 당신을 죽이는 이들을 위해 용서를 구하는 기도를 드리시는 예수님의 모습을 우리에게 그려주고 있습니다.
처참하게 돌아가시는 예수님의 모습을 보면서 예수님이 왕이심을 알아본 강도는 사실 하느님 나라에 들어갈 자격이 있다고 말할 수 있지요.
그가 바라본 것은 세상의 여느 임금들처럼 백성 위에 군림하는 모습이 아니라 죽기까지 섬기고, 죽음에 이르게 하는 이들을 용서하시는 예수님의 모습에서 기적보다 더 위대한 사랑의 힘을 본 것입니다.
인간으로서는 불가능한 사랑을 목격하고서 예수님께서 하늘에서 오신 참 메시아이심을 깨달은 것입니다. 하느님 나라는 이 사랑을 깨달은 자, 그 사랑을 입은 자가 차지할 수 밖에 없습니다.
사랑만이 우리를 변화시키고, 사랑만이 우리를 화해시키며, 사랑만이 온전히 하느님께 속한 자가 되게 하기 때문입니다.
하느님과의 화해, 일치는 하느님의 무조건적인 용서를 거저 감사하는 마음으로 받아들임에서 시작되고, 우리 사이의 일치는 서로 용서함으로써 시작됩니다. 이 용서는 하느님께로부터 먼저 거저 받았으므로 가능한 것이지요.
예수님의 다스리심은 목숨을 내어놓는 섬김이며 용서입니다. 예수님의 다스리심 안에 속한 백성들도 그 왕을 닮아야 하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날마다, 적어도 주일마다 받아 모시는 성체로 인해 우리 안에는 예수님의 생명(사랑)이 흐르고 점차 그분 닮은 자로 변하게 해줄 것입니다. 믿음으로 깨어 받아 모신다면 말입니다.
내가 영하는 성체는 이런 사랑, 이런 용서임을 잊지 않고 깨어 받아 모실 수 있는 은혜를 간구합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