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 게시판
2022.03.01 05:18

2022 3월 생활말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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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년 3월 생활말씀

 
“저희에게 잘못한 이를 저희도 용서하였듯이 저희 잘못을 용서하시고” (마태 6,12)

 
이 번 달 생활말씀은, 예수님께서 당신의 제자들에게 가르쳐 주신 기도인 ‘주님의 기도’에서 발췌했습니다. 
 
이 기도는 히브리인들의 전통에 깊이 뿌리내리고 있는 기도입니다. 히브리인들 역시 하느님을 ‘우리 아버지’라고 불렀고, 지금도 그렇게 부르고 있습니다.
 
이 구절을 처음 읽을 때 우리는 순간 멈칫하게 됩니다. 이 성경 구절의 그리스어 원문이 의미하듯이, 누군가 우리에게 어떤 잘못을 저지른 것을 그가 우리에게 진 ‘빚’이라 친다면, 우리는 과연 하느님께 우리가 상대방의 ‘잘못’인 빚을 탕감해 주는 만큼 우리의 빚도 탕감해 주십사고 청할 수가 있을까요? 우리에게는 용서할 수 있는 능력에도 한계가 있을 뿐 아니라, 그나마 피상적이며, 조건에 따라 달라질 수 있으니까요.
 
이렇게 용서할 능력에 한계를 지닌 우리의 척도대로 하느님께서 우리를 다루신다면, 우리는 엄청난 벌을 받을 처지가 되고 말 것입니다!

 
“저희에게 잘못한 이를 저희도 용서하였듯이 저희 잘못을 용서하시고”
 
반면에 이 말씀은, ‘우리가 하느님의 용서를 필요로 하는 존재임을 깨닫는 것’, 무엇보다도 바로 이것을 표현한다는 점에서 중요합니다. 예수님께서 직접 이 말씀을 제자들에게 하셨는데, 이것은 세례를 받은 모든 이들에게도 이 말씀을 하셨다는 의미입니다. 세례를 받은 모든 이들이 단순한 마음으로 하느님 아버지께 의지할 수 있도록 하시려는 것입니다.
 
모든 것은 우리가 다음과 같은 것을 발견하는 데서부터 시작됩니다. 곧, 우리는 하느님의 아드님을 통해 하느님의 자녀들이 되었고, 우리 서로는 형제자매들이 되었으며, 또한 예수님을 닮고자 하는 사람들이 되었다는 점입니다. 우리가 닮고자 하는 예수님께서는, 당신 삶을 하느님 아버지의 사랑 가득한 뜻을 점점 더 ‘전적으로’ 따르는 여정이 되게 하신 분입니다.
 
하느님의 선물과 그분의 헤아릴 길 없는 사랑을 기쁘게 받아들인 후에야 비로소, 우리는 모든 것을 하느님 아버지께 청할 수 있게 됩니다. 그렇게 청하는 것 중에는, 우리로 하여금 점점 더 그분을 닮은 모습이 되게 해 주시기를 청하는 것도 포함됩니다. 이를 위해 하루 또 하루, 너그러운 마음으로 형제자매들을 용서하는 능력까지도 지니게 해 주십사고 청할 수 있습니다.
 
모든 용서의 행위는 자유롭고도 의식적인 선택입니다. 또한 언제나 겸손한 마음으로 새롭게 해야 하는 선택입니다. 용서는 결코 습관이 아니라, 노력을 요하는 하나의 과정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우리가 매일 일용할 양식을 청하듯이, 이렇게 용서를 잘할 수 있도록 노력할 은총도 청하게 하십니다.

 
“저희에게 잘못한 이를 저희도 용서하였듯이 저희 잘못을 용서하시고”
 
가정이나 동네, 직장 혹은 작업실에서 우리와 함께 지내는 사람들이 우리에게 어떤 잘못을 저질러서, 우리가 그 사람들과 다시 긍정적인 관계를 맺는 것이 어려운 경우가 얼마나 많은지요! 어떻게 해야 할까요? 다름 아닌 바로 여기에서 우리는 하느님 아버지를 닮을 수 있는 은총을 청할 수 있습니다.
 
“(…) 매일 아침 완전한 ‘사면赦免’의 정신을 마음속에 지니고 일어나도록 합시다. 곧 모든 것을 덮어 주고, 다른 사람의 한계와 그가 지닌 어려움을 끌어안으며, 그 사람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일 줄 아는 사랑을 마음속에 지니는 것입니다. 마치 어머니가 잘못을 저지르는 아들을 늘 용서해 주고, 언제나 그 아들에게 희망을 거는 것처럼 그렇게 말입니다…….
 
