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중 제 7주일
✠ 루카복음 6,27-38
오늘 복음의 내용은 첫 두 구절에 나오는 원수를 <사랑하라> <잘해주라> <축복하라> < 기도하여라>란 네 단어로 요약할 수 있습니다.(27-28)
이어서 어떻게 악을 선으로 이길수 있는지를 네가지로 설명합니다. "네 뺨을 때리는 자에게 다른 뺨을 내밀고, 네 겉옷을 가져가는 자는 속옷도 가져가게 내버려 두어라. 달라고 하면 누구에게나 주고, 네 것을 가져가는 이에게서 되찾으려고 하지 마라."(29-30)
그리고 사랑의 일반적인 원칙을 말씀하십니다. "남이 너희에게 해주기를 바라는 그대로 너희도 남에게 해 주어라."(31)
우리의 사랑이 이렇게 원수를 사랑하는 사랑이어야 하는 까닭은 하느님께서 그리스도를 통하여 우리에게 먼저 행하신 사랑이기 때문이며,
<우리가 아직 원수였을 때 그리스도께서는 우리를 위하여 죽으셨고>(로마5,6-11참조)
<우리가 미워할 때 사랑하셨고, 당신을 저주할 때 축복하셨으며, 당신을 버리고 뺨을 칠 때 우리를 위해 기도> (수난사 참조) 하셨기 때문입니다.
"너희가 자기를 사랑하는 이들만 사랑한다면 ᆢ 죄인들도 자기를 사랑하는 이들은 사랑한다. 너희가 자기에게 잘해 주는 이들에게만 잘해 준다면 ᆢ 죄인들도 그것은 한다. 너희가 도로 받을 가망이 있는 이들에게만 꾸어 준다면 ᆢ 죄인들도 고스란히 되받을 요량으로 서로 꾸어 준다."(32-34)
그러니까 원수까지도 사랑하는 사랑만이 우리가 세례 때에 받은 하느님께로부터 오는 사랑을 드러내주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너희는 원수를 사랑하여라.ᆢ 그러면 ᆢ 지극히 높으신 분의 자녀가 될 것이다."(35)
그렇다면, 우리에게 불가능한 예수님의 이 명령은 우리의 능력에 대한 시험이라기 보다는 우리 안에서 하느님의 사랑이 드러나고, 그분 사랑의 영(성령)의 힘을 체험하도록 하느님을 시험하라는 축복을 담은 요구입니다.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에만 머물 때 결코 우리는 믿는 이가 가지는 특권을 알 수 없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원수를 사랑할 수 있는 까닭은, 자비로울 수 있는 까닭은 다만 하느님께서 자비로우시기 때문입니다. 그분 사랑(성령)이 우리 안에 머물고 계시기 때문입니다.
"너희 아버지께서 자비로우신 것처럼 너희도 자비로운 사람이 되어라."(3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