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회 수 28 추천 수 0 댓글 0
김영수 헨리코 신부 전주교구 치명자산 성지 평화의 전당

하느님을 찾아라
베트남 순교자 집안의 후손으로 태어나 39세에 사이공 대교구의 주교가 되신 구엔 반 투안 추기경님은 베트남이 공산화되자 1975년 성모승천 대축일에 체포되어 수감생활 13년간 대부분을 독방에 투옥되셨습니다. 1988년 조국에서 추방되어 바티칸에서 성 요한 바오로 2세와 함께 일하시다가 2001년 추기경으로 서임되었고 2002년 74세의 나이로 선종하셨습니다.
젊은 주교로서 교구와 신자들을 위해 열정적으로 일하다가 갑작스런 감금상태로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처지가 되어 가슴이 찢어지는 슬픔과 괴로움 속에서 무기력하게 지내던 어느 날 밤 그의 마음속 깊은 곳에서 들려오는 음성을 들었습니다. “너는 어찌하여 네 자신을 그렇게 괴롭히고 있느냐? 너는 하느님과 하느님의 일을 식별해야 한다.” 그 음성은 이어서 이렇게 말합니다. “네가 해온 모든 일과 계속해서 행하기를 원하는 모든 것들, … 이 모든 것들은 훌륭한 일이고 ‘하느님의 일’이다. 그러나 그 일 자체가 ‘하느님’은 아닌 것이다!”
그 말씀을 듣고 나서 그를 묶어둔 감옥이 그의 교구가 되었고, 그곳에 있는 죄수와 간수들이 그의 양떼임을 깨달았고, 하느님께서 보내신 지금, 하느님께서 보내신 그 현장에서 자신이 해야 할 일은 오직 한 가지, 하느님의 사랑을 전해야 함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마침내 새로운 평화가 그의 마음을 감쌌습니다. 그 후 13년간의 감옥 생활동안 그 평화가 그의 마음에 머물렀다고 합니다. 감옥 안에서 배급되는 밥과 국으로 매일 미사를 바쳤고, 감옥에 오기 전에 외우고 있던 말씀을 묵상하여 수인들과 나누고, 간수들을 회개시키며 공산화된 베트남의 영적 지도자요 목자로서 살았습니다. 참으로 놀라운 기적이지요.

영적인 나태
언젠가 교우 한 분이 저에게 기쁘게 말씀하셨습니다. “신부님, 오늘 저는 너무나 감사한 날입니다. 제가 성당에 들어갔더니 신부님이 혼자서 기도하고 계시더군요. 성당 다니면서 처음으로 기도하시는 신부님의 모습을 보니 마치 예수님을 뵙는 것 같아서 저도 덩달아 기도를 바치고 나왔어요.” 부끄러움에 제 얼굴이 화끈거렸습니다. 그러고 보니 저도 고요히 하느님 앞에 머물며 기도하는 시간보다 해야 할 일들에 떠밀려 늘 바쁘게 사는 사제가 되어 있었던 것입니다.
기도할 시간도 없이 바쁘게 사는 사제의 삶은 어떻게 될까요? 하느님의 일을 하느라 하느님을 잃어버리는 삶이 되겠지요. 하느님을 잃어버린 사제는 여러 가지 활동에 열중하고 자신의 관심사에 몰두하게 되지요. 그리고 점점 하느님보다 자신을 만족시키는 것들에 매여 살게 됩니다. 구엔 반 투안 추기경님의 체험을 묵상하며 하느님의 일을 하다가 하느님을 잃어버린 제 삶을 돌아보게 되었습니다.
사제로서 해야 할 일도 많고, 만나야 할 사람들도 늘 그치질 않습니다. 모두 다 하느님을 위해 하는 일이고 하느님의 일이기도 합니다. 그런데 그렇게 바쁘게 살다 보면 기도하는 시간은 일 속에서 묻혀 버리고 하느님의 뜻을 식별하는 일도 소홀해지게 됩니다. 생활은 점점 일이 중심이 되고 남은 시간은 쉬는 일과 처진 일을 처리하는 시간으로 보내고 맙니다. 그래서 영적인 나태는 많은 일에 바빠서 하느님을 만나는 일에 소홀한 사람이 빠지는 함정이지요.

하느님의 일
요한복음 6장에서 빵의 기적을 체험한 군중들이 예수님께 묻습니다. “하느님의 일을 하려면 저희가 무엇을 해야 합니까?”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대답하셨습니다. “하느님의 일은 그분께서 보내신 이를 너희가 믿는 것이다.”(요한 6,28-29) 예수님께서 말씀하시는 ‘하느님의 일’은 그분께서 보내신 이를 우리가 믿는 것입니다. 요한복음에서 ‘믿는다’는 것은 ‘아는 것’이고, ‘함께하는 것’입니다. 하느님을 사랑한다는 것은 하느님을 아는 것이고 그분과 항상 함께하는 것입니다.
사랑의 선교 수도회를 창설하신 캘거타의 성녀 마더 테레사 수녀님의 일화입니다. 어느 날 한 수녀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원장 수녀님, 지금 환자가 많고 돌볼 사람들이 너무 많습니다. 그러니 지금 하고 있는 기도 시간을 좀 줄여서 봉사를 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그러자 마더 데레사 수녀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셨답니다. “오늘부터 기도 시간을 한 시간 더 늘리겠습니다.” 주님의 일을 하는데 기도가 선행되지 않고는 어렵다는 말씀입니다.
주님과 일치하지 않고 주님의 일을 내 힘으로 하다 보면 하느님 앞에(Coram Deo) 사는 삶이 아니라 사람 앞에(Coram hominibus) 사는 삶이 되기 쉽습니다. 다른 사람들의 인정과 평가에 매여 기도할 시간도 줄여서 일에 매달리게 되지요. 그러다 보면 몸도 마음도 쉽게 지치게 됩니다. 우리의 몸과 마음은 영혼과 연결되어 있어서 영혼을 돌보는 일에 소홀해 지면 몸도 마음도 중심을 잃게 되지요.

