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억의 소곤소곤



제 7권 헷갈리는 게 너무 많아요


 

믿음으로 걷기



 

298. 천주교는 기도 끝에 우리 주 예수님을 통하여 비나이다라고 하고 개신교는 우리 주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라고 합니다의미는 같겠지만 천주교의 표현 비나이다의 어감이 왠지 범신론적 신앙대상에게 하는 샤머니즘적 표현 같습니다개신교 측 표현이 좀 더 그리스도적이지 않나요성경에서 기도하라고 말씀하셨지빌어라(비나이다)는 표현은 보지 못한 것 같습니다.

299. 구약성경을 읽으면 하느님의 뜻이 너무 오락가락한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습니다죄송한 표현이지만 변덕쟁이 같습니다.

300. 창세기에 4,13-16 의하면 아담과 하와 전에 카인을 죽일 사람들에 대한 언급이 나오는데 이것은 뭐라 해석하나요아담과 하와가 아닌 다른 사람들이 있었다는 것인가요아담과 하와가 첫 조상이 아니지 않느냐는 질문에 말문이 막혔습니다.

301. 노아는 방주에 날짐승과 들짐승을 쌍 맞추어 태웠는데바다의 고기 이야기는 없습니다어떻게 되었나요홍수에 다 죽었다면 다시 번성할 수 없었을텐데…… 궁금합니다.

302. 백성을 멸하려고 했던 불뱀이 인류 구원자이신 예수님의 예표라는 논리가 이해되지 않습니다하느님의 방식이 너무 모순적으로 다가옵니다.

303. 예수님은 빵을 많게 하는 능력자신데 왜 제자들이 밀 이삭을 뜯을 만큼 궁핍한 지경에 이르도록 방치하셨을까요결국 논쟁에 휘말리셨던 이유가 무엇인지요?

304. 예수님께서 차라리 태어나지 않았으면 자신에게 더 좋았을 것이다라는 말을 들었던 이스카리옷 유다에 관한 질문입니다비록 하느님의 뜻이 아니라 스스로의 판단으로 그릇된 결정을 했다는 것은 인정하지만 영원히 용서로부터 제외된다는 선언이 혹독해 보입니다. “성경에 쓰여진 대로 그리 되려고 일이 일어났다라는 말씀은 인간의 자유의지와 관계없이 미리 정해진 운명에 따른다는 의미 아닙니까?

305. 미사 중에 바치는 신앙고백(니케아 콘스탄티노폴리스 신경 혹은 사도신경)은 어떤 의미의 기도인가요주일미사에서 신경을 뺀 적이 있는데사제에게 이 기도문에 대한 선택의 고유 권한이 있는 겁니까?

306. 사도신경에 죄의 용서와 육신의 부활을 믿으며라는 구절이 있는데 육신의 부활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한데 왜 육신의 부활이라고 표현하였는지 궁금합니다차라리 영혼의 부활이라고 하는 것이 맞지 않나요?

307. 전대사를 받을 때마다 고해성사를 새로 봐야하나요?

308. “정말로 성사로 모든 잘못이 없어집니까그리고 그런 사람도 안고 가야 합니까?” 제가 잘못 이해하고 있는지 모르겠습니다만 불의도 죄라고 했습니다먼저 상대편에게 용서를 구한 후에 하느님께 사함을 청하는 것이 순서라고 봅니다.

309. 왠지 하느님께서는 저를 용서하지 않을 것 같습니다.

310. 그저 착하게 살면 되지 주일마다 성당에 가는 것은 형식적인 신앙생활이 아닌가요?

311. 세례 받지 않은 사람이 성체를 영했을 때어떻게 설명을 해야 합니까?

312. 코로나19로 마음이 불안합니다성당에 가는 것도 두려워 방송미사로 대체하는데 안전하고 편리하며 다양한 강론도 듣게 되어마음이 윤택해지는 기분입니다점점 더 성당에 갈 마음이 사라지는 것 같지만 이렇게라도 신앙생활을 유지하는 것이 그릇된 것은 아니라 생각됩니다.

 

308. “정말로 성사로 모든 잘못이 없어집니까? 그리고 그런 사람도 안고 가야 합니까?” 제가 잘못 이해하고 있는지 모르겠습니다만 불의도 죄라고 했습니다. 먼저 상대편에게 용서를 구한 후에 하느님께 사함을 청하는 것이 순서라고 봅니다.

 

설사 극악한 죄를 지었더라도 성사에는 그 죄에서 완전히 풀려나게 하는 치유의 은총이 있습니다.
그렇다고 죄를 짓고 무조건 성사만 보면 된다는 생각은 위험천만! 절대 금물이지요.
또한 이웃과의 관계에서는 직접적인 관계 회복이 우선되어야 합니다.
때문에 주님께서는 주님의 자비마저도 먼저 형제와 화해한 후에 청할 것을 요구하십니다(마태 5,24 참조).
그럼에도 용서란 내가 하느님으로부터 이미 용서받고 사랑받는 존재라는 사실을 깨닫는 것에서 시작된다는 점을 기억하기 바랍니다.
용서는 내가 너를 용서하는 것이 아니라 하느님으로부터 이미 용서받은 너를 나도 같이 인정해 주는마음이라는 걸 잊지 마세요.
용서는 그분 사랑에 힘입어 내게 아픔을 준 죄인을 측은히 여기는 마음에서만 가능합니다.
하느님 앞에서 나도 별 수 없는 죄인임을 깨닫는 것이야말로 용서의 첫 걸음이며 완성임을 명심해 주세요.
용서는 내가 상대의 죄를 잊어 주고면책해 주는것이 아니라
상대도 하느님께 사랑받는 존재임을 인정하는 단순한 마음가짐입니다
.
아무리 오만불손한 인간도 끝까지 용서하시는 하느님 사랑의 신비에 응답하는 순수의 고백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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