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중 제 22주일 복음묵상
✠ 루카복음 14,1.7-14
✠ 루카복음 14,1.7-14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초대받은 이와 초대하는 이가 취해야할 태도를 가르쳐주십니다.
"윗 자리를 고르는 모습을 보시고"(7)
우리 중 어느 누가 윗 자리를 싫어할 사람이 있을까요?
아담이 저질렀던 하느님의 자리를 넘어다 본 원죄도 바로 이것이고, 이것은 또한 우리 모두에게 있는 모든 죄의 뿌리인것 같습니다.
제자들 역시 예외는 아니어서 최후의 만찬 석상에서 조차 누가 제일 크냐는 문제로 다툼을 벌였습니다.(22,24)
"초대를 받거든 끝자리에 가서 앉아라. 그러면 .... 모든 사람 앞에서 영광스럽게 될 것이다."(10)
물론 영광을 받기 위해 끝자리에 가 앉으라는 말씀은 아니라는 사실은 분명합니다.
당신 역시 섬김을 받기 위해서가 아니라 섬기러 오셨다(마태20,28) 하셨습니다. 자신을 낮춤은 자기 비하도 아니며 비굴함과도 거리가 멉니다.
겸손이란 하느님께서 보시는 자신의 참된 가치를 아는 것이며 그래서 하느님 눈길 아래 살고 있어서 인간의 눈길, 인정에 매이지 않음을 의미합니다.
"...부유한 이웃을 부르지 마라. 오히려 잔치를 메풀 때에는 가난한 이들, 장애인들.... 초대하여라. 그들이 너에게 보답할 수 없기 때문에 너는 행복할 것이다.(12-14)
보답을 바라는 것은 인간의 기본적인 욕구입니다. 그런데 거저 주라고 하십니다.
누가 거저 베풀 수 있을까요? 그 비결은? 그 비결을 마태오 복음에서 찾아 볼 수 있습니다.
6장에서 세 번이나 후렴처럼 반복되는 구절이 있습니다. "숨은 일도 보시는 아버지께서 갚아 주실 것이다."(6, 4.8.18)
하느님 아버지의 사랑에 대한 믿음, 그분의 눈길이 우리를 보답을 기다리지 않고 베풀게 해줍니다.
예수님께서 초대 받은 자리에는 수종병자가 있었고 예수님께서 고쳐주시는 얘기가 오늘 복음 단락의 바로 앞에 나옵니다.(2-6절) 루카 복음사가가 의도적으로 들려주는 일화인듯 합니다.
수종은 몸의 림프액이 체내에 그대로 고여 붓는 병입니다. 마치 소유하고 차지하려는 사람, 이렇게 이기(利己)로 자기를 부풀리고 드높이는 사람은 결국 죽음에 이르게 됨을 말해주는 듯 합니다.
초대받은 자와 초대하는 자가 마땅히 취해야할 태도가 여기서 나옵니다.
우리가 우리 있을 자리에 있게 하고, 거저 베풀 줄 아는 자가 되는 비결은 한 가지뿐입니다. 제대로 하느님 안에서 자기 가치를 알아볼 만큼, 그분의 눈길 안에서 보상을 받을 만큼 우리의 믿음이 우리의 기도가 하느님의 숨결을 체험하게 해주어야 합니다.
하느님은 사랑이십니다. 머리카락 하나도 다 세어 놓을 만큼 나를 사랑하시고 내게서 눈길을 거두지 않으시는 분이십니다. 기어코 당신의 목숨까지 내놓으시는 그런 사랑입니다.
이 사랑을 알아듣는 그날, 난 움켜쥐기를 그만 둘 것이고, 더 이상 나를 내세우느라 발버둥치지 않을 것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