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중 제26주일
✠ 루카복음 16,19-31
오늘 복음은 12장 16-21절에 나오는 어리석은 부자의 얘기를 연상시킵니다.
그리고 지난 주일 복음(연중25주일, 루카 16장 1-8절)의 집사에 관한 내용과도 연결하여 생각해봄직 합니다.
오늘의 말씀은 무조건 부자를 단죄하고 가난한 이들을 들어 올리는 내용이 아니라, 눈을 열어 불의한 재물을 올바르게 사용하라(12,9)는 충고(질책을 담은)입니다.
그러니까 어리석은 부자가 슬기로운 집사로 회개하라는 권고인 셈입니다.
이 지상에서의 삶은 지옥의 심연과 아브라함의 품을 연결해주는 다리라고 할 수 있습니다.
생애라는 이 다리가 무너져버리기 전에 도움이 필요한 이웃에게 자비를 베풂으로써 건너가야 합니다.
다리가 무너진 후에는 아무리 애원을 해도 돌이킬 수 없습니다.(24-26절)
오늘, 모세나 예언자의 말(성경말씀)을 듣고 회개해야 합니다.
오랜 주석에 따르면 오늘 본문은 현실적인 얘기(23절까지)와 비유이야기 반반 섞여 있다고 보았습니다.
오늘날에도 이렇게 이웃의 아픔에 무감각하게 사는 부자들이 얼마나 많은지요!
하지만 오늘 예수님께서는 단죄하고 계시는 것이 아니라 부자들을 향해 사랑의 질책을 하고 계십니다.
왜냐하면 예수님은 단죄하러 오신 것이 아니라 구원하시려 오셨기 때문입니다.(요한 3,17)
가난한 이를 업신여기고 새 법에 따라 행하지 않으면 벌을 받을 것이라고 경고하고 계십니다.
"자비를 베풀지 않는 사람은 무자비하게 심판받을 것입니다. 자비는 심판을 이깁니다."(야고보 2, 13)
한비야씨는 그의 책<지도 밖으로 행군하라>에서 이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단지 먹을 것이 없어서 죽는 사람이 7초에 한 명, 60억 세계 인구 중 30억이 먹을 것을 걱정해야 한다.
'사람의 목숨도 환율처럼 1달러 대 1천원, 1달러 대 3만 리라 하듯 그 값이 각각 다른 걸까?
미국이나 유럽에서는 13명만 죽는다고 해도 전세계가 들썩거리지만 남부 아프리카에서는 천문학적 숫자가 아사 직전인데도 세계 언론은 눈도 깜빡하지 않는다.' ...
'뭐가 제일 필요하세요?' '씨앗이죠.' 굶주림 끝에 종자까지 다 먹었기 때문이다.
'이 사람들에게 씨앗은 희망의 다른 이름이에요.'
이야기인즉 작년에 한정된 구호 자금으로 한 마을은 씨를 배분하고 그 옆 마을은 주지 못했단다.
안타깝게 비가 오지 않아 파종한 씨앗은 싹을 틔우지 못했으나 씨를 나누어 준 마을 사람들은 씨를 심어놓았다는 그 사실 하나만으로도 수확기까지 한 명도 굶어 죽지 않았는데, 옆 마을은 아사자가 속출했다고 한다.....
전 세계는 남한 인구만큼인 4천2백만 명의 에이즈 환자가 있고, 매일 1만5천 명씩 늘어난다고 한다.
임산부가 에이즈에 감염되었을 경우 태아도 감염되는데 이런 모자 감염은 임신 7개월에 한 번 억제 약을 복용하고 출산 후 3일 내에 아이에게 한 번만 보조제를 흘려주면 예방할 수 있다고 한다.
그 약값은 단돈 4유로(6천원)인데 그것이 없어서 죄 없는 아기의 목숨이 무참히 꺼져간다고 한다....
사랑의 반대가 미움이 아닌 무관심이듯이, 생명의 반대 역시 죽음이 아니라 무관심이다."
"살아있는 동안에 좋은 것"(25)들은 나만이 아니라 우리를 위해 있습니다 .
가시에 찔린 내 손가락이 부러진 남의 팔보다 아픈 것이 현실이라 나만의 안일을 걱정하며 사느라 이웃의 아픔에는 무감각해져 있지는 않은지 생각해 볼 일입니다.
저 멀리있는 아픔에는 미치지 못하더라도 지금 내 주위에 누군가가 아파하지 않는지, 나의 조그마한 도움의 손길이나 미소를 기다리는 이가 없는지,ᆢ 눈여겨 살펴보는 것이 오늘의 복음을 읽은 우리가 가져야 할 자세인 듯 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