꼭 필요한 것 한 가지
루카복음에는 예수님께서 마리아와 마르타라는 두 자매를 방문하시는 이야기가 나옵니다. 이 둘은 주님을 기꺼이 맞아들였지만, 그 방식에는 차이가 있었습니다. 마리아는 주님 앞에 앉아 그분의 말씀을 경청하였지만, 마르타는 이것저것을 준비하느라 여념이 없었습니다. 바로 이 점이 문제였습니다. 마르타는 무엇이 더 중요한지 잊은 것이지요. 이에 예수님께서는 분주한 마르타에게 말씀해 주십니다. “마르타야, 마르타야! 너는 많은 일을 염려하고 걱정하는구나. 그러나 필요한 것은 한 가지뿐이다.”(루카 10,42) 예수님은 당신의 말씀을 ‘경청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고 분명히 말씀하십니다. 예수님의 말씀이야말로 우리를 비추시고 지탱해주신다는 것을 알 때 우리가 하는 하느님의 일도 하느님의 뜻을 이루고 하느님의 사랑에 응답하는 일이 될 수 있다는 것입니다.
레지오 마리애도 성화를 위한 노력을 소홀히 한 채 인간적인 친교나 활동에 치중하다 보면 신심단체가 아니라 세속적인 모임으로 전락하고 맙니다. 미사는 못 해도 주회는 해야 하는 레지오 마리애, 1차 주회는 못해도 2차 주회(酒會)는 빠지지 않는 레지오 마리애, 맛있는 음식은 꼬박꼬박 먹으러 다니면서도 피정 한 번, 성지 순례 한 번 가는 일은 꿈도 꾸지 못하는 레지오 마리애는 세속적인 일에는 바쁘지만 영적인 일에는 게으른 단체, 하느님의 일이라 여기며 열심히 활동하지만 하느님을 잃어버린 채 껍데기만 남은 신앙인으로 남게 되는 것이지요. 성화는 ‘뭣이 중헌지’를 식별하고 그것을 실제로 살아내는 열매를 맺는 사람에게 주시는 하느님의 축복입니다.


 

List of Articles
번호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 수
106 길위의 사람들(사랑의 불을 놓으시는 성령에 힘입어)-레지오 마리애지 8월호 이재웅안토니오 2022.08.12 66
105 이 시대에 레지오단원으로 산다는 것은? - 레지오 마리애지 8월호 이재웅안토니오 2022.08.12 134
» 레지오영성- 뭣이 중한디 -레지오마리애 9월호 이재웅안토니오 2022.09.10 28
103 이달의 훈화 (연중 25주간~ 28주간) 레지오 마리애지 9월호 이재웅안토니오 2022.09.10 43
102 레지아훈화 (최재현 베드로 지도신부)2022-9 file 이재웅안토니오 2022.09.10 67
101 제 260차 꼬미씨움 훈화자료 -강헌철 펠릭스 지도신부-(2022-9) file 이재웅안토니오 2022.09.10 44
100 제 260차 꼬미씨움 평의회자료(2022-9) file 이재웅안토니오 2022.09.10 37
99 레지오 영성-묵주기도 신심과 중요성-레지오마리애지 2022-10월호 이재웅안토니오 2022.10.08 13
98 이달의 훈화-(연중 제29주간-33주간)-레지오마리애 2022-10월호 이재웅안토니오 2022.10.08 154
97 레지아 훈화 (2022-10월)-최재현 베드로 레지아 지도사제 이재웅안토니오 2022.10.08 29
96 제 261차 꼬미씨움평의회 훈화자료 -강헌철 펠릭스 지도사제 file 이재웅안토니오 2022.10.08 50
95 제 261차 꼬미씨움 평의회자료(2022-10) file 이재웅안토니오 2022.10.08 27
94 은혜로운 위령성월을 맞으며(레지오마리애지 2022-11월호) 이재웅안토니오 2022.11.07 13
93 이달의 훈화 ( 11월 27일~12월 3일) 레지오마리애지 2022-11월호 이재웅안토니오 2022.11.07 37
92 레지아 훈화 -2022-11월 최재현 레지아 지도신부 이재웅안토니오 2022.11.07 23
91 2022년 우리의다짐 활동보고용 유인물 file 이재웅안토니오 2022.11.07 38
90 제 262차 꼬미씨움 평의회 훈화자료 (강헌철 펠릭스 지도신부님) file 이재웅안토니오 2022.11.12 43
89 제 262차 꼬미씨움 평의회 자료(2022-11) file 이재웅안토니오 2022.11.12 35
88 이달의 훈화 (대림 4주간-주님공현대축일) 레지오마리애지2022-12월호 이재웅안토니오 2022.12.09 58
87 제 263차 꼬미씨움 훈화자료(2022-12)-강헌철 펠릭스 지도신부님 file 이재웅안토니오 2022.12.09 53
Board Pagination Prev 1 ... 8 9 10 11 12 13 14 15 16 17 18 Next
/ 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