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중 제18주일
✠ 루카복음 12,13-21
✠ 루카복음 12,13-21
"자신을 위해서...하느님 앞에서"(21)
오늘 주일복음에는 욕심 많은, 그래서 어리석은 부자 얘기가 등장합니다.
그래서 이야기 하나,
일상을 행복해 하며 살던 농부가 있었습니다. 어느날, 밭을 갈다가 보물을 캐는 꿈을 꾸는데 그 다음날 밭에 나가 삽질을 하다가 정말 보물상자를 발견합니다.
가족들이 함께 환호하며 보물상자를 캐내었는데 농부의 얼굴은 어두웠습니다. 그래서 왜냐고 물으니 그는 "지난 밤 꿈 속에서는 분명 열 상자였는데 아홉에 불과하니..."하는 것이었습니다.
욕심없이 일상에 만족하며 살던 성실한 농부였는데.....
이야기 둘, 역시 농부이야기입니다.
어느 농부가 먼 지방에 가서 아주 비싼 돈을 주고 좋은 품질의 옥수수를 구했습니다. 과연 그 해 농작물은 이웃의 것보다 훨씬 튼실하고 수확량도 많았습니다. 이웃에 사는 이가 그것을 보고 그 씨를 자기에게 나누어 팔라고 사정했습니다.
농부는 차갑게 거절하지요. 그런데 그 다음 해엔 수확량이 전보다 못하는 것이었습니다. 분명 지난 수확물 중에서 가장 좋은 것으로 남겨 두었는데도 말입니다. 또 그 다음 해엔 더욱 나빠진 것입니다. 이럴 수는 없는 것이었습니다.
얼마나 비싼 돈을 주고 사왔는데...
이유를 알아보니 곁에 인접해 있는 곳의 품질이 떨어지는 옥수수의 영향 때문이라는 것을 알았습니다. 진작 나누었더라면 그 동네 모두가 풍작을 누렸을텐데....
오늘 복음에서 말하고 있는"'하느님 앞에서는 부유하지 못하다"(21절)는 말이 무슨 뜻일까요?
"자신을 위해서는 재화를 모으면서"라는 앞구절의 말씀에서 우리는 이웃의 필요에 눈감는 것을 가리킨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루카복음 16장에는 또 다른 탐욕스런 부자의 이야기가 나옵니다. 역시 같은 가르침을 주시는 내용이지요.
오늘 2독서에서 "저 위에 있는 것을 추구하십시오.......위에 있는 것을 생각하고 땅에 있는 것을 생각하지 마십시오." 라고 말합니다. 땅에서 사는 우리가 위의 것을 추구한다는 것은 무슨 뜻 일까요?
이 지상의 삶이 전부인양 생각하며 사는 사람은 탐욕에 빠질 수 밖에 없습니다.
여기서 잠시 주님께서 가르쳐주신 <주님의 기도> 첫구절을 떠올려봅니다.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
왜 <하느님 아버지>라고 하지 않고 굳이 하늘에 계신 아버지라고 가르쳐주셨을까요?
위, 하늘을 바라본다는 것은 우리 눈에 보이는 것들, 물질적인 가치들, 이 땅에 속한 가치들만 존재하는 것이 아니며, 오히려 보이지 않는 것들, 이웃에 대한 사랑, 정의를 이루는 일, 진실, 평화, 선 이런 가치들이 존재하고 또 이 가치들이 우선될 때 물질적인 가치들은 제대로, 더 귀하게 쓰여진다는 것을 안다는 뜻입니다.
그래서 ‘하늘에 계신’이라고 기도하는 것은 보이는 것만 보지 않고 그 너머를 보겠다는 말, 참가치를, 참 생명을 늘 찾겠다는 것을 의미하며 <우리 아버지>의 같은 자녀인 가난하고 힘들어하는 이웃에게 손길을 뻗겠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주님의 날입니다. 자신을 위해서가 아니라 하느님 앞에 부유한 오늘이 되게 해볼까요? 이것이 주일을 제대로 사는 것이 되겠지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