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중 제8주일
✠ 루카복음 6,39-45
✠ 루카복음 6,39-45
에르메스 롱키 신부의 해설을 의역하고 나름 요약해봅니다.
오늘 복음은 눈, 나무, 곳간이라는 세 이미지로 가르침을 풀어나갑니다.
"ᆢ 어찌하여 형제의 눈 속에 있는 티는 보면서 ᆢ ?"(41)
왜 그 작은 티에 집중하고 티를 애써 찾아내려고 하느냐? 왜 빛보다 어둠에 관심을 두느냐고 물으십니다. 다른이의 결점을 파헤치고 뒷담화하는 이 악함은 대체 어디서 오는 걸까요?
좋은 열매보다는 그늘진 흠을 찾는 것은 하느님께로부터 오는 것이 아닙니다.
다른 이에게서 티를 찾아내는 눈은 자신이 낮아질까 두려운 마음에서, 자신을 높이려는 마음에서 비롯합니다. 지배당하기 보다는 지배하고 싶은 마음에서 비롯합니다.
사실 다른 이의 티를 찾아내는 그 눈은 오히려 스스로의 왜곡된 시선을 드러냅니다. 다른 이를 나쁘게 보는 것은 내 마음이 나쁘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이야말로 잘 볼줄 아는 분이십니다. 지금 보이는 것에 멈추지 않고 그 너머를 보시는 그분은 베드로가 반석이 될 감이라는 것을, 니코데모 안에 용기가 있음을, 간음 현장에서 붙들린 여인 안에는 충실함이 깃들어 있음을 보셨습니다.
예수님이야말로 잘 볼줄 아는 분이십니다. 지금 보이는 것에 멈추지 않고 그 너머를 보시는 그분은 베드로가 반석이 될 감이라는 것을, 니코데모 안에 용기가 있음을, 간음 현장에서 붙들린 여인 안에는 충실함이 깃들어 있음을 보셨습니다.
"좋은 나무는 나쁜 열매를 맺지 않는다."(43)
복음적 윤리관은 다만 악을 피하는 것이 아니라 열매를 맺는 것입니다. 마지막 날의 심판(마태25)은 우리 손이 얼마나 더럽혀졌는지를 보지 않고 빈손인지를 볼 것입니다.
열매 맺음은 언제나 타인을 위해서입니다. 자신만을 위해서라면 10년에 열매 하나로 족할 것입니다. 다만 살아남기 위해서, 자기보존을 위해서 사는 삶은 사는 것이 아닙니다.
좋은 열매를 맺는다는 것은 "소유"에 대한 승리입니다. 더 많이 소유하려는 데서 전쟁이 일어납니다. (엊그제 일어난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다툼이 일어납니다. 복음적 사상은 "내어줌"입니다. 내어줌은 생명의 법칙입니다.
"선한 사람은 마음의 선한 곳간에서 선한 것을 내놓고ᆢ" 곳간이라고 번역된 단어는 단순한 곳간이 아니라 보물창고라는 의미를 지닙니다. 마음곳간에 우리가 보물이라고 여기는 것을 쌓아둡니다. 우리가 귀하게 여기는 것, 보물은 무엇일까요? 선하고 좋은 것이라면 곳간에서 나오는 것도 선하고 좋은 것일 테지요.
"선한 사람은 마음의 선한 곳간에서 선한 것을 내놓고ᆢ" 곳간이라고 번역된 단어는 단순한 곳간이 아니라 보물창고라는 의미를 지닙니다. 마음곳간에 우리가 보물이라고 여기는 것을 쌓아둡니다. 우리가 귀하게 여기는 것, 보물은 무엇일까요? 선하고 좋은 것이라면 곳간에서 나오는 것도 선하고 좋은 것일 테지요.
결국 보는 것이 선하고 마음곳간에 선하고 고귀한 것들을 담아두는 이는 이웃을 위해 좋은 열매를 맺는 나무가 될것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