마치 그 사람이 그런 결점들을 가진 적이 단 한 번도 없는 것처럼, 새로운 눈으로 각 사람을 바라보며 다가가도록 합시다.
 
매번 다시 시작하도록 합시다. 하느님께서는 단지 용서하실 뿐만 아니라, 더 이상 우리의 잘못을 기억하지 않으신다는 것을 염두에 두도록 합시다. 바로 이것이 우리에게도 요구되는 척도입니다.”1
 
이는 드높은 목표지만, 우리는 확고한 믿음을 지니고 드리는 기도의 도움으로 이 목표를 향해 나아갈 수 있습니다.

 
“저희에게 잘못한 이를 저희도 용서하였듯이 저희 잘못을 용서하시고”
 
그리고 주님의 기도 전체에는 ‘우리’라고 하는 관점, 형제애의 관점이 들어 있습니다. 나는 나 자신만을 위해 청하는 것이 아니라, 다른 이들을 위해서도 청해야 합니다. 그리고 다른 이들과 함께 청하는 것입니다. 내가 용서할 수 있는 능력은 다른 사람들의 사랑에 도움을 받아 유지됩니다. 한편 나의 사랑은, 어느 모로 형제의 잘못을 나 자신의 것으로 느낄 수 있게 해 줍니다. 그래서 ‘어쩌면 나한테 달려 있는 문제일 수도 있을 거야.’, ‘그 사람이 환영받았다고 느끼도록, 이해받았다고 느끼도록, 내가 나의 몫을 아마 제대로 다하지 못한 것 같아…….’라고도 생각할 수 있게 해 줍니다.
 
이탈리아의 팔레르모Palermo라고 하는 도시에서, 어떤 그리스도인 공동체들은 강도 높은 대화의 경험을 살고 있습니다. 이 대화는 몇 가지 어려움들을 극복할 것을 요구하는데, 비아지오Biagio와 지나Zina가 다음과 같이 이 경험에 대해 들려줍니다.
 
“하루는 저희의 친구 목사님 한 분이, 당신의 교회에 속한 몇몇 가정들의 집에 저희를 초대해 주셨는데, 그들은 저희를 모르는 분들이었습니다. 저희는 점심 식사 때 함께 나누어 먹을 몇 가지 음식을 준비해 갔는데, 그들이 이 만남을 그다지 달가워하지 않는다는 눈치를 주고 있음을 깨달았습니다. 지나는 부드러운 태도로 그분들에게 자신이 요리한 몇 가지 특별한 음식들을 맛보여 드렸고, 결국 우리는 함께 점심 식사를 했습니다.
 
점심 식사 후에, 그분들은 자신들이 느끼는, 우리 교회의 결점들에 대해 강조하기 시작했습니다. 저희는 언쟁하기를 원치 않았기에, 그분들에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우리 교회들이 서로 다르다고 해서 그 차이나 결점 탓에 우리가 서로 사랑하지 못할 까닭이 있을까요?’
 
그분들은 그동안 논쟁하는 데 늘 익숙해져 있었던 때문인지, 저희의 이런 답변에 깜짝 놀랐고, 무장 해제 상태가 되었습니다. 그래서 저희는 복음에 대해, 또 우리를 서로 일치시켜 주는 것에 대해 이야기하기 시작했습니다. 우리를 서로 일치시켜 주는 것이, 우리를 갈라놓는 것보다 훨씬 더 많다는 것이 분명하기 때문이었습니다.
 
헤어져야 할 때가 되었는데도 그분들은 저희가 떠나지 않기를 바랐습니다. 그 순간 함께 주님의 기도를 바치자고 제안했고, 그 기도를 바치는 동안 저희는 하느님께서 그곳에 현존해 계시는 것을 깊이 느꼈습니다. 그분들은 자신들의 교회 공동체에 속한 다른 이들도 모두 저희에게 소개시켜 주겠다고 하면서, 꼭 다시 만날 것을 약속하자고 했습니다. 그리고 지난 수년간 실제로 그렇게 되었습니다.”
 
레티치아 마그리|포콜라레운동 총본부
「생활말씀」 편집위원
 
1   끼아라 루빅, 2004년 12월 생활말씀, in eadem, 『생활말씀Parole di Vita』, 파비오 차르디 엮음.(끼아라 루빅의 저작들 제5권, 치타누오바 출판사, 로마 2017년), 739쪽 참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