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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가 선물을?… “자신 돌아보고 이웃 배려하는 법 알게 했죠” (donga.com)
 

코로나가 선물을?… “자신 돌아보고 이웃 배려하는 법 알게 했죠”

입력 2022-03-14 03:00업데이트 2022-03-16 10: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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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해인 수녀 ‘꽃잎 한 장처럼’ 출간… ‘코로나 2년’간 쓴 시로 위로 전해
“함께 사는 연대의 소중함 깨달아… 타인의 아픔 방관한 세월 용서를”
2008년 암 발병 후에도 펜 안놔 “글로 희망 주는 일 너무 행복해”
바람에 날려 떨어진 겹벚꽃을 들고 있는 이해인 수녀. 그는 “민들레, 매화 등 평생 꽃을 주제로 시를 써왔다”며 “피고 지는 꽃을 보며 인생에 대해 생각한다”고 말했다. 이해인 수녀 제공
그가 최근 펴낸 시집 ‘꽃잎 한 장처럼’(샘터). 이해인 수녀 제공
6일 이해인 수녀(77)가 기자의 휴대전화로 사진 한 장을 불쑥 보내왔다. 봄을 알리는 하얀색 매화 앞에서 은은한 미소를 짓는 자신의 모습이었다. 그가 머무는 부산 올리베따노 성 베네딕도 수도원 해인글방에 봄이 와서일까. 평생 꽃을 노래한 희수(喜壽)의 시인은 “매화가 활짝 피었다”며 한 편의 시를 함께 보냈다. ‘넘어진 나를 일으켜 세우는/ 고마운 봄’(시 ‘봄 일기’)이라는 자신의 시구에는 암 투병 중에도 “명랑하게 아프자”던 그의 희망찬 태도가 묻어났다.

이 수녀가 지난달 28일 펴낸 시집 ‘꽃잎 한 장처럼’(샘터)을 들고 독자 곁으로 돌아왔다. 그가 신작을 낸 건 2019년 11월 출간한 에세이 ‘그 사랑 놓치지 마라’(마음산책) 이후 2년 3개월 만이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으로 해인글방에 머물며 2년 동안 쓴 시와 일기를 모았다. 출간 직후 교보문고에서 이달 첫째 주(4∼10일) 시 부문 3위에 올랐다. 독자 반응이 좋은 이유를 묻자 시인은 8일 동아일보와의 전화 인터뷰에서 수줍게 답했다.

“답답하고 힘들어서 제 시를 찾으신 것 같아요. 누군가와 만날 수도, 누군가에게 위로받을 수도 없는 시대에 저 역시 기댈 곳은 기도와 시밖에 없었죠. 개인이 아닌 사회를 위한 공동선이 무엇인지, 서로 연결돼 있다는 연대감이 주는 힘이 얼마나 소중한지에 대해 함께 고민하고 싶은 마음이 전달된 게 아닐까요.”
 
그는 신작에서 함께 사는 삶의 중요성에 대해 말한다. 팬데믹 시대를 버티기 위해선 서로가 긴밀히 연결돼 있다는 사실을 깨닫고 연대해야 한다는 것. 단순한 진리지만 1968년 평생 수도자로 살 것을 서원한 후 54년간 삶을 성찰해 온 이가 건네는 위로는 가슴을 촉촉이 적신다. 그는 “외출을 못하는 대신 마음속으로 들어가 자신을 들여다보고 이웃을 배려하는 법을 배운 건 코로나가 내게 준 선물”이라며 “자신의 아픔과 슬픔은 하찮은 것에도 민감하면서 다른 사람의 큰 아픔에는 안일한 방관자로 살아온 세월을 용서해 달라고 기도한다”고 털어놓았다.
 
1976년 첫 시집 ‘민들레의 영토’ 출간 당시 31세의 이해인 수녀. 이해인 수녀 제공
첫 시집 ‘민들레의 영토’(1976년·가톨릭출판사)를 시작으로 시집 ‘꽃은 흩어지고 그리움은 모이고’(2004년·분도출판사), 에세이 ‘꽃이 지고 나면 잎이 보이듯이’(2011년·샘터) 등에서 꽃에 천착해 온 그는 신작에서도 꽃을 들여다본다. “사랑과 우정/ 평화와 기도를/ 시들지 않는/ 꽃으로 만들자”(시 ‘고맙다는 말’)에선 희망이, “오랫동안 알고 지내 더 이상 말이 필요 없는/ 그들의 이름을 꽃잎으로 포개어/ 나는 들고 가리라 천국에까지”(시 ‘꽃잎 한 장처럼’)에선 그리움이 어른거린다. 그는 “월간지 샘터에 함께 연재하던 법정 스님(1932∼2010)과 최인호 소설가(1945∼2013)에 이어 나보다 먼저 수도자가 된 친언니 수녀님도 2017년 세상을 떠났다”며 “언제든 쓰러질 수 있으니 내가 쓴 글을 스스로 정리할 수 있을 때 하자는 마음에서 신작을 냈다”고 말했다.

그는 2008년 암 발병 후 수십 번의 항암·방사선 치료를 받았다. 평생 1000편이 넘는 시를 쓰고도 펜대를 놓지 않는 이유를 물었다.
 
“몸이 아프다고 힘들어하기보다 노년이 주는 선물을 명랑하게 받아들이고 싶습니다. 마음에 고여 있다 흘러나오는 제 글을 읽고 사람들이 희망을 얻는 일이 너무 행복해요. 힘이 닿는 한 계속 시를 쓰고 싶어요.”

이호재 기자 hoho@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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