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순 제4주일
✠ 루카복음 15,1-3.11ㄴ-32
우리를 살맛나게 하는 것이 무엇일까요?
돈, 권력, 쾌락?
오늘 복음의 둘째 아들에게는 쾌락이 살맛나게 해주리라 착각하고 아버지 곁을 떠납니다.
환희가 아닌 쾌락, 마음이 아닌 물질의 풍요, 자유가 아니라 방종, 방탕이 살맛나게 해줄 것 같았던 모양입니다.
이 마음에 깃든 헛된 바람은 아버지의 보호와 사랑을 구속으로 느끼게 만들고 삶의 가치를 전복시켰습니다.
그리하여 아버지가 돌아가실 때까지 기다릴수 없으니 지금 내몫을 달라는 매정한 요구를 합니다. 가슴에 못박는 요구 앞에 아버지는 한마디 말없이, 왜냐고, 어떻게 할거냐고, 어디로 갈거냐고 묻지도 않고 원하는대로 들어줍니다.
아들의 앞날을 뻔히 내다 보았던 아버지이지만 이미 마음이 떠난 아들을 억지로 붙들어 둔들 불행할 뿐임을 잘알고 있었던 까닭이겠지요.
집을 떠난 끝은 비참했습니다. 돼지밥도 못먹어 굶어죽을 지경이 된거지요. 삶의 바닥을 치고 목숨을 위협받을 만큼 절박한 상황이 정신을 차리게 합니다.
아들이 절망의 자리에서 '일어나 아버지께 ' 갈수 있었던 것은 배고픔의 절실함과 어쨌든 자신을 받아주시리라는 아버지의 선함에 대한 기대였습니다.
그런데 아버지의 선함은 아들의 기대, 모두의 기대를 훨씬 능가하는 것이었습니다. 우리는 이 아버지의 모습에서 하느님 아버지를 봅니다.
"아버지, ᆢ죄를 지었습니다. 저는 ᆢ 자격이 없습니다." 아버지는 아들이 '품팔이꾼, 종노릇을 하겠다'(19절 참조)는 말을 이어가지 못하도록 가로막습니다.
하느님은 우리가 죄를 지으면서 잃어버린 '아들의 존엄성'을 되찾아 주시려 하십니다. 꾸짖고, 벌주면서가 아니라 거저 주시는 사랑을 깨닫게 해주시면서 되찾게 해주십니다. 두려움은 우리를 묶어 놓지만 사랑은 우리를 자유롭게 합니다. 아버지의 사랑을 깨닫는 그만큼 종이 아니라 아들로 살게 해줍니다.
큰아들의 모습에서 우리는 겉은 아들이나 속은 종으로 살아온 모습을 봅니다. 우리 역시 하느님의 자녀가 아니라 종으로 살고 있지나 않은지 모르겠습니다. 모든 것을 다 가지고서도 '염소 한마리' 주시지 않는다고 투덜대는 아들, 상여금이나 기다리는 일꾼으로 살고 있지는 않은지 마음을 살펴볼 일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