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스도의 성체 성혈 대축일
✠ 루카복음 9,11ㄴ-17
오늘 제 1독서, 창세기14, 18-20 에서 뜬금없이 신비에 싸인 인물, 한 사제가 등장합니다. 멜키체덱.
이 인물은 신앙의 선조 아브라함을 축복해 줄 만한 참 사제로 소개하고 있습니다.
이스라엘의 한 지파, 아론의 후예들에게 국한 되어 있던 사제직을 뛰어 넘는 사제입니다. 그래서 훗날 멜키체덱의 사제직을 메시아, 그리스도와 직결시키게 됩니다.
제 2독서, 1코린11,23-26은 예수님께서 성체성사를 세우신 그 내용을 그대로 전해주고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잡히시던(배반당하시던) 날 밤에"
그리스도인은 "주님의 만찬"을 기념하는 축제(성체성사)에서 결코 잊지 말아야할 것은 바로 배반과 수난이라는 고통스런 사실입니다.
예수님의 부활을 선포하고 그 부활에 참여하리라는 희망으로 다시 오실 주님을 기다리는우리는 생명을 주시기 위해 생명을 바치신 그분의 죽음도 함께 기억하고(26) 그분의 생명을 받아 먹음으로 그분처럼 목숨을 형제를 위해 내어 놓는 그 사랑을 살도록 요청받습니다.
오늘 복음, 루카 9,11-17의 빵의 기적 사화는 성체성사의 예표(요한 6장)로 이해되어 왔습니다. 그렇다면 배고픈 이들을 위해 빵을 나누신 이 이야기는 "나를 기억하여 이 예를 행하여라."하신 예수님의 말씀과 연관됩니다.
성체성사에 참여한다는 것은 구체적으로 나의 삶 속에서 만나는 형제들에게 내가 가진 빵을 나누는 것을 의미합니다.
내가 가진 빵이란 물질적인 것 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님을 우리는 잘 알고 있습니다.
이러한 나눔이 목숨까지 내어놓는 사랑이 될 수 있도록 성체는 우리 안에서 자라나야 합니다. 우리가 이웃을 위한 또 하나의 성체가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 이야기 하나:
어떤 젊은 순례자가 긴 여행 끝에 현자 ‘아부 야디드’가 사는 마을에 와서 현자에게
“보다 확실하고 빠르게 하느님께 도달하는 방법을 알려 주십시오.”하였습니다. 아부 야디드가 “온 힘을 다해 하느님을 사랑하여라.” 라고 대답하자 젊은이는 “이미 하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다른 이로부터 사랑 받기 위해 할 수 있는 것을 다 하라.”
“왜요?” “하느님은 사람의 마음을 찾아 오셨을 때 하느님을 향한 너의 사랑을 보시고 기뻐하실 것이다.
그런데 만약 하느님께서 다른 이의 마음속에 새겨진 너의 이름을 보신다면 분명히 그분께서는 너를 더욱 더 큰 애정으로 바라보실 것이다.”
현대 개신교 성자라고 부를 수 있는 ‘마르틴 루터 킹’목사는 39세의 젊은 나이로 죽습니다. 그의 아들은 훗날 이렇게 말을 하게 됩니다.
“모든 비극 중에서 최악의 비극은 젊어서 죽는 것이 아니다. 일흔 다섯 살까지 살지만 한 번도 진정으로 살지 않는 것 그것이 가장 큰 비극이다.”
사랑의 삶만이 진정으로 사는 삶이고 사랑의 삶은 우리에게 참다운 성숙과 산다는 기쁨을 안겨다 줄 것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