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중 제32주일(평신도 주일)
✠ 루카복음 20,27-38
✠ 루카복음 20,27-38
오늘 독서들의 주제는 "부활"입니다.
이스라엘에서 부활신앙이 뚜렷이 형성된 것은 아주 늦습니다. 이 신앙은 영혼 불멸에 대한 철학적 유추에서가 아니라 하느님 권능과 그분의 약속에 대한 체험에서 기인합니다.
하느님의 사랑은 영원하며, 죽음도 그 사랑을 없앨 수 없고 오히려 죽음을 이겨야 했고 우리에 대한 당신의 충실함을 유지하기 위해서 우리도 부활시키셔야 했습니다.
이러한 계시는 예언자들을 통해 점차 깊어졌고 지혜서(3-5장)와 오늘 1독서 마카베오 2서 7장에서 보다 잘 묘사됩니다.
그리스도교 신앙은 예수부활에 대한 신앙에서 출발됩니다. 부활은 그리스도인의 삶의 움직이는 원천이며 목표입니다. 그래서 바오로사도는 말합니다.
"그리스도께서 살아나지 않으셨다면 우리가 전한 것도 헛된 것이요 여러분의 믿음도 헛됩니다."(코린토1서 15,14)
이 부활신앙에서 우리는 신앙의 기쁨을 얻고 우리역시 십자가에 이르기까지 그분을 따를 힘을 얻습니다.
오늘 복음에 나오는 사두가이들은 그 당시 실세(實勢)들과 결탁하여 현세의 안락함을 누리던 이들로 부활을 부정했던 인물들입니다. 그래서 그들은 부활에 대한 희망을 조롱하듯이 질문을 던집니다.
이에 예수님께서는 이 지상의 삶과는 다른, 결혼할 필요도, 새로운 세대를 이어갈 필요도 없는, 새로운 형태의 삶이라고 답하십니다. 부활한 이들은 단순히 이 지상의 생명을 연장하는 것이 아니라 천사들처럼 불멸의 삶을 살게 된다고 말씀하십니다.
그렇다면 이 불멸의 삶은 어떻게 얻을 수 있는 것일까요? 세례만 받으면, 주일만 지키면 얻어지는 것일까요? 세례를 통해 하느님의 자녀로 태어나는 것만으로 충분하지 않습니다.
매일의 삶 속에서 성령의 인도를 받으면서 하느님의 유일한 아드님 예수그리스도와 일치하는 삶을 살아감으로써 진정한 하느님의 자녀로 자라나야 합니다.
여기, 이 자리에서 옛것, 낡은 세상적인 것들을 벗어나 변형되어 가지 않으면, 끊임없이 새로운 삶으로 나아가지 않으면, 오늘 죽고 부활하는 삶을 살아가지 않으면 하느님의 신적인 새 형태의 삶에 들어갈 수 없습니다.
그런 까닭에 부활은 다만 죽음 다음의 이야기가 아니라 오늘 신앙을 살아가는 이야기입니다. 그래서 오늘 부활신앙을 묵상하면서 자신에게 묻게됩니다.
"나는 오늘, 부활을 어떻게 살아가는가? "부활이 나의 삶에 무슨 영향을 끼치는가?" "과연 나의 삶을 움직이는 원동력이며 내 삶의 목표인가?"
그리스도인은 죽어야 산다는 것을 믿는 이들입니다. 그리고 하느님은 산 이들의 하느님이십니다.(38)
날마다 자기 삶의 자리에서 죽을 줄 알때, 비로소 부활은 이 세상을 떠날 때에만 확인되는 신앙이 아니라 매일의 삶 속에서 체험되고 확인되는 하느님의 생명임을 알아듣게 되고 하느님의 생명으로 살아가게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